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권오준 박사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⑧
[연재] 권오준 박사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⑧
  • 김종대
  • 승인 2020.09.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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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로 만든 철은 저온환원법에 의한 괴련철
강철 제조는 선철을 초강법 등 재처리 방식으로 생산
중국 춘추시대 철기 제작 시작, 전래설·자체설 대립
세계 최초 주조방식 주철 활용·수력 풀무로 量·質 향상

제4장 기술의 진화와 철강산업➀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 고대의 제철

강철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순물이 거의 섞여있지 않은 연철의 탄소 함유량을 늘려 강철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철의 탄소함유량을 줄여 강철로 만드는 법이었다. 전자의 방식을 취하려면 먼저 연철이, 후 자를 취하려면 먼저 선철이 나와야 한다.

연철은 원시 제철법이 적용되면서부터 만들기 시작했으나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 선철 제련기술이 개발되면서 없어졌다. 높은 정련온도가 요구 되는 선철 생산은 훨씬 나중에 이루어졌는데, 서양의 경우 15세기에 용광로 기술이 적용되면서야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제철의 역사를 통틀어 인류의 궁극적인 관심은 용광로에서 제조되는 선철을 원료로 하여 강철을 염가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19세기 중반, 제철기술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베서머 전로(轉爐)의 등장 이전에는 달성될 수 없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3,000년이 넘는 세월을 시행착오와 실험으로 보냈으며, 베서머 전로 발명 이후에도 끊임없는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인류가 단계적으로 밟아온 제철 기술의 진화과정을 살펴 본다.

철기시대의 개막, 괴철로(塊鐵爐)

공정 인류가 가장 먼저 만들어 사용한 철은 저온(低 溫)환원법에 의해 반(半)용융상태로 제조된 괴련철(塊鍊鐵)이다. 초기 철기 시대에는 철을 제련할 수 있는 용광로가 없어서 청동을 제련하던 가마를 이용해서 연철을 만들었을 것이다. 단단한 나무로 고품질의 목탄을 만들고 목탄으로 철광석을 완전히 에워싼 다음 연기를 배출할 굴뚝 하나와 공기를 공급하는 풀무를 끼워 넣을 구멍들만 남겨 제련로를 구축한다. 목탄이 먼저 가마 속으로 장입(裝入)되고 그 다음에 철광석과 추가 목탄이 장입되었다. 불을 붙이고 철광석을 녹일 충분한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서 풀무를 사용하였으며, 대장장이들은 맹렬하 게 풀무질을 하여 분위기 온도를 1,000℃ 정도까지 올라가게 한다. 이 때 온도가 약 800℃ 이상이 되면 목탄 속의 탄소는 광석보다는 공기와 반응하여 일산화탄소가 만들어지고 철광석을 환원하는데, 이렇게 철광석을 환원하는 것을 저온환원법이라고 한다.

저온환원법에 의해 제조된 괴련철은 그물 형태의 해면철(Sponge Iron)을 형성하여 철과 철 사이의 빈 공간에는 철광석에 포함되어 있던 비(非)금 속불순물이 반(半)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슬래그(Slag)가 남게 된다. 구리 제련 과정에서처럼 목탄 에서 공급되는 탄소는 공기 및 철광석 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탄산가스가 만들어지면서 열량을 공급하여 가마의 온도를 높여서 철광석의 환원을 촉진시킨다. 목탄이 다 소모되고 가마가 식은 후 얻어진 철은 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덩어리가 되어 가마 바닥에 남은 슬래그를 포함해 불순물이 많은 괴련철이 된다.

