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권오준 박사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⑨
[연재] 권오준 박사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⑨
  • 김종대
  • 승인 2020.10.20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의 한자표기 銕, 동이(東夷) 민족의 우수한 제철 기술 상징
기원전 4~3세기 전국시대 연나라에서 최초 전래한 것으로 추정
변한·진한 우수한 철 생산…주위 국가와 교역 활발·화폐로도 사용
일본 서기 3세기 철 사용 시작, 5세기 이후 철 직접 제조 시작
고유의 제철법 타타라 제철법 개발, 공기 송풍기술 발전시켜
인도 기원전 1200년 운철로 철기 사용, 제철은 기원전 4세기 시작
델리 철기둥·우츠강철 인도 철강 우수성 입증, 로마군 무기로 사용

(제4장 기술의 진화와 철강산업②)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 고대의 제철(2)
 

고대 한국의 제철

중국의 제철기술은 기원전 3세기 한나라 시대(BC 206년~AD 220년)에 국가 전매기술로 보호받아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매우 제한되긴 했으나 긴밀한 왕래가 있었던 한국과 일본으로는 비교적 용이하게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표의문자인 한자를 분해해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철의 한자인 鐵은 ‘金+哉+王’이 되는데, 이는 철 또는 쇠가 금속 중에 왕으로 철의 쓰임새가 여러 가지 금속 중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은 銕로도 표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 글자를 풀어 보면 ‘金+夷’가 되고 그 의미는 철은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동이(東夷) 민족이 잘 만들고 잘 다루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로부터 철 기술은 만주 및 한반도로 전파되어 특히 동이족이 사는 동북아시아 지역에 제철산업이 잘 발달하였는데, 이를 보면 중국의 제철기술은 적어도 중화 문화권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는 잘 전파가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고대 야철 유적의 공통점은 유적이 대부분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하천 상류에서 해안으로 광석이 이동하는 동안에 자연 선광되어 집적되는 사철의 채취뿐만 아니라 숯과 철제품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서다. 생산되는 제품을 보면 괴련철을 가공하여 생활도구나 농기구, 무기를 만들거나 용융상태의 선철을 주형에 부어 주물을 만들었다.

고도의 성능과 품질이 요구되는 제품들은 초강법 등을 이용해 강철에 가까운 가단주철(可鍛鑄鐵)을 만들어 고급 용도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강도도 높고 인성도 좋은 고품질 강의 경우는 무기 등의 용도로 수요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보급이 제한되었는데, 이는 초강법의 경우 대량생산이 곤란하고 소요되는 인적, 물적 자원이 너무 많아 제조원가가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강의 대량생산에 의한 대중화는 베서머법이나 LD제강법과 같은 우수한 제강기술이 개발되는 19세기말까지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 전까지는 괴련철과 초강법 수준의 제조 방식의 소량 생산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에서 철기문화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으나 대체로 크게 두 단계를 거쳐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첫째 단계는 중국제 철기가 들어온 시기로 기원전 4~3세기경인데, 이는 전국시대 연나라 화폐인 명도전(明刀錢)이 압록강 중류지방에서 서북지방에 걸쳐서 철기류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단계는 철기가 본격적으로 생산,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로 기원전 108년 한나라 무제(武帝)에 의해 낙랑군(樂浪郡)이 설치된 시기인데, 이때부터 철기문화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한반도 북부지역에 유입된 철기류는 중부지역을 거쳐 서남부지역까지 파급되었는데 이 시기의 철기는 주조로 된 농기구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도끼․가래․낫 등 철제 농기구 주물이 한반도 전역에 걸쳐 출토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반도에 제철산업이 발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국 역사서의 기록에도 나와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기원전 한반도에는 변한과 진한이라는(합해서 변진한이라고도 함) 부족국가가 경상도 쪽에 있었는데 변진한에서는 철이 생산되어 한(韓), 예(濊), 왜(倭) 등 주위국가에서 사갔고, 무역에서 화폐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삼국지 권30 동이전 제30) 변진한의 제철기술은 중국 진(秦)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갖고 왔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철은 양도 충분하고 품질도 좋아서 주위국가와의 교역품으로 무역이 활성화 되었고 다양한 철기문화를 이루었다고 한다.(후한서 권085 동이열전 제075 한) 이 시대의 주요 철 유적은 배천 석산리, 봉산 송산리, 신천 구원산 등이 있는데, 주로 해면철을 생산했다고 한다.

