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인문학⑥] 철의 제국 ‘히타이트’…신(神)의 소재에서 인간(人間)의 철(鐵)로
[철강과 인문학⑥] 철의 제국 ‘히타이트’…신(神)의 소재에서 인간(人間)의 철(鐵)로
  • 정하영
  • 승인 2020.02.27 0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 문명의 본격적 발달과 사회구조 변화, 발전 주도
철기시대, 기원전 2천년 아나톨리아 히타이트가 시작
수도 하투샤의 자연 바람이 철광석 제련 가능케 해
히타이트제국, 철기 바탕 바빌로니아 제치고 서아시아 패권
비옥한 초승달 지역
비옥한 초승달 지역

태양풍을 막아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준 철을 인류가 소재로 사용하게 되면서 생활의 변화는 물론 문명의 본격적인 발달과 사회구조까지 변화, 발전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인류와 철의 조우(遭遇) 이후 본격적인 철기시대는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시작한 것일까?

때는 기원전 2천년 경,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북단의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인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종전 학자들은 기원전 1500년 전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철이 처음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러시아 남부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초기 제련시설이 40여 곳 발견된 탓이다.

그러나 2005년 고고학계는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의 카만칼레호육 유적에서 작은 철 조각을 발굴한다. 길이 5㎝로 철제 단검 일부였다. 제작 시기는 기원전 2100~1950년으로 추정했다. 중요한 것은 운철이 아니라 철광석을 제련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성분 분석 결과였다. 발굴지 주변에서 제련 후 남은 철 찌꺼기도 출토돼 이곳이 인류 최초의 철 제련지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인류의 철 생산 시기가 약 500~600년경 당겨졌다. 아나톨리아는 원래 청동기 생산이 처음 이뤄진 곳이기도 했다. 금속 제련 기술이 가장 앞선 지역이라 철기 최초 생산의 신뢰성을 높여줬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및 이집트의 국가들은 청동기를 사용했는데, 오직 히타이트만이 용광로를 이용해 철을 제련했다. 이 철제무기를 바탕으로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다. 이집트 등에서도 극히 소량이지만 철기가 사용된 흔적이 있으나, 운철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철광석을 제련하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용광로에서 철을 녹일 정도로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산소를 공급할 풀무가 필요한데 당시 히타이트에는 풀무가 없었다. 때문에 히타이트 문명은 풀무의 역할을 자연의 바람으로 대체했다. 특정한 시기에 수도인 하투샤 부근의 황야에 맹렬한 바람이 불어온다. 히타이트인은 이 시기에 황야에 용광로를 설치하고 맹렬한 황야의 바람을 풀무 대신으로 용광로가 철을 녹일 수 있는 높은 온도를 가까스로 얻어냈다.

이런 이유로 히타이트는 멸망하는 날까지 하투샤를 버릴 수 없었고 바람의 신이 최고신이었다. 당시 히타이트 문명에서는 '철기 자체가 초자연적인 신성한 재료'로 대우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히타이트제국 지도
히타이트제국 지도

히타이트인은 원래 흑해 북쪽 지방에서 살았다. 기원전 1700년경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내려와 정착했다. 정착 초기 만해도 히타이트는 하투샤(보가즈쾨이) 중심의 작은 도시국가였다.

당대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은 메소포타미아였다. 수메르 문명이 멸망하고 300년 정도 지난 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패권을 차지했다. 히타이트의 전성기는 바로 그 다음이었다. 히타이트는 바빌로니아를 물리치고 서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메소포타미아 인들이 모르는 자신들만의 무기, 바로 철 생산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대에 히타이트를 ‘철의 제국’으로 부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단순히 철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철의 제국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히타이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철을 생산했다. 그러나 히타이트에 비해 제련 기술 수준이 떨어졌다. 불순물이 많으면 철의 질이 떨어지고 그런 철로 만든 철기는 품질이 나쁠 수밖에 없다. 히타이트가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히타이트의 철 생산 기술이 주변을 압도했던 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히타이트 역시 처음부터 철을 대량 생산할 수는 없었다. 철의 양이 부족했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투샤에서 발굴된 점토판(문자)에 따르면 철은 금보다 5배, 은보다는 40배나 비쌌다고 한다. 히타이트 인들은 기술을 발전시켜 철 생산량을 꾸준히 늘렸고 철의 지위는 떨어졌다.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철의 혜택을 입게 된다. 신의 소재(素材)로 불릴 만큼 귀한 금속 철이 드디어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