괴련철의 생성량은 기본적으로 가열온도와 공정시간에 따라 변하긴 하겠으나 광석의 투입량에 비해서 매우 적을 수밖에 없었다. 괴련철 내의 연철(軟鐵)은 탄소 함유량이 매우 적은(0.1% 이하) 저탄소강인데 연성이 큰 편이어서 소성가공은 용 이하나 순도가 높지 않아 강도, 경도 및 인성이 너무 낮아 도구나 무기를 만들어 사용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연철을 가지고 쓸 만한 철제 도구나 무기를 만드는 데에는 추가 정련공정이 요구되었다. 저온환원법에 해당하는 현대기술로는 직접환원법이 있어 해면철(Sponge Iron), 철분말(Iron Powder), 입철(Luppe) 등을 생산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제선 및 제강 조업 시 부원료로 사용하여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제철 설비기술의 발달에 따라 원시적인 괴철로는 고로와 유사한 형태로 개선되면서 확보할 수 있는 온도도 높아지게 된다. 고로의 풍구 앞에서 확보할 수 있는 온도가 약 1,000℃ 이상이 되면 목탄 중의 탄소는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많은 열을 발생시킨다. 이렇게 생성된 CO₂는 1,300℃ 이상의 고온에서 다량의 탄소와 반응하여 일산화탄소 가스를 생성 하면서 열을 흡수한다. 이 반응은 가역반응으로 고로 내의 조건에 따라 진행 방향이 결정되는데, 실제 고로 내에서는 이 반응이 역으로도 진행되어 일산화탄소가 분해하여 이산화탄소와 탄소로 분해되고 분해된 탄소는 환원된 철 속으로 침탄(浸炭) 되어 용융점이 낮아지면서 녹게 된다.

가역반응으로 생성된 일산화탄소는 고온에서 철광석 내의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면서 철광석을 환원하고 열을 발생하여 철을 녹이는데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용융철을 제조하는 방법을 고온환원법이라고 한다. 고온환원법에 의해 생성된 철은 일산화탄소의 분해로 만들어진 탄소를 활발히 흡수하여 침탄이 되었다. 침탄이 되면 용융점이 점차 낮아져 액체 상태로 노의 하부에 고이게 된다. 이는 순수철의 용융점은 1,538℃이지만 탄소함유량이 4.3%가 되면 1,140℃ 로 낮아지기 때문인데, 침탄이 진행됨에 따라 용융점이 낮아지고 용해하는 선철의 양도 증가한다.

역사 연구자들이 곧잘 간과하는 것 중의 하나는 고대의 금속 장인들은 철이 녹을 정도로 높은 온도를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을 위시하여 인도, 중동, 로마 등 다른 지역에서도 BC 4세기경 이후 고온을 확보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으나 용융선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온도가 높진 않았다. 고온을 얻기 위해서는 우수한 품질의 숯이나 코크스와 같은 연료가 필요할 뿐 아니라 공기를 불어 넣을 풀무와 같은 장치가 필요하고 용해로의 구조도 보온이 잘 되어 열이 빠져나가지 않게끔 잘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충분히 높은 온도를 얻어 용융 선철을 연속적으로 제조하는 것은 중세까지도 실현할 수 없었던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온도 확보기술이 조금씩 발전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용융철의 양도 늘어나고 이 용융철을 다시 가공해 품질이 향상된 철강 제품의 생산도 점차 늘어났다. 결국 장인들은 강철의 제조는 용광로를 이용해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내고, 용광로에서는 용융선철을 먼저 만들고 이 용융선철을 초강법이나 관강법의 원리를 적용한 제강 전용설비에서 재처리해 강철을 만드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을 추진해 왔다.

괴철로/사진=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괴철로/사진=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인류 최초의 철 문명지, 아나톨리아

인류 문명의 발달과정을 설명하는 지배적인 고고학 이론은 삼시대법(三時代法)이다. 삼시대법은 무기와 도구의 소재로 무엇을 주로 사용했는가를 따져 고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이은 철기 시대는 철을 주로 사용하여 도구나 무기를 만들던 시대로서, 고고학에서 선사 시대를 분류하는 세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이다. 철기 시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기원전 1500년경, 유럽에서는 그보다 500년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철기 시대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간이 문자를 사용한 역사 시대에 들어서면서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이후 철의 유용성이 확대되면서 더욱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초기 대장장이들은 동 제련을 하면서 동광석과 함께 들어간 철광석에서 단단한 금속이 얻어지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철의 유용성을 알게 되고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철의 유용성을 처음으로 터득하여 철기 문명이 시작된 곳은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이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정설이다.