고구려의 경우는 평안북도 풍전리, 황해도 풍천리 등에서 쇠부리터라고 불리는 제철 유적이 다수 발견되었다. 풍천리 가마의 경우는 높이 188cm, 직경 80cm인데, 이는 선철을 생산하였던 용광로로 추정하고 있다. 유적은 노남리 위층, 삼귀리 고분, 풍천리 고분, 아차산 보루 유적 등 여러 곳에도 있는데 여기에서도 무기라던가 농기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아차산 유적에서 나온 화살촉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고구려 제철 기술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화살촉은 생산과 가공이 용이한 괴련철을 소재로 형태를 만든 다음에, 강도, 경도 및 인성이 요구되는 화살촉 끝은 강을 단접한 후 담금질을 하여 마르텐사이트 조직으로 만들었다. 담금질을 해서 마르텐사이트 조직의 제품을 만들었다는 의미는 화살촉의 소재가 주철이 아니고 가단주철 내지는 주강이었다는 의미인데, 이 당시 고구려인들은 초강법을 이용해 가단주철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경우도 경기도 마장리 등 여러 곳의 쇠부리터가 발견되었는데, 이곳 가마는 직경이 1.2m 원형이었다. 충청북도 석장리에서도 가마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의 가마는 형상이 다양해 원형로를 위시해 방형로(方形爐), 장방형로 등 30여기의 제철로와 단조로가 발견되어 당시의 융성했던 제철업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당시 백제는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사신이 오가고 하였는데, 근초고왕(AD 346-375) 때에는 일본에서 온 사신에게 철정 40개 등 여러 가지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奇生聖音)이 왜왕 지(旨)를 위해 백련강(百鍊鋼)으로 칠지도(七支刀)와 함께 철정 40개를 만들어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칠지도는 1953년에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되어 있다. 칠지도를 만든 백련강은 괴련철을 목탄로에 넣어 가열시키며 침탄이 일어나도록 함과 동시에 철편을 두드리며 접는 과정을 수없이 많이 반복하여 제조한 강철과 유사한 특성의 단철이다.

신라는 울산의 달천광산 철광석과 경주 북천에서 생산되던 사철을 사용하여 철 생산을 활발히 하였다. 이 일대에는 울산 달천 야철지, 경주 녹동리 야철지 등 여러 개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이 지역 야철지의 경우에 제련로, 정련로, 주물로 및 단조로가 모여서 조성된 것이 발견되는데, 이는 대규모 일관 제철공장을 운영한 것을 의미한다. 제련로는 주로 원형로였으며 그 외에도 장방형로와 타원형로가 있다. 울산 달천의 철광산은 노천광산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철광산인데 기원전 1세기부터 채광이 이루어졌으며 규모로도 남한에서는 가장 크다. 고대 제련로 유적에서는 슬래그가 항상 출토되는데 이것을 분석하면 사용되는 철광석과 부원료를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결정질의 철감람석(Fayalite), 수지상의 위스타이트(Wuestite) 및 유리질의 Slag가 관찰된다. Slag에는 현대 용광로에 비해 철의 함유량이 많이 섞여 있어 30~50%나 되는데 이는 철 회수율이 매우 낮아 비효율적인 정련이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달천광에는 소량의 비소가 들어 있으며 여기서 생산된 괴련철이나 선철에도 포함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주요 야철지에서 발견되는 철 유물에도 비소가 발견된다는 것인데, 이는 달천 철광이 일본으로도 수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산 보원사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철제  여럐좌상 ( 출처 = 페로타임즈DB, 국립중앙박물관 )
서산 보원사지 통일신라시대 철제 여럐좌상 ( 출처 = 페로타임즈DB, 국립중앙박물관 )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제철산업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철유전이라는 국영공장을 운영하고 철 생산을 국가가 통제하였다고 한다. 573년에는 신라 3보(三寶) 중 하나인 장육존상이라는 대형 석가삼존 불상을 제조하여 황룡사에 조성하였으나 고려 고종 몽고병란 때에 녹아 없어졌는데, 총 무게는 3만5천근(21톤)이고 철이 1만2천근이 들어갔다. 이 불상은 당시 아시아 최대의 철 주조품으로, 주조를 위해서 약 25톤의 용탕이 필요했다. 이는 장육존상의 주조를 위해 근처에 대형 용해로가 필요했고 또 가까이에 대단위 야철 단지가 조성되었다고 판단된다. 첨부 불상 사진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철제 불상으로 서산 보원사지에서 발견된 것인데, 장육존상보다는 작으나 여전히 커 높이가 1.5m나 된다.
 

