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 김진혁
  • 승인 2023.04.14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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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죽거나, 가족을 애도하지 못하고 보내는 경우를 접한다. 죽음이란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 번의 인생길이라는 말에 가슴을 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죽음이 가족들의 품에서 품위를 유지하며 맞이한다면 이 또한 행복할 권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죽음은 삶만큼 중요하다. 비참한 죽음, 인간답지 않은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나이든 사람일수록 가장 큰 화두는 “어떤 것이 존엄한 죽음이며,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이다. 그럴 때마다 죽음은 삶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문헌학자, 시인, 음악가로 서양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준 니체의 사상은 신은 죽었다,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초인), 영원 회귀, 운명을 사랑하라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니체는 모든 철학과 종교관, 인간관을 비판하고 완전한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니체의 저술 노트로 알려진 유고 《즐거운 학문(1882)》에서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해자 중의 살해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의미는 종교의 부정이 아니다. 피안의 존재에만 의지하려는 나약한 인간상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이다. 스스로 인간성에 전념하여 새로운 혼돈을 지향해 전진하는 초인(위버멘쉬)을 강조한 것이다.

니체는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로도 알려졌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도의 상징기법과 뛰어난 언어유희가 담긴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 20대 초 피아노 듀엣곡 《만프레드 명상곡》을 작곡했다. 그의 죽음은 일생동안 추구했던 죽음과는 너무도 다르게 불행했다.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알베르토 카룰로 광장에서 주인의 채찍질로 축 늘어진 불쌍한 말의 모습을 보았다. 몸을 던지다시피 마부를 가로막았고, 말의 목을 부둥켜안고는 목 놓아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러고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니체는 심한 치매 증상을 보이다 56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니체의 죽음은 인간은 의지만으로 죽음의 모습을 선택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퇴계 이황은 니체보다 382년 앞에 조선에서 태어난 유학자이자 전문 관료였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연구를 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은 니체와 사뭇 달랐다. 퇴계는 죽기 한 달 전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는 마무리 강론을 편 후 제자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당시 봉화 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맏아들 준에게 말했다. 관직을 내려놓고 집으로 오라고 말이다. 당시 사대부 집안의 전통은 자신이 죽으면 아들도 3년 상을 치룰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랏일에 지장이 있을까 염려한 것이다.

운명하기 5일 전에는 그동안 빌렸던 책들을 돌려주고 유서를 작성한다. “조정에서 내리는 예장을 사양할 것, 거창한 비석 대신 조그만 돌에 자신의 이름과 조상의 내력, 행적만 간단히 적을 것”을 당부하였다. 죽기 전날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깨끗이 세수한 다음 머리맡에 있던 매화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한다. 이른 나이에 아내를 잃고 아끼던 두향에게 자신의 죽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다음 자리에 누운 선생은 그날 오후 자식들과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일평생 잘 죽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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