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인문학⑤]철과 인간의 만남(2) 문명 발달시킨 주역
[철강과 인문학⑤]철과 인간의 만남(2) 문명 발달시킨 주역
  • 정하영
  • 승인 2020.02.12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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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 초기에도 철기 발견,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이 주인공
철 생산은 청동에 섞여 제련된 철 덩어리 단야 과정에서 시작돼
풍부한 매장량의 철기 생산으로 인류의 생활 광범위하게 변화
노동생산성 높아져, 고대국가 형성의 근간 등 문명 발달 가져와

지난 회에 인간과 철의 조우(遭遇)를 ‘채광착오설’, ‘산불설’, ‘운석설’ 3가지로 설명했다. 인류 문명은 철과 만난 후 극적으로 발전하게 됐는데 그 근간에는 최초의 금속소재인 동(銅)과 청동(靑銅)이 존재했다.

특히 청동은 동보다 강하면서 주조(鑄造)하기도 쉬워 급속히 확산되면서 신석기 시대 이후 마땅히 나와야 할 동기(銅器) 시대를 건너뛰게 만든 장본인이다. 인간은 청동으로 새로운 무기, 농기구,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장식물 등을 만들어냈다.

청동기는 곧잘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철은 토기에서 청동기까지 오랜 기간의 경험과 기술 축적이 있었기에 인간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인류 최초의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 등 모두 청동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인류의 4대 문명에서도 철기는 발견된다. 바로 운철이다.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고 그 주체는 수메르인이다. 수메르인은 기원전 3500년 경에 모습을 드러냈고 약 1500년 동안 존속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인은 인류 문명의 선구자다. 그들의 쐐기 모양 설형문자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수메르인이 살았던 시대는 청동기 시대다. 그런데 뜻밖에도 수메르어 중에 ‘철’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 ‘안바르’라고 하는데 ‘하늘’과 ‘불’을 의미하는 설형문자로 이뤄져있다.

결론적으로 ‘안바르’는 ‘하늘에서 떨어진 불’이라는 의미로 수메르인이 철을 알기는 했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밖에 몰랐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수메르인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을 가공하게 됐고 운철이 돌보다 물러서 변형은 잘되는데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운철은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산소가 타버려 이미 야철(제련)이 끝난 상태로 가공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 대장장이가 운철로 만든 물건들 중 일부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메소포타미아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도 기원전 3500년경 운철로 만든 투구, 기원 2000년경에 만들어진 철 부적 등이 발굴되었다. 크레타섬, 인도, 중국 등 인류가 문명을 일군 지역에서도 대부분 철기가 발견되는 이유다.

그러나 운철은 인류를 바로 철기 시대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원한다고 해서 언제 어디서나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철을 가공하며 철에 대한 경험과 기초지식을 습득하였을 것이고 직접 생산하고자 하는 바람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토기를 만들다가 동(구리)을 발견했듯이 인간은 청동기를 만들다가 철과 마주친 것이다.

동과 주석 광석을 가마에 넣고 온도를 충분히 높이면 두 광석이 녹으면서 섞여 청동이 흘러나오게 된다. 그런데 가마 바닥을 청소하던 중 녹다 만 것 같은 고체덩어리를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철이다. 철광석(산화철)이 구리와 주석 광석에 섞여 있다가 가마 온도가 평소(1100℃ 내외)보다 높아진 상태에서 철광석이 어느 정도 환원된(산소가 제거된) 철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철의 용융점은 약 1538℃라 당시 가마의 온도에서는 철광석 자체를 녹일 수 없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온도에서 녹다 만 덩어리 상태로 철이 일부 제련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리라.

이 철 덩어리를 대장장이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단야(鍛冶)하는 과정에서 청동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청동보다 무른데 오히려 질기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隕鐵)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드디어 인간이 철을 스스로 발견하고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풍부한 매장량의 철은 무기, 장신구뿐만 아니라 화폐, 농기구, 그릇 등 생활용품의 재료까지 두루 쓰였다. 철을 사용하면서 인류의 생활은 광범위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철제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힘과 권력을 주었고 자연스럽게 지배층이 형성됐다.

낫, 호미 등 철제 농기구 사용으로 농업기술이 발달하여 노동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 한 사람이 먹고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분량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인구가 크게 늘었고 집단 규모도 점점 커졌다. 지금까지 그냥 죽여야 했던 전쟁 포로를 노예로 부리게 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정치, 종료(교), 군사 등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잉여 생산은 생산하지 않는 소비 도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 군장 세력이 통합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군장 세력이 왕권 하의 귀족 혹은 관료로 편입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후에 신분제로 연결된다. 청동제 무기를 쓰는 부족이나 국가가 철제 무기 국가에 통합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대국가 형성과 나아가 제국으로 발전하는 근간에 철기가 존재한 것이다.

이렇듯 철의 발견과 사용은 단순한 도구의 변화를 넘어서서 문명의 발달을 가져온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자. 생활, 사회구조까지 변하게, 발전하게 만든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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