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자율과 시장기능이 전부 아니다.
[페로칼럼] 자율과 시장기능이 전부 아니다.
  • 정하영
  • 승인 2023.09.21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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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강협회 자료를 근거로 추정하면 2022년말 기준 국내 철강 누계축적량이 드디어 8억톤을 넘어섰다. 이에 따른 국내 철스크랩 발생량의 점진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철스크랩(고철)의 안정적 확보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불과 3~4년 전만해도 철스크랩의 자급이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할 것으로 보고 수출 등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탄소중립(Carbon Netural) 추진이라는 시대적 요구로 인해 전기로 증설과 전로(轉爐) 투입비율 증대로 철스크랩 수요증가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 미국 등 세계 주요 철강국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으로 철스크랩은 물론 대체철원인 HBI(직접환원철) 확보에 철강기업들은 물론 각국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일본 철스크랩 연구기관인 SRR(Steel Recycling Research)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확정, 추진 중인 일본의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철스크랩 수요증가는 시중(발생)스크랩 기준 연간 700만톤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간 600~700만톤을 수출해 왔던 일본도 향후 수출여력이 없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수요가 집중적으로 증가하는 고급스크랩은 공급부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도 연간 400~500만톤을 수입하고 그중 절반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전기로 재가동, 신증설이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로에의 철스크랩 투입비율 확대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된다면 철스크랩 수요는 크게 증가할 것이 분명한데 오히려 머지않아 주요 수입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실로 상당히 큰 Risk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철스크랩 및 대체철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철강업계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정책 선도와 지원이 불가피한 일이다. 철스크랩이 여전히 안고 있는 법적,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전향적인 관련 법 개정과 정책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근본적으로 ‘폐기물’로 분류되고 있으나 이를 ‘자원’으로 빨리 전환하는 것은 모든 상황과 환경을 고려할 때 지극히 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대체철원인 HBI 확보를 위해서는 해외투자가 불가피하다. 당연히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이 요구되는 일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 15일 산업구조심의회를 개최하고 수소환원제철 연구개발 지원 금액을 현재 대비 2배 이상인 무려 2500억엔을 증액해 모두 4500억엔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개발기간도 2040년대 중반에서 5년 정도 앞당긴 2040년까지 실용화를 완료한다고 목표를 수정했다.

일본 정부는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탄소중립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탄소중립이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을 인식한 2020년 이후 탄소중립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그 속도 또한 엄청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소환원제철법 연구개발 지원비 역시 파격적으로 지원을 결정하고 진행시키고 있다. 철강산업이 제조업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 산업이라는 특성도 있지만 정부의 정책과 지원, 선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인식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계획경제 체제인 중국의 경우에는 더욱 정부가 철강산업의 성장발전을 선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5개년 규획’을 통해 비전과 발전 방향을 제시함은 물론 실질적으로 개입해서 철강산업 구조개혁, 질적성장을 끌고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철스크랩 가공․유통 시스템 확립이다. 2012년 공업정보화부가 ‘철스크랩 가공업 참여 기준 조건’을 공포한 이후 거의 전무했던 ‘철스크랩 가공유통 센터’를 2021년말 기준 584개까지 늘리면서 연간 가공능력을 1억1천만톤까지 급격히 확대해 나갔다. 현재도 보다 전문적인 선별과 관리, 유통능력 확대를 위한 정책을 속속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철스크랩 AI 검수, 스마트공장이 그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물론 중국과 체제가 다른 우리 정부가 시장 및 기업에 적극 관여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정부가 주도해서 철강산업 정책을 수립, 시행해 나가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철강산업 전반에 걸쳐 업계 자율과 시장 기능을 강조해 왔다. 그 결과, 철강산업의 장기비전과 정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말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제 기준이 그렇더라도 철강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역할과 개입은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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