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인문학⑮] 뒤늦게 시작한 일본의 제철, 타타라제철법-일본도-화승총까지
[철강과 인문학⑮] 뒤늦게 시작한 일본의 제철, 타타라제철법-일본도-화승총까지
  • 정하영
  • 승인 2020.11.09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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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철은 대략 서기 3세기 야요이시대 후기에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5세기 이후 고분시대에 철을 제조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제철기술의 유래는 중국에서 직접 전래되었다고도 하고 한반도를 거쳐서 전래되었다고도 하는데, 두 경로 모두에서 기술이 전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높다. 초기의 제철은 소형 가마를 이용하는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었는데 6세기경에 한반도에서 이주민이 넘어오면서 더 발전된 제철기술이 나타나게 된다.

타타라 제철로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타타라 제철로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일본 대장장이들은 이주민에게서 배운 제철 지식을 토대로 고유의 제철법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타타라 제철법(たたら製鐵法)이다. 타타라는 풀무를 밟아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일본 장인이 개발한 기술의 핵심이 공기 송풍설비로 추정되는 이유다. 실제로 어떤 품질의 철을 생산하느냐는 노의 온도에 달려 있고 또 가열온도는 숯을 풍족하게 넣었다고 가정하면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기를 불어 넣느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타타라 제철로(製鐵爐)는 그림에서 보듯이 밑바닥은 점토 및 목탄을 두껍게 깔아 수분을 제거하고 열손실을 막도록 하였다. 제철로는 장방형으로 길이는 2.5~3.5m, 폭은 0.7~0.9m, 높이는 1.1m 정도다. 여기에 사철 16톤 및 목탄 12톤을 투입해 4일간 조업을 함으로써 3톤의 케라(연철과 슬래그의 반용융 혼합물)를 생산하며 선철의 경우 2톤을 생산한다고 한다. 제철로는 구축하는데 4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그 대부분의 기간은 기초공사에 소요되고 실제 노 자체의 축조는 하루~이틀이면 끝났다.

일본에는 타타라 제철로와 같은 제철 유적지가 150여개나 된다. 그 대부분은 시마네 현에 집중되어 있고 일부가 이즈모 지역이나 쯔루가 지역에 분포돼 있다. 시마네 현에 유적지가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신라에서 흐르는 동해안 해류를 타고 한반도의 제철기술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 지역에 고크로뮴(Cr) 사철이 많이 있고 풍부한 산림자원이 있어 목탄 공급이 용이했다.

시마네 현은 제철에 관한 유적을 복원하여 많은 관광객을 유지하고 있다. 스기야타타라 유적지, 철 역사 박물관, 아사히타타라 유적지, 와코 박물관 등이 있다. 이 지역에는 옛날의 타타라 제철공장이 현존하는 마을로, 18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제철공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타타라 제철법은 저온환원법에 의해 철을 생산하는데, 먼저 해면철처럼 구멍이 많이 들어있는 연철과 산화물 덩어리인 슬래그가 반용융 상태로 붙어있는 케라를 제조한다. 케라는 채취 후 분쇄하여 연철을 분리하는데, 분리된 연철은 목탄과 함께 수차례 가열해 침탄 및 단조를 통해 옥강이라는 강철을 만든다.

일본도  ( 출처 = 위키백과 )
일본도 ( 출처 = 위키백과 )

일본도는 타타라 제철로 조업에서 나온 이 옥강을 이용해 만드는데 일본의 대표적인 고급 철강제품이다. 일본도를 만든 목적은 호신용이며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기 위함이지만 일본에서의 일본도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사무라이 정신을 상징하는 표상이기도 하다. 에도시대가 되면서 일본도는 검술의 연마를 통한 자기수양의 도구 및 이를 통한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가면서 일종의 정신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전국시대 말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집권 중에 가타나가리(刀狩り) 제도에 의해 오직 사무라이만이 칼을 차고 다니도록 하고 그 외 농민 등으로부터 칼을 몰수하여 병농(兵農) 분리정책을 시행했다. 쇼군은 유명한 장인에게 일본도 제작을 의뢰해 총애하는 사무라이에게 선물하곤 했다.

일본도 못지않게 일본 역사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화승총이다. 화승총은 일본 남쪽의 다네가시마 섬에 표착한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1543년에 전래됐다. 그 성능이 우수해 도주(島主)가 야이타라는 대장장이에게 복제를 명령함으로써 일본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야이타가 처음 만든 화승총은 포르투갈 기술자를 초빙하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화승총은 오사카 남쪽 구니모도 마을 등지에서 제작이 활발히 이뤄진다. 그 당시 이 마을에서 조선인 대장장이들이 우수한 품질의 철강을 생산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승총(조총) 사격, 오카야마성 철포대  ( 출처 = 일본 위키백과 )
화승총(조총) 사격, 오카야마성 철포대 ( 출처 = 일본 위키백과 )

일본을 최초로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는 일찍이 화승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총으로 무장한 소수정예 병력을 활용해 막강했던 다케다 신겐 부대를 굴복시킴으로써 일본열도 통일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다. 철포 전래 30년이 지난 16세기 후반 일본이 보유한 총의 수가 수십만 정에 이르러 당시 유럽 전체의 보급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본은 이런 특수 목적의 철강을 개발함으로써 철강기술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우수한 성능의 무기와 전함을 만들어 20세기에는 아시아 국가를 점령하고 세계대전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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