[페로칼럼] 철스크랩, '총성없는 전쟁' 시작됐다
[페로칼럼] 철스크랩, '총성없는 전쟁' 시작됐다
  • 정하영
  • 승인 2023.05.02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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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말 기준 우리나라의 철강 누적축적량이 처음으로 8억톤을 훌쩍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의 공식 통계는 2020년말 7억7천만톤이고 연간 대략 2500만톤 내외의 신규축적량을 감안하면 2022년말에는 8억2천만톤까지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철스크랩(고철)은 철광석, 원료탄 등 3대 철강원료 중 국내 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철강 원료다. 철강 축적량 증가는 철스크랩 발생량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다. 철스크랩 발생량은 철강축적량에 비례하고 또 그 비율을 좌우하는 것은 철스크랩 산업의 산업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수출산업으로 자리를 잡은 미국과 일본의 발생비율은 높은 편이고 아직 산업화가 덜 된 중국은 낮은 수준이다.

우리 경제는 본격적으로 성숙화 단계에 진입했다. 따라서 연간 철강 축적량은 점차 줄고, 대신 철스크랩 수출량은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인 변화다. 우리의 경우 종전에는 2030년경 철스크랩의 자급이 가능해지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수출이 본격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 전망을 완전히 바꿔야 할만큼 철스크랩 시장에 큰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철스크랩과 관련해 세계 각국과 철강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탄소발생량이 용광로(고로) 공법의 1/4에 불과한 전기로제강 공법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철강 주요국들은 앞 다퉈 고로를 전기로로 대체하고 있고 신규투자는 전기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전기로는 사용 에너지로 그린(Green)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탄소중립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더욱 더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를 포함한 선진국들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RE100과 제로스틸 등 저탄소/탄소중립 철강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면서 전기로의 중요성은 더욱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기로의 생산량 증가는 곧바로 철스크랩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전기로가 고로에서 주로 생산해왔던 고급강 생산을 위해서는 고급스크랩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철스크랩 수요가 고급과 중저급으로 이원화될 것을 시사하는 것이며, 중저급스크랩의 고급스크랩으로의 전환도 앞으로 철스크랩 시장에서 중요한 한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철스크랩과 관련해 세계 각국 및 주요 철강사들의 움직임은 최근 확연해지고 있다. 정부의 철스크랩 수출규제는 물론 업계 자발적으로 수출을 감소시키려는 움직임이 현실화되고 있다. 공급망 리스크가 철스크랩까지 확산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바야흐로 '총성없는 전쟁'의 시작이다.

또한 철스크랩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체철원(鐵源)인 직접환원철(DRI)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투자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 중동, 인도 등지에서 자국 철강사들은 물론 일본 등 해외 철강사들이 DRI 확보를 위한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이외에도 철스크랩의 산업화와 효율성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인공지능) 검수 시스템 구축, M&A와 구조재편 등을 통한 대형화와 경쟁력 강화가 일본,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 AI검수에 더욱 적극적이며 중저급스크랩의 고급화가 가능한 설비인 슈레더(Shreder) 투자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철스크랩의 산업화와 효율성 증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탄소중립 추진 차원에서 전기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기술개발, 고로 대체투자 등 신증설 투자가 검토, 확정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특히 철스크랩 분야의 비전과 대안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차제에 정부와 산업연구원이 주축이 돼 ‘철스크랩산업 발전 방안’을 마련 중이다. 그동안 몇 차례 비슷한 일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원인은 철스크랩을 폐기물로 취급하는 인식과 법, 제도에 있었고, 철강사들의 미래보다는 현재의 이익을 우선하는 ‘소탐대실(小貪大失)’ 탓이 컸다고 본다.

오는 5월 발표될 이번 ‘철스크랩 발전 방안’이 국내 철스크랩 산업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이정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착실하게 실행해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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