지난 2005년 아나톨리아 지방의 카만칼레호육유적에서는 철제 단검이 발견되었는데, 이 단검을 분석한 결과 BC 2100~1950년에 제조되었으며 단검의 소재는 운석이 아니고 철광석을 제련해서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 발굴지 주변에는 제련 후 남은 슬래그도 출토되어 이곳이 인류 최초의 철 제련지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로써 인류의 철 생산 시기는 약 500년 이상 당겨졌다. 이 철제 단검 외에 아나톨리아와 가까운 조지아공화국과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도 초창기 제련시설과 유물이 여러 개 발견된 바 있는데, 이는 초기 철기시대가 아나톨리아 인근의 넓은 지역에서 시작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사례이다.

아나톨리아는 철기뿐만 아니라 청동기 제작도 처음 이루어진 곳으로, 당시 금속 제련기술이 가장 앞선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히타이트인들이 북쪽에서 내려와 하투샤(Hattusha)를 수도로 하는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의 철기 문명이 특히 우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이 지역 문명의 중심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국인 바빌로니아였는데, 신생 히타이트인들은 이들과의 전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으며 살아남기 위해서 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았다.

히타이트인들이 하투샤를 수도로 정한 것은 이 지역에 철광석의 매장이 많기도 했지만 하투샤로 불어오는 황야의 맹렬한 바람을 이용하여 용광로의 온도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터득한 원시 제철기술인 괴철로 기술을 이용하여 괴련철을 제조하였으며, 이 철 원료를 가공하여 칼, 창, 방패 등 여러 가지 무기를 만들어 침략에 대비하였다.

카만칼레호육 유적 발굴 현장/사진=페로타임즈DB, 360turkey.net
카만칼레호육 유적 발굴 현장/사진=페로타임즈DB, 360turkey.net

고대 중국의 제철

철 제련기술은 기원전 8세기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족(族) 유목민들에 의해 서쪽으로부터 중국에 전파되었다는 것이 현대 고고학계에서 유력한 가설이다. 중국 고대사의 권위자인 도널드 B. 와그너 박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은(銀)과 보석이 상감(象嵌)된 청동제 고급 검의 손잡이에 끼워 넣어지는 날로 서운철(隕鐵)이 기원전 11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철제 날이 있는 고급 무기를 만드는 전통은 기원전 5세기까지 지속되었으나, 이 시기에 이르면 검 제작자들은 검의 날을 운철에서 제련된 철로 전환했다.

중국 허난성(河南城) 싼먼샤(三門峽) 부근에서 근년에 발굴된 서주(西周) 제후국의 집단 매장지에서는 대륙 북서쪽과 문화적 연관성이 있는 인공 유물 다섯 점이 출토되었다. 가장자리가 청동과 철로 된, 스타일에서 상호 연관성이 뚜렷한 이유물 다섯 점을 분석한 결과 세 점은 운철이며 나머지 두 점은 제련된 철로 드러났다. 양자강 유역에서 발견된 철 유물로 기원전 8세기경에 만들어진 단검도 있는데 단검의 손잡이가 옥이나 황금으로 되어있다.

히타이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괴철로 제철기술은 당시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남쪽으로는 도리아인이 살던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전해졌으며,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 및 중국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이고 중국인들이 스스로 제철기술을 터득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떻든 중국에서 철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춘추시대로 추정되며 한나라 시대에는 상당한 규모의 산업이 조성되었으나, 중국의 철기문화는 서아시아보다는 500년 정도 늦다. 그때까지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청동을 많이 사용하였다.

