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철강재 수입 증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페로칼럼] 철강재 수입 증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김홍식
  • 승인 2023.12.0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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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페로타임즈 대표
김홍식 페로타임즈 대표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자동차와 조선, 기계, 가전, 반도체 등 건설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은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높다. 그러다 보니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정부까지 나서 환율 방어를 한다. 철강재 역시 생산량의 40%를 수출한다. 여기에다 자동차와 조선, 가전, 기계 등을 통한 간접수출까지 포함하면 절반 이상을 수출한다. 그런데 문득 “지금의 수출입 구조는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철강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금년도 1~11월 철강재 수입량은 1,439만5,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1%가 늘었다. 반면 수출은 2,495만4,000톤으로 5.8% 증가에 그쳤다. 숫자만 놓고 보자면 수출 확대와 수입 방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철강은 소재산업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자국의 제조업을 육성하는 핵심 산업이다. 따라서 내수판매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그런데 한국 철강재 시장은 지나치게 무역 의존도가 높다. 좋게 말하면 매우 교역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세계가 자유무역을 지향했을 때는 힘을 얻었지만, 세계 경기 동반 침체와 신냉전으로 야기된 보호무역주의와 블록화 시대에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수출은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가 더 문제다.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수요침체 외에도 주력 시장의 신증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품질과 강력한 록인(Lock-in) 전략을 앞세운 일본산 제품과 가격과 일대일로를 앞세운 중국산 제품과, 품질을 따지지 않는 현지 저가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경쟁의 틀이 변했는데, 우리는 이러한 시대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을까?

무역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의 문제점은 중국과 일본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이들 두 국가의 수입 비중은 전체 수입의 90%를 넘는다. 필자가 우려하는 점은 중국 경기회복 지연으로 과거와 같은 저가 수출 구조가 재현되는 것이다. 1~11월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807만 3,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2%가 늘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개연성(蓋然性)은 충분하다.

또 하나 의문점은 “지금처럼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추고, 수출하는 구조가 바람직한가? 언제까지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감소로 인한 철강재 수요 감소다. 지난 10년간 국내 철강재 수요는 꾸준히 줄고 있다. 한국의 신생아 출산율은 0.81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전 세계 217개국 중에서 홍콩 다음으로 낮다. 과연 인당 철강소비 1톤 이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

수입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수요도 줄고, 환율도 높은데 수입은 왜 늘어날까? 가장 흔한 이유는 가격차이다. 품질 대비 가격이 낮은 이른바 가성비도 원인이다. 확실히 중국산 철강 제품은 지난 몇 년 동안 품질이 좋아졌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이유는 수입재를 사용하는 업체가 있고, 수입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수입은 줄 수밖에 없다. 또 유통과 실수요의 국내 메이커에 대한 낮은 충성도도 한몫한다. ‘고객 만족’을 외치면서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메이커와 유통의 관계는 아이러니 그 자체다.

수입 방어 전략은 바람직할까?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만 장려하고, 수입은 틀어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이기적인 주장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AD 제소는 우리가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방법이다. 그래서 KS 규격 등 비관세 장벽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근본적인 대응책은 가격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또 메이커-유통-실수요가 사이에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임원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행태도 지양(止揚)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인구감소에 대비한 생산 전략과 유통 전략, 마케팅 전략도 다듬을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 것이 모범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일본을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흔히 일본에는 수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유통이나 수요가가 외국산 제품을 잘 구매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많은 이유가 있다. 우선 메이커가 수입상이나 유통에 인력을 파견해서(이를 출향, 出鄕이라고 한다) 수입 여부를 감시하기도 한다. 수요가로서는 수입재를 사용했다가 미세한 색상 차이로 납품이 거절되면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값싼 제품을 찾기보다 품질에 주력한다. 대신 자동차나 가전 원청업체가 소재 가격 변동 분을 보전해 주는 하청구조다. 철강 메이커 정책 역시 임원이 바뀐다고 해서 변경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에서 오는 강력한 믿음이 문화가 됐고,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를 내고 있다.

가장 늦을 때가 빠르다는 말이 있다. 지금 세계 경기는 지난 30여 년간 겪지 못한 전환기에 놓여 있다. 당장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구조변화에 대한 전략 마련도 중요하다. 위기 뒤 기회가 온다고 하지만, 그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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