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규의 고철 이야기] 2023년을 돌아보며
[박봉규의 고철 이야기] 2023년을 돌아보며
  • 박봉규
  • 승인 2023.12.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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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한국철강자원협회 사무총장  (전 현대제철 부장, 피제이로직스 대표)
박봉규 한국철강자원협회 사무총장 (전 현대제철 부장, 피제이로직스 대표)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며 새해를 맞이하였는데 벌써 계묘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토끼는 영민하고 지혜로워 3개의 굴을 파서 위험에 대비한다(狡免三窟)고 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며 사업의 안정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내부 보고서에 적었던 기억이 난다.

새해를 맞이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종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세계적인 금리 인상 완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 시행 기대 등으로 경제 전문가들이 너도나도 “상저하고(上低下高)” 즉 경제 상황이 상반기에는 침체가 지속되지만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상반기의 어려움을 견뎌 내면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에 따른 인플레이션 완화 등으로 경제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세밑에서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니, 3년여 동안 기승을 부렸던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연초의 기대대로 돌아가지 않은 것 같다.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은 끝 모르게 이어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함으로써 ‘중동의 화약고’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전쟁으로 세계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세계적인 공급망 차질에 따른 에너지 및 곡물 수급 불안정으로 아직 세계 경제는 침체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경제도 상반기에는 에너지 수입 증가와 반도체 등 주력산업의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자동차 산업이 고군분투하였다. 하반기에는 반도체 감산 효과, AI 및 로봇산업, 차량 자율주행 실현 기대 등으로 반도체 산업의 부흥, 방위산업 및 2차 전지, 원자력 발전 산업이 회복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다소 위안거리로 여겨진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1년 내내 어려운 시기를 보낸 것 같다. 고금리 현상 및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우려에 따른 전반적인 건설 경기 부진으로 국내 철근 수요가 1천만톤을 하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철강산업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연관 사업인 철스크랩 업계도 튀르키예 및 동남아 가격 상승 등 국제 시황과 달리 지속적인 가격 하락, 특히 10월 중순 이후의 가격 하락세에 대하여 속수무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3년 철스크랩 공급사의 경영 실적은 공급량은 전년과 별로 차이가 없지만 가격 하락에 따라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20~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수익성은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전쟁에 따른 에너지 확보 경쟁으로 각국의 ‘2050 탄소중립’ 정책 실행이 후순위로 밀린 듯 했으나, 지난 12월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처음으로 ‘탈화석연료 전환’이라는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이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철강산업은 발전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으로 철강산업에서 CO₂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은 철강재 생산 과정에 원료로서 철스크랩 사용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해지는 철스크랩 산업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생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철스크랩의 수집 및 회수량 확대와 품질 관리 등 공급 측면에서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 실행을 위하여 철스크랩의 자국 우선 소비 정책으로 세계 교역량은 줄어들고, 특히 최대 수입국인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여력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며, 고급 철스크랩 부족 상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약 10억톤에 이르는 국내 철강축적량으로부터 회수율을 높이고, 또 선별 및 분류를 철저히 하고 가공·정제를 통해 고품질화하여 제강사에 공급하여야 한다.

둘째, 철스크랩 산업이 단순히 제강사에 원료를 공급하는 종속적인 산업이 아니라 독자적인 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 관리 역량 향상 및 철스크랩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AI검수 시스템 도입 등 인프라 구축 및 선진화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여야 한다.

셋째, 산업이 성숙할수록 내 사업장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산업 전반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철강자원협회를 중심으로 참여와 소통을 통하여 합리적으로 현안을 협의하고 해결해 나가며, 법규 및 제도적인 규제는 정부 및 관계 기관에 건의하여 사업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성숙된 사업가적 의식을 갖고 상생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눈앞의 ‘장사’가 아니라 긴 안목으로 ‘사업’을 영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23년은 무척 어려웠으니 2024년은 훨씬 나은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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