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人의 향기] 세계 경제사 바꾼 컨테이너 발명
[鐵人의 향기] 세계 경제사 바꾼 컨테이너 발명
  • 김종대
  • 승인 2019.11.29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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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발명...유조선 개조 컨테이너선 제작, 컨테이너 58대 싣고 운행성공
컨테이너의 역사...석탄‘목재컨’ 마차에 첫 연결, 한국 전쟁때 ‘Conex컨’ 채택
베트남 전쟁시 美정부 막대한 물자 컨테이너로 운송 보편화

선박이 세계 물류를 지배하는 것은 컨테이너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교수는 컨테이너를 “세계경제사를 바꾼 대혁신적 발명품”이라고 극찬했다.

말콤 맥린

 

컨테이너를 창안(1956년)한 사람은 말콤 맥린(Malcom McLean)이다. 그는 2차 대전에 사용됐던 유조선(T2 탱크선)을 개조하여 컨테이너선으로 만들었다. 아이디얼 X호이다. 이 선박은 1956년 4월 26일 뉴저지 뉴어크항에서 휴스턴까지 35피트 컨테이너 58대를 싣고 운행에 성공했다.

전 세계 물류시장에 컨테이너 시대를 연 것이다. 2007년 “포브스”지는 맥린을 세계경제사를 움직인 인물로 평가했다.

컨테이너의 역사는 1792년부터 시작된다. 영국은 석탄운반용 목재 컨테이너를 마차에 연결해 사용했다. 1830년대에는 석탄을 바지선에 적재하는 대형 목재상자급 컨테이너를 사용했다.

철제 컨테이너가 등장한 것은 1900년대 초이며, 본격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이다.

미국은 한국 전쟁때 “Conex” (Container Express) 컨테이너를 채택했다. 절도 방지와 훼손 방지 목적이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운송량의 10%를 넘지 않았던 컨테이너는 1967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정부가 막대한 전쟁물자 운송을 컨테이너로 운송하면서 보편화 됐다.

1970년대에는 대부분의 화물이 컨테이너 운송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전체 물동량의 60% 이상이 컨테이너로 운송된다.

전 세계 선박용 컨테이너는 20피트(6.1m)와 40피트(12.2m) 두 가지 이다. 유럽에는 30피트, 45피트와 육상용 48피트, 미국에는 48피트와 철도운송용 53피트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후로 해상운송은 컨테이너를 빼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현대車 그룹 정몽구 회장의 첫 사업이 컨테이너 생산 회사였고, 한국은 한때 최고의 컨테이너 생산국이었다. 지금은 모두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항공화물도 컨테이너를 사용한다. B747은 약 300~400명의 승객을 태우고도 100톤의 화물을 싣는다. 엄청난 적재량은 항공컨테이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747용 메인데크 M1 컨테이너는 길이 3.15m, 폭 2.44m, 높이 2.44m이다. 747은 이 컨테이너 31개를 실어 나른다.

그러나 컨테이너를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선 트레일러나 화물선에 튼튼히 고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쉽고 빠르게 결박을 풀 수 있어야 옮겨 싣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런 장치가 바로 ‘트위스트락’이다. 맥린의 동료 ‘케이스 텐트링거’가 창안했다. 텐틀링거는 컨테이너 여덟 귀퉁이 에 고정용 고리(corner fitting)를 달고, 그 수평면 구멍에 잠금장치(twist lock)를 90도로 끼워 돌리는 결박 장치를 고안한 것이다. 텐틀링거의 아이디어는 대성공을 거뒀다.

‘트위스트락’은 1957년 시험운항에서 빼어난 효과가 입증되자, 컨테이너용 기중기, 냉장 컨테이너용 전력 공급장치 등도 만들었다.

텐틀링거는 컨테이너 운송시스템의 제도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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