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의 의학이야기] 전염병 치료는 사회관계 회복
[김해은의 의학이야기] 전염병 치료는 사회관계 회복
  • 김해은
  • 승인 2020.06.23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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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율 낮으나 전염력 훨씬 강해
관계 단절·고통 속 고립 유발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도봉구 의사회 부회장)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도봉구 의사회 부회장)

감염의 원인은 감염자와의 접촉이다. 접촉의 사전 의미는 면과 면이 맞닿는 것이다. 5년 전 메르스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환자와 2미터 이내에 한 시간 이상 노출된다면 전염 위험이 있다고 했다.

환자의 감염경로를 추적해 보면 환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 기침으로 내뿜는 미세 포말에 바이러스가 실려 입원실과 응급실 공기를 오염시켰다.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오염된 공기를 장시간 들여 마시게 되면 병원균이 전파되었다. 환자의 객담과 분비물이 뭍은 물건에 접촉해도 메르스 바이러스 가 옮겨가는 것으로 추정됐다.

코로나-19로 이름표를 단 RNA 바이러스가 다시 돌아왔다. 이 녀석은 과거에 만났던 이들의 친척인 SARS, MERS 바이러스와 격이 다르다. 치사율은 조금 낮으나 전염력은 훨씬 강하고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 여름에도 그 세력이 약화되지 않는다. 숨쉬는 모든 연령층을 공략한다. 수 많은 사람이 접촉했다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을, 더러는 생명을 잃는다.

코로나-19에는 지능이 없다. 자연의 일부로 그냥 존재할 뿐이다. 인류의 약점에 딱 들어맞는 형태로 출현 했을 뿐이다. 그러나 RNA 바이러스의 진화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반란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악으로 분류되는 것은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통 속에서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인류사회에서 박멸 되어야할 이유이다.

코로나-19는 대도시에 사는 내 삶의 현장에도 침투했다. 나는 선별 진료소에서 고군분투했다. 환자를 진단하고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주어야 했다. 며칠 전 환자가 진료실로 방문하여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아 일상에는 지장이 없지만, 가까이 접촉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에 주홍글씨를 단 채 의심의 눈빛을 감수하고 있다.

스스로 조심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안심하고 진료 받을 수 있는 호흡기 선별진료소를 지역별로 효과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런 추세의 유행이라면 앞으로 최소한 수년간 현 상태의 역병이 유지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역병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끊어 놓는다. 한양의 성안에 돌림병이 돌면 왕족과 양반들은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성 밖 한적한 안가로 피접을 갔다. 양민들은 돌림병에 걸리면 강제로 성 밖 신당동에 있는 활인서로 옮겨져 격리되었다. 新堂洞은 원래 神堂洞이였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무녀들이 그들의 원혼을 달래는 동네였다. 활인서는 고려 태조에 생겨난 제도로 동·서 대비원을 두어 병자와 갈 곳이 없는 사람을 수용하여 구호활동을 하였다. 조선시대 태종 때 불교의 명칭을 벗고 동·서 활인원으로 개칭하였고 동 활인원은 동소문 밖에, 서 활인원은 서소문 밖에 두어 도성 내의 병자와 오갈 데 없는 사람을 치료하고 빈민 구호활동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염병의 치료는 사회관계의 회복이다. 다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대화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회복하는 것이다. 환자에게 활기(活氣)를 불어 넣어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은 의료진의 바람이다. 확진자를 활동인으로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밀접한 접촉을 가졌다 해서 오염된 의심을 받는 것은 충분히 감수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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