고대 일본의 제철

일본에서 철이 언제 독자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략 서기 3세기 야요이 시대 후기에 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5세기 이후 고분시대에 철을 제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제철기술의 유래 경로는 중국에서 직접 전래되었다고도 하고 한반도를 거쳐서 전래되었다고도 하는데, 두 경로 모두에서 기술이 전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높다. 도입 초기의 제철은 소형 가마를 이용하는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었는데, 6세기경에 한반도에서 이주민이 넘어오면서 더 발전된 제철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장인들은 이주민에게서 배운 제철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고유의 제철법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타타라 제철법(たたら製鐵法)이다. 타타라는 풀무를 밟아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인데, 일본인이 개발한 기술의 핵심은 공기 송풍설비로 추정된다. 실제로 어떤 품질의 철을 생산하느냐는 가열온도에 달려 있고 또 가열온도는 숯을 풍족하게 넣었다고 보았을 때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기를 불어 넣느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타타라 제철로(製鐵爐)는 첨부 개략도에서 보듯이 밑바닥은 점토 및 목탄을 두껍게 깔아 수분을 제거하고 열손실을 막도록 하였다. 제철로는 장방형으로 길이는 250~300cm, 폭은 70~90cm, 높이는 110cm 정도다. 사철 16톤 및 목탄 12톤의 원료가 투입되어 4일간 조업을 함으로써 케라(연철과 슬래그의 반용융 혼합물) 3톤을 생산하며, 선철의 경우 2톤을 생산한다고 한다. 제철로를 구축하는 데에는 4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그 대부분의 기간은 기초공사에 소요되고 노 자체의 축조는 하루, 이틀이면 끝난다.

일본의 타다라제철법 개략도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일본의 타다라제철법 개략도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일본에는 타타라 제철로와 같은 제철 유적지가 150여개나 되는데, 그 대부분은 시마네 현에 집중되어 있고 일부가 이즈모 지역이나 쯔루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시마네 현에 유적지가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신라에서 흐르는 동해안 해류를 타고 한반도의 제철기술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 지역에 고크로뮴(Cr) 사철이 많이 생성되어 있고 풍부한 산림자원이 있어 목탄 공급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시마네 현에는 제철에 관한 유적을 복원하여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는 스기야타타라 유적지, 철 역사박물관, 아사히타타라 유적지, 와코 박물관 등이 있다. 이 지역은 옛날의 타타라 제철공장이 현존하는 마을로, 18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제철공장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타타라 제철법은 저온환원법에 의해 철을 생산하는데, 먼저 해면철처럼 구멍이 많이 들어있는 연철과 산화물 덩어리인 슬래그가 반용융 상태로 붙어있는 케라를 제조한다. 케라는 채취 후 분쇄하여 연철을 분리하는데, 분리된 연철은 목탄과 함께 수차례 가열해 침탄 및 단조를 해서 옥강이라는 강철을 만든다. 일본도는 타타라 제철로 조업에서 나온 이 옥강을 이용해 만드는데, 일본이 만든 대표적인 고급 철강제품이다. 일본도를 만든 목적은 호신용이며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지만, 일본에서의 일본도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사무라이 정신을 상징하는 표상이기도 하다.
 

