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인문학⑫] 고대 중국의 철(鐵), “움츠린 개구리가 멀리 뛰다”
[철강과 인문학⑫] 고대 중국의 철(鐵), “움츠린 개구리가 멀리 뛰다”
  • 정하영
  • 승인 2020.1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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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문명!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발달시킨 4대 문명이다. 공통점은 모두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큰 강(티크리스-유프라테스강, 나일강, 인더스강, 황하)을 끼고 있다. 대부분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다. 기후, 교통, 토지 등 고대 농업발달에 유리해 문명이 발생하고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4대 문명 지도
인류 4대 문명 지도 ( 출처 = 학습백과zum )

역사 순으로 보면 기원전 6500년경 농경·목축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빠르다. 이어 황하문명은 기원전 5천~4천년, 인더스문명과 이집트문명은 기원전 3천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석기에서 시작해, 청동기를 거쳐 철기 시대로 발전했다. 다만 이집트에서 철기 문명은 화려하게 꽃피우지 못했으며 이집트가 히타이트, 아시리아와 같은 제국(帝國)으로 발전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철기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인근의 히타이트에서 기원전 2천~1500년경 시작돼 세계 각 지역으로 전파됐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하지만 황하문명의 중국의 경우 전래설과 함께 자체 생성설도 비중 있게 인정받고 있다. 시기적으로, 그리고 주로 제작한 철기의 특징이 다른 지역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원전 1200년경 갑작스런 해양민족에 의한 히타이트의 패망은 철기문명이 세계 각 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되는 계기가 된다. 우선 상업과 무역을 주도했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지중해 지역으로 널리 퍼졌나갔다. 중국으로의 전파는 다소 시간이 흐른 기원전 8세기경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족 유목민들이라는 것이 현대 고고학계의 유력한 가설이다.

손잡이를 옥과 금으로 만든 기원전 8세기경 중국 철제 단검  (출처 바오지시립고고학연구소)
손잡이를 옥과 금으로 만든 기원전 8세기경 중국 철제 단검 (출처 바오지시립고고학연구소)

어떻든 중국에서 철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700년경인 춘추시대로 추정되며 한(漢)나라 시대에는 상당한 규모의 산업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반(半)응고 상태에서 제조하는 괴련철을 활용하는 철제품과 더불어 용광로에서 선철을 완전히 녹인 다음 주조품을 제조하는 기술을 기원전 4세기경 개발하였다.

당시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청동기는 제기(祭器)와 무기(武器)로 사용했다. 그런데 중국 동남부의 이민족들은 최초로 청동을 대거 농기구 제작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철(鐵)을 접하고 생산하게 되자 그 강인하고 저렴한 청동의 대체물을 농기구에 적용하였음을 물론이다.

이곳에서 철 주물의 제조도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청동을 녹이는데 사용하던 가마에서 철 블룸을 침탄(浸炭)하고 용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단조(鍛造)보다는 주조(鑄造) 용으로 철을 공급할 목적에서 괴철로를 최적화한 용광로가 기원전 4세기경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축조되어 용융 선철을 생산한 것이다.

기원전 300년경, 중국 대장장이들은 철광석과 목탄이 섞여 타는 용광로에서 반용융 상태의 괴련철 대신 걸쭉한 금속 액체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목탄의 탄소가 철에 흡수돼 용융점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 일찍이 고온환원법을 적용해 고탄소의 주철 또는 주강을 생산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실제 탄소함량이 2% 이상이 되면 용융점이 1,400~1,150℃까지 낮아져 목탄에 의해 용융철을 생산할 수 있다. 이 용융철을 모형 틀에 부어 주조 제품이 만들어진다. 깨지긴 쉬운 주조품에 추가적인 열처리 방법까지 중국 대장장이들은 터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주조기술을 활용해 복잡한 형태의 도구나 무기를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중국 고대 주철 제품 (출처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중국 고대 주철 제품 (출처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중국에서 주철의 활용은 유럽보다 훨씬 빨라 진(秦)·한(漢)시대(기원전 221년~기원후 220년)에는 주철 생산이 널리 활성화돼 당시 주철 생산량이 15만톤을 넘어섰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철기 생산량 급증 이유는 수차(水車)를 이용한 수력 풀무의 발명, 그리고 용광로 개념의 용해로 사용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수력 풀무를 활용하고 고온에 견딜 수 있는 내화물로 축조한 용광로를 사용해 온도를 높임으로써 선철의 양과 질을 향상시켰던 것이다.

철 생산이 늘어나면서 한나라는 농업 생산을 늘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번영을 누렸으며 철은 국가 경영의 필수품이 되어 소금과 함께 전매 제도의 대상이 되었다.

고대-중세를 거쳐 세계 제일의 경제력을 보유한 중국에서는 끊임없는 영토 전쟁이 일어났으며 이 때문의 철의 수요도 증가하고 철강산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 결과 다른 지역보다 많은 양의 철강을 생산했는대 생산이 최고조에 이른 송나라 때인 1078년에 12만5천톤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양은 18세기 서유럽 전체 생산량보다 많은 양이다.

용광로에 적용한 중국의 수력 풀무 ( 출처 왕정농서 )
용광로에 적용한 중국의 수력 풀무 ( 출처 왕정농서 )

기술 측면에서도 주철 제조기술, 수차를 이용한 송풍기술, 용광로 형식 용해로 개발로 유럽을 크게 앞서 나갔다. 또 송나라 시대에는 연료로 숯 대신 석탄을 처리한 코크스를 사용했는데 이는 유럽보다 700년 정도 앞선 것이다. 또 초강법(炒鋼法)이라는 제강기술을 한나라 시대에 개발하여 주강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유럽보다 1천년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초강법은 용융 선철에 광석 분말로 만든 산화철을 넣음으로써 선철을 탈탄해 반용융 상태의 강을 만드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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