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 이후 본격적인 초기 문명의 철기 시대는 바다(해상) 민족이 청동기 시대를 붕괴시킨 후인 기원전 1,200년대부터다. 중동에서 나타난 최초의 철기가 점차 주변국으로 확산되는데,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는 기원전 12세기, 유럽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8~9세기에 철이 보급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역시 철의 존재감이 상당히 높았음을 입증하는 기록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서양 문학의 최초,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 구전으로 성립되고 기원전 6세기경 문자로 기록됐다고 추정된다. 기원전 880년경 지어진 호메로스의 일련의 시편들에 철제 농기구에 대한 언급이 무수히 나온다. 또 ‘일리아스’에는 운동 경기의 승자에게 철괴를 상으로 주었다는 내용도 있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집필한 ‘역사(기원전 446년)’에도 철이 언급돼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50년경 철의 산지로 엘바섬의 광산들, 칼리베스의 광산들을 열거한 바 있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서는 본토보다 식민지에서 문화가 더 융성했는데 이오니아 인이 건설한 소아시아 서해안의 밀레토스가 대표적이다. 밀레토스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는데 바로 철제 농기구 보급에 기반한 농경 기술의 발달로 잉여 농산물이 무역을 성행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스의 자유정신, 합리정신의 출현과 학문, 철학의 발달 그 근원에 철제 농기구가 존재한 것이다.
한편 철은 고대 중국에서 유교를 출현시킨다. 중국의 철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시작된다. 이 시기에 중국 전통사회의 기본적인 성격이 형성되는데 철제 농기구, 우경(牛耕), 관개시설이 보급되고 생산력이 증대되며 사상적으로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등장한다. 특히 높아진 농업 생산성은 영구 정주(定住)를 가능케 했고 정주 농업의 결과로 부(富)가 늘어난 신흥 사회계급이 제왕의 신권에 도전함으로써 왕 또는 지배자의 권위가 약해졌다. 그러자 왕족 계급은 그들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하여 새로운 철학을 이용하게 되는데 유교(儒敎)가 바로 그것이다. 유교의 보급은 철로 만든 도구를 사용한 인간이 농업 생산을 늘리고 부를 측적하여 기존 지배층에 도전하면서 나타난 사회현상으로 해석된다.
유교의 대표적인 두 철학자로는 공자(기원전 552~479년)와 노자(기원전 604~531?)를 꼽는다. 공자의 인(仁)의 사상은 사람다움(人),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 등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핵심은 ‘극기복례(克己復禮)’, 곧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 즉 인(仁)”이다. 공자는 ‘인(仁)’을 단지 도덕적 규범이 아닌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사상으로 여겼다. 인의 실천을 위해서는 예(禮)라는 형식을 밟아야 하며 그것의 핵심이 곧 충(忠)과 효(孝)로 군왕의 지배논리 근간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동서양 사상과 철학의 근간이 된 그리스와 중국에서 살펴보았듯이 철은 고대 인류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종교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1883~1969)는 1949년 출간한 그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축의 시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중추(中樞)의 시대’이다. 이 시기에 페르시아(조로아스터), 인도(붓다), 중국(공자), 그리스(소크라테스)에서 각각 약간의 시차만을 두고 종료와 사상에서 새로운 사고의 방법이 출현한다.
축의 시대의 지리적 범위에 속하는 모든 유라시아 문화들 사이에 직접적인 문화적 접촉이 없었으면서도 이 문화들에서 동시적으로 인상적인 문화적 발전이 진행되었다는 점에 야스퍼스는 주목했다. 야스퍼스가 명명한 ‘축의 시대’는 철깅 시대와 거의 정확히 겹친다.
‘축의 시대’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제 도구 사용이 농업혁명을 촉발하고 이것이 잉여 식량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식량을 비롯해 인간생활의 각 부문에서 생성된 잉여가 축적되어 그것을 바탕으로 인류의 정신적 발전, 계몽이 촉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