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철강 생산 확대 요구 신중해야 한다
[페로칼럼] 철강 생산 확대 요구 신중해야 한다
  • 정하영
  • 승인 2021.06.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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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판 증설 이후 구매량 급감, 공급과잉 가격 인하 활용까지

지난 21일 건설산업연구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건설 자재 가격 상승 현황 및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철근 등 철강재 생산량을 10% 이상 늘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정부의 개입을 요청했다.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으로 건설 활동도 꾸준히 유지되고 그만큼 건설자재 수요증가를 예측하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함께 철강재 가격 상승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건설생산에 투입되는 주요 금속자재 가격이 20% 상승하면 건설사들의 부분 손실, 40% 상승하면 실질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중소건설사들에 피해가 집중된다며 피해 최소화를 위해 중소건설사 협의체 구성 및 소통창구 마련 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접하면서 과거 조선사들의 후판 증산 요구와 정부의 요청, 그에 따른 철강사들의 실제 증설 결과를 돌아보게 된다.

후판으로 만들어진 선박 (출처 포스코 웹사이트)

2008년 국내 후판 생산능력은 809만톤 수준이었다. 하지만 조선 활황으로 후판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조선사들은 후판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철강사들에 증산은 물론 생산능력 확충을 요구했고 정부도 맞장구를 쳤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후판 3사는 모두 증설에 들어갔고 후판 생산능력은 2010년 1389만톤을 거쳐 2014년 1459만톤까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조선 경기가 침체하면서 후판 수요는 크게 줄었다. 철강사들의 후판 가동률은 급락했지만 증설을 요청했던 조선사들 역시 그뿐이었다. 구매량 축소뿐만 아니라 경영 어려움을 이유로 중국산 후판 수입을 무기 삼아 가격 할인을 요청했다. 철강사는 판매를 위해 가격을 낮췄고 후판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당시까지 통상 후판 가격이 열연강판보다 높은 것이 정상이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도 후판 가격은 열연강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철강사들 역시 더이상 설비가동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실제로 일부 설비를 폐쇄하면서 2017년 이후 현재 생산능력은 1115만톤으로 크게 뒷걸음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위 사례에서 우리는 철강 대형 수요가들조차 생산 확대 요구만 있지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확인했다.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공급과잉을 가격 인하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번 건산연의 요구가 철강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는 명약관화하다. 더욱이 가격은 이미 피크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며 납기가 단축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등 이미 시기적으로도 증산을 요구할 시점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지금 시점에서 증산이 이뤄진다면 과잉, 재고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철강재는 속성상 2~3%만 부족해도 크게 부풀려지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증산을 위해 저원가보다는 최대 생산을 위해 높은 제조원가로 생산한 철근 등을 건설사들이 모두 구매해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이런 상황임에도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연구기관이 증산을 요구하고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상당히 적절치 못한 행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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