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철강산업의 특수성’만으로는 안 된다
[페로칼럼] ‘철강산업의 특수성’만으로는 안 된다
  • 정하영
  • 승인 2023.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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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철강업계가 또다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당했다.

고려제강 등 경강선 제조업체 10개사에 대해 지난 18일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548억원을 부과하고 이중 가담 정도와 공정위 조사 협조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DSR제강 등 6개사는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담합 근절을 위해 과징금 부과기준율을 2배(관련 매출액의 최대 20%)로 올린 이후 조치한 첫 사례로 원자재 비용 변동에 편승한 가격 담합을 엄중하게 제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디고 밝혔다.

정부가 시장경제 체제에서 여러 가지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잡아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해 각 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되는 공정경제 구축을 강조한 이후 최근 공정거래법 집행이 상당히 강화되고 있다. 지난 2월 공정위는 올해를 ‘원칙이 바로 선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든다는 기치 아래 33년 만에 공정위의 조직 변화와 집행 기준을 새롭게 바꾸었다. 여기에 검찰까지 공정거래법 집행 강화 움직임을 현실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절차에 관한 규칙’ 및 ‘공정거래위원회 회의 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 ’현장조사 수집 제출자료에 대한 이의제기 업무지침‘ 등을 개정해 지난 4월 14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한 5월 25일 국회는 공정거래 자율준수 문화 확산, 중소사업자 등 피해구제 강화, 공정경쟁 질서 확립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다양하게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겨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정위와 검찰 등 정부부처는 물론 국회까지 범 정부 차원에서 공정거래는 이제 우리 사회, 경제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로 대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철강산업은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여러 분야의 시장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 관행과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토목이나 주택건설 등 대규모 사업의 발주자에게 자재를 공급하고 전기나 수도처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 공항이나 항만 같은 공공시설의 대규모 건설 현장에서 수많은 협력, 하도급업체 또는 거래 관련 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공정위 등은 철강산업을 대표적으로 공정거래가 안착되어야 할 산업으로 판단하고 최근 그 위법 사안을 더욱 철저히 규명하고 처벌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다.

공정위가 철강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다. 1998년 당시 공정위 전윤철 위원장은 ‘철강업계는 담합 덩어리’라며 지속적인 감시와 개선을 언급한 바 있다. 사실 그 이후 철강재에 대한 공정위의 담합 조사와 시정조치는 끊임없이 계속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더욱 강력한 제재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철강업계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대응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근원은 산업발전 시대 최우선의 지원과 육성 정책의 혜택을 받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논리가 ‘일물일가(一物一價)와 같은 철강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시장은 이미 수요가 중심으로, 정부 정책은 공정경제로 변화했음에도 이러한 과거 논리가 통할 리가 만무했다고 볼 수 있다. 또 그 미진한 대응의 결과가 최근의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공정위의 제재라는 판단이다.

특히 최근 공정위로부터 제재가 이뤄졌던 ‘관수 철근 담합’ 사건의 경우 공정위의 시정 명령과 과징금 부과 및 검찰 고발로 해당 철강사 관련자들이 형사처벌까지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검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피해 당사자인 조달청으로 하여금 손해배상청구까지 하도록 해 현재 관련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만일 법원이 조달청 손을 들어줄 경우 철근업계는 수천억원의 과징금과 이에 버금가는 손해배상금까지 지급해야 된다. 이중 처벌의 개연성이 다분하지만 현재의 분위기로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올해 4월 ‘신축아파트 빌트인 가구 입찰 담합’에 대해 검찰이 리니언시 제도(카르텔 형벌감면 지침)에 의거 관련 업체의 자진 신고를 근거로 공정위 고발 없이 직접 수사에 착수한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공정위와 검찰이 경쟁적으로 법집행을 강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일이다. 특히 철강업계의 경우 과징금 감면과 검찰고발 면제라는 현실적 이득에 각 부문의 선도업체들마저 리니언시를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상호 신뢰와 동질감으로 충만했던 철강업계의 전통과 자긍심마저 공정거래의 칼날에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철강업계는 앞으로 공정거래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대응과 준비가 불가피한 일이 되어버렸다. 여타 제조업 대비 대규모 투자산업으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철강산업에 대한 공정위와 검찰의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대응체계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인 CP(Compliance Program) 도입과 같은 내부 준법시스템 도입과 조직 구성원에 대한 교육과 연수 강화 등이 요구된다. ‘철강산업의 특수성’에 매달려서는 공정거래의 칼날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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