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인문학⑬] 고대 인도의 ‘우츠 강철’…'악마의 검’으로 거듭나다
[철강과 인문학⑬] 고대 인도의 ‘우츠 강철’…'악마의 검’으로 거듭나다
  • 정하영
  • 승인 2020.10.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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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4대 문명은 시기적으로 메소포타미아, 황하, 인더스, 이집트 순이다. 지난 호에 황하문명, 고대 중국의 철기 문명에 이어 이번에는 인더스문명과 연결되는 고대 인도의 철기문화를 확인해본다.

인더스문명과 아리아인의 이동 ( 출처 = ZUM학습백과 )
인더스문명과 아리아인의 이동 ( 출처 = ZUM학습백과 )

인도에서 철이 처음 발견되는 것은 기원전 1200년경이다. 당시 고대 인도인들이 처음 사용한 철은 철광석이 아니라 자연에 노출된 철이었다. 이 천연철(天然鐵)은 철의 자연 상태 모습으로 6~8%의 니켈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로 우주에서 떨어진 운철(隕鐵)이다. 이 운철을 가공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고대 인도에서의 제철은 기원전 4세기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과 접한 인도 북부 라자스탄 주(州)에 철 생산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인도 왕들이 많은 외국 왕들에게 철과 강철로 만든 검과 장신구, 그리고 주괴(鑄塊)를 선물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불순물인 인이나 황이 적은 헤마타이트(적철석, Fe₂O₃)로 제조한 선철을 사용해 구슬, 장신구 등을 만들었다.

철기의 도입으로 인도에서는 도시와 국가들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철기를 이용해 밀림을 개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원전 1천년쯤 아프리카산 작물인 수수와 기장이 인도로 건너왔다. 이 작물들을 철제 농기구로 새로 일군 농지에서 재배했다.

델리의 철 기둥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델리의 철 기둥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인도는 서아시아보다 늦게 철을 생산했지만 기술 혁신은 훨씬 앞서 간 것으로 보인다. 인도 수도 델리에 서기 310년쯤 만들어진 높이 10m, 무게 7톤짜리 철 기둥이 지금까지 거의 녹이 슬지 않은 채 서있다. 인도인들이 철을 다양하게 사용했음을, 또 녹이 잘 슬지 않는 철을 만들어낼 정도로 기술혁신을 이뤄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인도산 철과 강철은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 로마 같은 먼 나라까지 수출되었다. 인도 철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다. 인도의 제철기술이 고대에서부터 상당히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데 학자들은 중국의 우수한 제철기술이 서역을 통해 인도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원전 400년경 인도 대장장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철에 원하는 분량의 탄소를 결합시키는 제련법을 알아내고 텅스텐, 바나듐이 포함된 철광석을 사용해 강철을 제조해냈다. 기술의 핵심은 바로 용융된 금속을 담은 진흙 용기, 즉 도가니였다.

대장장이들은 괴철로에서 제조한 작은 연철 조각들을 목탄과 함께 도가니 속에 집어넣고 밀봉한 다음 가마 속에 집어넣었다.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어 가마 온도를 높이자, 연철은 목탄 속의 탄소를 흡수하면서 녹았다. 이렇게 해서 도가니 안에는 순수 강철 주괴(鑄塊)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우츠 강철’이다.

우츠강철 제조 재현 사진  ( 출처 = 페로타임즈DB, Ancient Origins © 2013 - 2020 )
우츠강철 제조 재현 사진 ( 출처 = 페로타임즈DB, Ancient Origins © 2013 - 2020 )

‘우츠’는 인도어로 철이라는 뜻이다. 인도인들은 그들의 우츠 강철을 전 세계에 내다 팔았다. 현재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세로미탈, 글로벌화로 치닫고 있는 타타스틸, 그리고 리버티스틸에 이르기까지 철강산업의 글로벌화를 선도하고 있는 이들이 인도인들이다.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과거의 역사가 입증해주고 있다.

한편 우츠 강철을 수입한 시리아의 대장장이들은 이것을 사용해 지금까지 전설의 검(劍)으로 불리는 ‘다마스쿠스 검’을 만들어냈다. ‘다마스쿠스 검’은 공중에 흩날리는 새의 깃털을 잘라낼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고 강인한 검의 대명사다. 현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는 살라딘의 동상이 있다. 살라딘은 이슬람의 왕으로 1187년 십자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의 영웅이다. 동상의 살라딘이 들고 있는 칼이 바로 ‘다마스쿠스 검’이다.

살라딘의 초상  ( 출처 = 포스코뉴스룸, 위키피디아 )
살라딘의 초상 ( 출처 = 포스코뉴스룸, 위키피디아 )

다마스쿠스 검은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진다. 가장 큰 특징은 검날의 물결무늬인데 검날 부분은 강도가 균일하도록 탄소를 고루 섞어서 무늬가 안 생긴다. 반면 몸통 부분은 충격을 잘 흡수하도록 탄소의 분포 차를 크게 만들다보니 무늬가 선명하다.

다마스쿠스 검의 칼날 ( 출처 = 나무위키 )
다마스쿠스 검의 칼날 ( 출처 = 나무위키 )

다마스쿠스 검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우츠 강철을 수입해 최고 품질의 다마스쿠스 검을 생산했다. 당시 페르시아 지역을 지배한 것은 사산 왕조(서기 226~651년)다. 사산 왕조가 동로마 제국고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강대국으로 우뚝 서는데 다마스쿠스 검이 큰 역할을 해냈다. 다마스쿠스 검으로 무장한 사산의 기병대는 유럽의 거친 철검밖에 없었던 동로마군으로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상대였다.

유럽은 이슬람 세력과 충돌하면서 다마스쿠스 검을 알게 된다. 결정적으로는 1188~1191년 3차 십자군 전쟁이었다. 영국의 리처드 1세가 이끄는 십자군은 살라딘의 이슬람군이 다마스쿠스 검으로 자신들의 검과 갑옷을 단칼에 잘라버리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가 제조법을 알려주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결국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지 못하고 물러나지만 얻어낸 유일한 성과는 다마스쿠스 검과 우츠 강철을 알게 된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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