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인문학③] 지구와 철, 그리고 인류 생존과 철
[철강과 인문학③] 지구와 철, 그리고 인류 생존과 철
  • 정하영
  • 승인 2020.01.30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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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탄생과 각종 원소의 생성에 대해 지난 2회차에 살펴봤다. 그러면 과연 인류의 모든 근간이자 기본인 지구, 그리고 인간에 있어 철의 존재와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수소(H)와 헬륨(He)을 제외한 모든 원소들은 별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별은 수소 핵융합 반응을 시작으로 헬륨, 탄소, 질소, 규소, 철 등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별은 질량(온도)에 따라 원소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작은 별은 기껏해야 헬륨이나 탄소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한다. 우리 은하계의 태양은 탄소 정도까지 형성해낼 수 있고 태양 질량의 30배 이상인 별이어야 철을 만들 수 있다.

헬륨 원자들이 융합해 생명의 필수원소 탄소가 되고 탄소가 융합해 네온이, 네온이 융합해 산소가 만들어진다. 빅뱅 이후 10억 년이 지났을 무렵 주기율표의 26개 원소 대부분이 핵융합에 의해 많은 개별 항성 안에 존재하게 된다. 원자번호 26번인 철은 핵융합 과정이 갈 수 있는 종착점이다. 철은 다른 원자와 융합해 어떤 핵에너지도 추출할 수 없다. 새로운 원소의 생성은 종착점에 달했고 결과는 파국적이었다.

초신성 폭발, 잔행물들이 우주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항성은 내부로 끌어당기는 중력과 밀어내는 핵반응 에너지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중심핵이 철로 채워지자 밖으로 밀어내는 핵반응 에너지 방출이 멈추게 된다. 이윽고 중력이 한순간에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초신성, 대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항성은 갈기갈기 찢기면서 에너지가 무한히 남아도는 환경에서 전에 없던 색다른 방식으로 26번을 훌쩍 넘어가는 주기율표 92번 우라늄까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를 만들어 내고 이를 우주로 날려 보내게 된다.

원자번호 27번 코발트부터 92번 우라늄까지 자연에 존재하는 66종 철 이상의 중량 원소 생성 근간에는 철(Fe, 원자번호 26번)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태양계에는 철보다 무거운 납, 우라늄 등의 원소들이 많이 있다. 결국 이것은 모두 초신성의 폭발 잔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약 75억년 전 형성된 태양계는 초신성이 폭발하여 생긴 성운, 성간 물질이 다시 응축하고 수축하여 태양과 그 행성들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지구에는 철보다도 무거운 원소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지구가 생성될 때 높은 중력 수축 에너지와 충돌 열로 용융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밀도가 큰 철과 니켈 등의 성분은 지구 중심부에 자리 잡고 밀도가 작은 규소 등의 물질들은 위로 떠올라 식으면서 지각을 형성했다. 약 50억 년 전 태어난 지구는 밀도 차에 의한 층상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외부부터 지각, 맨틀, 외핵, 내핵 이렇게 4개 층으로 이뤄졌다.

‘지구의 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지구가 만들어질 때부터 철은 이미 지구 안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철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원소’로 인정받고 있다.

우선 사람들은 재료로서의 철을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다. 당장 인류 문명에서 철이 모두 사라진다고 상상해보자. 끔찍한 일이다. 인간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차차 적응하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철기 시대 이전에도 살아남았으니까. 철을 모르던 시절에도 나무와 동물 뼈, 돌, 청동으로 생활해왔다. 재료로서의 철은 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재료인 것은 맞지만 없다고 해서 생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원소’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정답이 나온다. 극지방에서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인 ‘오로라’는 지구 자기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구 자기장의 원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철’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액체 상태의 철이 주성분인 ‘외핵’이 그 원인이다.

지구 외핵의 대류와 자기장 형성
지구 외핵의 대류와 자기장 형성

약 50억년 전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들이 서로 부딪치고 뭉치면서 점점 커졌고 결국 현재와 같은 크기의 지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구의 온도는 크게 올라갔다. 작은 천체들과의 충돌, 그리고 지구가 커지면서 내부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온도가 올라가자 지구 내부는 녹아내렸고 주로 무거운 금속 물질들이 중심부로 내려앉아 지구 핵을 이루게 됐다. 이때 철이 핵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고체 상태인 내핵에 반해 액체 상태인 외핵은 끊임없는 대류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이 때문에 지구 자체가 커다란 자석처럼 되어 주위에 자기장이 발생하게 된다.

지구 자기장의 가장 큰 역할의 하나는 ‘태양풍’을 막는 것이다.

지구 외핵의 대류로 자기장이 발생해 태양풍을 막고 있다
지구 외핵의 대류로 자기장이 발생해 태양풍을 막고 있다

태양풍을 쉽게 말하면 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지구에 도달한 태양풍은 대부분 지구 자기장에 막혀 흩어지게 된다. 일부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빛을 내는데 그 현상이 바로 ‘오로라’다.

태양풍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방사능 물질로 가득 찬 태양풍에 지구 생명체가 노출되면 심각한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단 몇 초만 노출돼도 살아남기 어렵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지구 자기장이 태양풍을 막아준 덕에 생존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인체 자체도 생존을 위해 ‘철’을 필요로 한다.

인체에 들어 있는 철의 질량은 대략 3g(그램) 정도다. 인체 전체 중량의 0.00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생명을 좌우한다. 인체에 존재하는 철의 대부분, 약 60%는 혈액에 들어 있다. 혈액의 붉은 빛 역시 철 때문이다.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에 존재하는 철이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에 존재하는 철이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대사를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한다. 그 산소를 혈액이 온 몸으로 날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혈액 속에 산소를 끌어당기는 역할을 적혈구 속의 헤모글로빈이 담당하고 있다. 헤모글로빈 속의 철 원자 4개가 산소와 결합하여 인체 구석구석으로 산소를 나른다. 빈혈은 헤모글로빈이 모자라서 나타나는 증상이고 빈혈 환자들이 철분제를 보충하는 이유다.

지구 자기장을 만들어 태양풍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고 인체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철’은 꼭 재료와 도구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삶에서 빼놓을 없는 중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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