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인문학⑧]철의 제국 히타이트 멸망의 아이러니…본격 철기시대 개막
[철강과 인문학⑧]철의 제국 히타이트 멸망의 아이러니…본격 철기시대 개막
  • 정하영
  • 승인 2020.05.06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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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건 (출처 나무위키)
레일건 (출처 나무위키)

히타이트의 철제 무기는 마치 오늘날의 원자폭탄이나 레일 건(마하 7의 초고속으로 발사되는 미사일) 같은 최첨단 무기에 견줄 만 한 것이었다. 히타이트인들이 철기 제조기술을 철저히 비밀에 붙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1200년 경 동부 지중해와 중근동 일대에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히타이트의 철기 제조 기술은 확산되고 만다. 지금의 크레타 섬과 그리스 남부에서 엄청난 수의 이주민들이 소아시아(터키)와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중근동 일대로 대규모 이주를 하게 된다. 이들 해양민족(Sea People)의 등장은 순식간에 중동의 판세를 바꿔버린다.

강대국 히타이트가 메뚜기 떼처럼 몰러오는 해양민족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 것. 이들 해양민들은 내친 김에 이집트까지 쳐들어갔지만 실패하고(기원전 1174년) 방향을 돌려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몰려간다. 이들은 우수한 철제 무기의 힘으로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인들을 격파하고 정착하면서 이스라엘인들에게 블레셋(Philistines)이라고 불리게 된다. 팔레스타인이란 지명 역시 블레셋인들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밀려난 것도 철기 때문이었지만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 등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블레셋인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도 보다 우수한 철제 무기 탓이었다.

철의 제국 히타이트의 멸망으로 철은 또 다른 전환을 맞게 된다. 활동무대를 세계로 넓히면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고 철과 함께 한 인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기원전 1400~1200년 히타이트가 철의 제국을 이룩하였지만 세계사에서 본격적인 철기시대의 개막은 기원전 1000~500년경이었다. 아메리카와 호주를 제외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각지로 히타이트의 제련기술이 확산되면서다.

히타이트의 철기문명이 제일먼저 전파된 나라는 아시리아와 이집트다. 하지만 철과 관련된 두 나라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우선 아시리아는 최초의 ‘오리엔트 통일 제국’으로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 기원전 2000년경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가 몰락할 무렵 티그리스강 상류에 등장한 아시리아인은 바빌로니아와 미탄니 왕국에 지배당한다. 기원전 1350년경 미탄니를 물리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 시기 아시리아 왕에게 보낸 히타이트 왕의 답장이 보가즈쾨이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기록돼 있다.

 

아시리아 제국 (출처 위키백과)

‘품질 좋은 철’을 요청한 것에 대해 완곡하지만 거절하면서 대신 철 단검 하나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품질 좋은 철이란 표현은 아시리아도 철을 생산하고 있으나 히타이트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집트는 히타이트와 아라비아 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수백 년 동안 싸웠다. 드디어 기원전 1275년 시리아 인근의 ‘카데시’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고 두 나라는 세계 최초의 국제 평화협정인 카데시조약을 체결하며 전쟁을 끝냈다. 정치,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대부분 우세했던 이집트가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로 히타이트의 우수한 철기, 철제 전차를 예로 드는 이들이 많다.

이집트의 철은 저 유명한 ‘왕가의 계곡’에 있는 제 18대 왕조 12대 왕 투탕카멘의 피라미드에서 나타난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와 더불어 황금 손잡이가 달린 철제 단도가 발굴된다. 현재로서는 이집트에서 철을 직접 생산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隕鐵)을 가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분명한 것은 이집트 역시 철을 사용했으며 파라오의 단검을 제작할 정도로 철을 귀하게 대우했다는 사실이다. 히타이트와 아시리아, 이집트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당시 철기의 위상은 대단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철을 잘 만들고 잘 사용하는 것이 제국으로 커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히타이트와 주변 국가들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 투탕카멘의 단검 (손잡이는 황금, 날 부분이 운철임)
이집트 투탕카멘의 단검 (손잡이는 황금, 날 부분이 운철임)

앞서 언급한 대로 히타이트 철 생산 봉인은 기원전 1200년경 뜻밖의 일로 풀리고 만다. 해양민족에 맥없이 무너진 히타이트의 대장장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들이 더 이상 기술을 숨길 이유도 없어졌고 그들의 발길을 따라 철 생산 기술은 주변국가로 전파된다.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철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던 아시리아다. 결과적으로 아시리아는 히타이트에 이어 ‘제 2의 철의 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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