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KT 美 FCPA 위반 630만달러 지급…한국기업의 현주소는?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KT 美 FCPA 위반 630만달러 지급…한국기업의 현주소는?
  • 장대현
  • 승인 2022.03.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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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미국 SEC 제재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한국기업 1호 ‘오명’
법무부(DOJ) 제재 삼성중공업, SK건설 등 포함하면 벌금 총 2700억원
작년 6월 미 행정부 부패 척결 각서…외국기업 FCPA 적용 확대 전망
한국기업 FCPA 리스크 커진 반면 이에 대한 인식 낮아 진짜 ‘리스크’
조직 컴플라이언스 시스템 점검, 임직원 교육, ISO 국제 인증 받아야
장대현 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장대현 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지난 2월 17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한국의 KT가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혐의를 해결하기 위해 630만달러(약 76억원) 지급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SEC는 행정 절차상 정지명령(Cease-and Desist Order)을 통해 KT를 FCPA 회계규정 위반으로 기소하는 대신 350만달러의 민사 벌금(civil penalty)과 280만달러의 이익환수(disgorgement)에 합의한 것이다. 이번 합의로 KT는 미국 SEC가 제재한 FCPA 위반 1호 한국기업이라는 오명(汚名)을 안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한국 기업 KT가 미국 SEC의 제재 대상이 된 것일까?

그것은 KT가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 주식예탁증서(DR: Depositary Receipt)를 상장해 SEC의 감독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 FCPA는 크게 뇌물방지 규정과 회계 규정으로 구분되어 있다.

뇌물방지 규정과 달리 회계 규정은 오로지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Issuer)에만 적용된다. 상장기업은 미국기업인지 여부는 상관없고, 외국기업이라도 DR 등이 유통되면 회계규정이 적용된다.

회계규정에 따라 상장기업에는 크게 기록 유지(books and records) 의무와 내부통제 수립(internal accounting control) 의무가 부과되는데, SEC는 KT가 이 두 가지 의무를 모두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KT는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앞으로 2년 동안 6개월마다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개선 조치 현황을 SEC에 보고해야 한다.

KT 전현직 임직원들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일명 ‘상품권 깡’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상품권 깡은 회사 돈으로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일로 황창규 전(前) 회장은 불기소 처분이 났지만, 구현모 현(現) 대표와 임원 10명은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약식 기소돼 최근 벌금형 유죄판결을 받았다. 구 대표는 벌금형에 불복해 현재 정식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렇듯 KT는 미국에서 고액의 벌금 철퇴를 맞은 데 비해 한국에서의 처벌이 미약하다. 그래서인지 KT 노조는 KT의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에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한국에서의 쪼개기 후원과 관련해 KT는 이미 2019년부터 SEC 조사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SEC 발표가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SEC의 명령문을 살펴보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 뇌물 비리가 있어 다소 충격적이다. SEC 명령문에는 KT가 베트남에서 2개의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현지 공무원과 관련 제삼자에게 ‘뒷돈’을 지급한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KT가 현지법인의 법인카드를 이용해 하노이 식당에서 네 차례 캐시 백(cash-back)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캐시 백은 상점에서 신용카드로 계산하며 현금인출 서비스를 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카드 깡’과 비슷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자금 약 3천달러(약 365만원)는 베트남 고위 정부 관료에게 전달됐다. 비자금을 만드는 방식이 한국이나 베트남이 비슷해 보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FCPA는 한국 기업에 생소한 법이었다. 그동안 한국 기업에 대한 집행 사례를 살펴봐도 국내 진출한 SSI KOREA나 IBM KOREA 같은 외국계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9년 삼성중공업에 이어 2020년 SK건설이 FCPA 위반으로 미국 법무부(DOJ)의 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이번 KT가 합의한 벌금까지 합치면 최근 3년간 국내 기업이 FCPA 위반으로 미국 정부와 합의한 벌금은 약 2,700억원이 된다.

물론 골드만삭스가 FCPA 위반으로 주요 국가의 집행기관과 합의한 총벌금 78억달러(약 9조4,965억원)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미국 FCPA를 한국의 ‘청탁금지법’과 많이 비교한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은 ‘뇌물’로 보기 힘든 접대나 선물 제공 행위를 다루고 있어 그 성격이 FCPA와는 다르다.

한국에는 미국 FCPA와 같이 해외 뇌물을 규제하는 법이 따로 있다. 바로 1998년 제정된 ‘국제뇌물방지법’이다.

21세기 들어 국내 기업의 활동이 글로벌화 되면서 기업의 법적 리스크 또한 글로벌화 되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해외 뇌물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그동안 국제뇌물방지법의 집행 실적은 초라하다.

이렇게 국내 집행기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미국 집행기관의 칼끝이 국내 기업을 향하고 있다.

작년 6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부패 척결에 관한 각서(Memorandum)를 통해 국내외 부패를 퇴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앞으로 외국기업에 대한 FCPA 적용을 확대하며 세계 경찰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국내 기업에 집행된 사례만 보더라도 이제 한국 기업은 FCPA 리스크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않다.

FCPA가 만들어진 지 45년이 지났고 그동안 누적된 벌금 액수만 약 200억달러(24조3,500억원)가 넘지만. 국내 기업은 아직도 이 법을 잘 모르고 이 법에 적용되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한국기업의 가장 큰 리스크다.

앞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이라면 FCPA가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조직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거나, 부패 방지나 컴플라이언스와 관련한 ISO 국제 인증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FCPA를 제대로 알면 알수록 FCPA 리스크는 줄어들 수 있다.

결국 철저한 대비만이 한국 기업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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