고대 인도의 제철

인도에서 철의 발견은 기원전 12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인도인에게 알려진 최초 형태의 철은 철광석이 아니라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단철(鍛鐵)이었다. 이 단철, 즉 천연철(天然鐵)은 철의 자연 상태의 모습으로 지구 표면 위에 놓인 금속 형태였으며 화학 분석을 해보면 6~8%의 니켈을 함유했다. 이 사실을 보면 고대 인도에서 만들어진 철은 인간이 광석을 정제해서 만든 철이 아니고 우주에서 떠돌다가 지구 대기권으로 낙하한 운철이었다. 이 운철을 이용해 가공하는 기술로부터 시작한 고대 인도에서의 제철은 기원전 4세기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과 접한 인도 북부의 라자스탄 주(州)에는 철 생산 유적들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많은 외국 왕들은 그들이 인도 왕들에게서 인도산 철과 강철로 만든 검과 장신구, 그리고 주괴(鑄塊)를 선물 받은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고대 인도인들은 장신구를 만드는 데 불순물인 인이나 황이 낮은 헤마타이트로 제조한 선철을 사용했다. 고대에는 철이 금보다 비쌌기 때문에 철은 구슬 모양의 장식품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됐다.

인도 델리의 철기둥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인도 델리의 철기둥 ( 출처 = 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

인도에서 철은 문명의 근대화를 나타냈다. 인도 수도 델리에는 AD 310년에 제작된 무게 7톤짜리 철 기둥이 지금까지 서 있다. 이 기념물은 고대 인도인들이 철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대 기록들에 의하면 인도산 철과 강철은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와 로마 같은 먼 나라들로 수출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인도 철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다는 것은 외국 왕들이 인도 철을 얻으려고 거금을 지불했다는 기록에서 잘 알 수 있다.

고대 인도에서 철과 강철 교역은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인도 철과 강철은 많은 나라 사람들이 선호하였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리와 기념물도 인도 철을 사용해 세워졌다. 이와 같은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인도에서의 제철기술이 고대에서부터 상당히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데, 학자들은 중국의 우수한 제철기술이 서역지방을 통해 인도에도 전해졌을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400년경, 인도 대장장이들은 어쩌다보니 철에 원하는 분량의 탄소를 결합시키는 제련법과 텅스텐, 바나듐이 포함된 철광석을 사용하여 강철을 제조하였다. 이 기술의 핵심은 용융된 금속을 담는 진흙 용기, 즉 도가니였는데, 대장장이들은 괴철로에서 제조한 작은 연철 막대기들과 목탄 조각들을 도가니 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밀봉한 다음 가마 속에 삽입했다. 그들이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어 가마 온도를 높이자, 연철은 목탄 속의 탄소를 흡수하고 녹았다.

인도 우츠강철 제조 재현 모습   ( 출처 = 페로타임즈DB, Ancient Origins © 2013 – 2020 )
인도 우츠강철 제조 재현 모습 ( 출처 = 페로타임즈DB, Ancient Origins © 2013 – 2020 )

도가니가 식자 순수 강철 주괴(鑄塊)들이 도가니 내부에 누워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강철을 ‘우츠 강철’이라고 부른다. ‘우츠’는 인도말로 ‘철’이라는 뜻이다. 인도 제철업자들은 그들의 우츠 강철을 전 세계에 내다 팔았다. 시리아 대장장이들은 우츠 강철을 사용해 지금까지 전설적인 검(劍)으로 전해 오는 ‘다마스쿠스 검’을 제작하였다. 이 ‘다마스쿠스 검’은 공중에 흩날리는 새의 깃털을 자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날카롭다고 전해진다.

강철은 무역상을 통해 스페인의 톨레도까지 전해졌는데, 그곳에서 대장장이들은 로마 군대를 위해 칼을 만들어냈다. 로마에 강철을 납품하면서 아비시니아(오늘날 에티오피아) 제국의 무역상들은 로마 사람들을 속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로마사람들에게 강철이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거짓 정보를 주었다. 만일 인도에서 온 것이라고 하면 로마 군대가 인도를 침략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거짓 정보를 준 것인데, 중국은 강철을 빼앗으러 정복하러 가기에는 너무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로마 사람들은 그들이 구입한 것을 중국 강철이라고 불렀으며 그것을 사용하여 무기를 비롯해 기본적인 도구와 건축 장비를 만들었다. 이로써 철이 귀금속 취급을 받던 시절은 옛일이 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로마 전사(戰士)들은 이제 강철 무기를 휴대하게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