청동의 주 용도는 제사용구와 무기였으며 일부 동남부 지역에서는 농기구 제작에도 활용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반(半)응고 상태에서 제조하는 괴련철을 활용하는 철제품과 더불어 용광로에서 선철을 완전히 녹인 다음 주조품을 제조하는 기술도 BC 4세기경에 개발하였다.

이러한 제철기술은 중국 동남부로 확산되고 나서야 뭔가 유용한 것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그 때까지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청동의 유일한 용도는 제기(祭器)와 무기(武器)였다. 그런데 대륙 동남부의 ‘오랑캐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서 최초로 청동을 대거 농기구 제작에 활용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철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강인하고 저렴한 청동의 대체물을 제공하여 많은 농기구가 철로 제작 되었다.

이곳에서는 철주물의 제조도 처음으로 시도되었는데, 그것은 청동을 녹이는데 사용되었던 종류의 가마에서 철 블룸을 침탄(浸炭)하고 용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단조(鍛造)보다는 주조(鑄造) 용으로 철을 공급할 목적에서 괴철로들이 최적화되면서 용광로가 BC 4세기경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축조되어 용융 선철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300년경, 중국 대장장이들은 철광석과 목탄이 섞여 타는 용광로에서 반(半)용융 상태의 괴련철 대신 걸쭉한 금속 액체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목탄의 탄소가 철에 흡수되어 용융점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중국에서 일찍이 고온환원법을 적용해 고탄소의 주철 내지는 주강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탄소함량이 2% 이상이 되면 용융점이 1,400℃ 이하 1,150℃ 범위까지 낮아지므로 용융철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온도는 뜨겁게 타는 목탄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 여기서 나온 뜨거운 용융철을 모형 틀에 붓고 기다리면 모형 틀 속에서 식어 주조제품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조제품은 매우 단단하긴 하나 깨지기 쉬워 추가적인 열처리가 필요한데, 고대 중국 대장장이들은 이 비법을 터득한 것으로 추정 된다.

중국의 대장장이들은 철에 탄소를 공급하여 용융점을 낮추는 목탄의 역할을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주철이 연철에 비해 가진 이점을 재빨리 알아냈다. 그들은 주조품의 활용을 확대하기 위해 개선된 특성들을 가진 주철을 생산하는 방법의 다양화를 시도했다.

이를테면 식었을 때 쉽게 깨지지 않는 주조 방법이나 주조 후 열처리를 해서 물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고안해 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이 만들어진 주조기술을 활용해 복잡한 형태의 도구나 무기를 만드는 데는 청동이나 금의 주조를 위해 이전에 개발되었던 모든 기법들이 채택될 수 있었으며 이는 주철의 활용성이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복잡한 형상들의 주철 도구와 부품이 이런 작업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게 되어 주철은 이제 중국인의 일상 생활용품과 토목공사 도구를 만드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중국인에 의한 주철의 활용은 유럽보다도 훨씬 빨라 진(秦)·한(漢) 시대(BC 221~AD 220)에는 주철 생산이 널리 활성화 되었는데 그 당시 주철 생산량이 15만 톤을 넘어섰다는 기록이 있다. 춘추시대에 철기 생산을 시작한 중국은 진․한 시대에 들어오면서 제철기술도 발전하고 생산량도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그 중에 하나가 수차를 이용하는 수력 풀무의 발명이었고 용광로 개념의 용해로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제철산업의 발달은 제철로의 온도를 올리는 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한 나라 사람들은 수력 풀무를 활용하고 고온에 견딜 수 있는 내화물로 축조한 용광로를 사용함으로써 온도를 높일 수 있었으며 제조되는 선철의 양과 질을 향상할 수 있었다.

중국 고대 주철제품/사진=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중국 고대 주철제품/사진=페로타임즈DB,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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