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FCPA의 미래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FCPA의 미래
  • 장대현
  • 승인 2020.12.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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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장대현 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은 미국 기업들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정된 지 40년이 지난 이 법을 줄곧 비판해 왔다.

그는 대통령 당선 전인 2012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FCPA를 ‘끔찍한 법(horrible law)’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서는 2017년 백악관 집무실에서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에게 이 법을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그 이후에 이 법은 폐기되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 기업들의 FCPA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올해 1월에는 래리 커들로 백악관 경제보좌관이 나서 정부가 FCPA 개정을 ‘보고 있다(looking at)’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FCPA 집행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반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년간 미국 FCPA 역사상 기록적인 벌금을 부과했다.

이전 오바마 정부보다 신규 조사 건수는 줄었지만, 벌금 액수는 더 늘어났다. 한 미국 FCPA 전문가는 “2020년은 FCPA에 대한 ‘미친 한해(crazy year)’였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몇 달 동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패배를 승복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워싱턴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내년 1월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의 향후 4년간 FCPA 집행은 어떻게 전개될까?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겠지만, FCPA 집행에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많은 변화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새롭게 집행기관을 이끌어갈 리더들은 FCPA 수사를 계속하며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려고 할 것이다.

사실 바이든 행정부가 더 강력한 FCPA 집행을 하게 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FCPA 집행을 더 강화할 이유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는 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미 2001년과 2007~2009년 두 번의 경기 불황 때 FCPA 사건이 급증한 것은 경기 불황과 FCPA 집행이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많지만, 법률가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에는 워싱턴D.C의 법조 인력이 넘쳐난다. FCPA 사건을 처리하는 법무부 주요부서에 이런 법조 인력들을 충원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법무부 사기과(Fraud Section)엔 똑똑하고 전문적인 검사들이 즐비하다. 이제 새로운 검사들이 본드 빌딩(Bond Building)을 점령할 것이다. 젊고 야심 찬 검사들이 새로운 라운드를 펼치며 부패기업 사냥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본드 빌딩은 미국 법무부 사기과가 있는 건물이다.]

지난 10월 뉴욕에 본사를 둔 골드만삭스 그룹과 말레이시아 자회사인 골드만삭스 말레이시아는 FCPA 위반 혐의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집행 당국과 33억 달러(약 3조6,666억 원) 벌금에 합의했다. 말레이시아 최악(最惡)의 부패 스캔들이라 불리는 ‘1MDB 스캔들’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에서 미국 법무부는 형사벌금 23억 달러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민사벌금 4억 달러와 추징금 6억 680만 달러를 각각 부과했다. 이 합의금은 미국 FCPA 역사상 최대(最大) 벌금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월 프랑스 항공업체 에어버스(Airbus SE)가 미국 법무부와 합의한 벌금 20억 달러 기록을 1년도 안 돼 갈아치웠다.

미국 FCPA는 1977년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총 벌금이 200억 달러(약 22조 원)를 넘었다. 이 벌금은 우리나라가 4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다. 특히 벌금의 90%는 지난 10년간 집행됐다. 최근 4년 동안 최고 벌금 기록은 계속 경신되고 있다.

이제 FCPA 고액벌금 순위 Top 10에 골드만삭스를 제외한 나머지 9개 기업은 외국기업이다. FCPA 제정 이후 지금까지의 집행을 살펴보면 미국 기업이 67%를 차지하고 있지만, 고액벌금 상위 기업에는 유독 외국기업이 많다. FCPA 전문가들은 한가지 이유를 ‘문화 차이(culture gap)’로 분석한다.

외국기업 경영자와 법률가들은 미국 법무부의 조사가 시작되었을 때 여전히 협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부패 사실을 숨기며 회사를 방어(defense)하려고 한다. 그리고 미국 기업과 비교해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사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도 형식적 운영에 거쳐 미비한 실정이다. 아무래도 조사에 협조적이고 컴플라이언스가 잘 갖춰진 미국 기업보다 양형에서 감경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1년간 국내 대기업들도 FCPA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받았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법무부와 합의한 벌금만 해도 1억 4,300만 달러(약 1,724억 원)다.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국내 한 통신사를 FCPA 회계규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벌써 천문학적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예전엔 남의 일로만 여겼든 FCPA 리스크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로펌의 FCPA 전문 변호사는 최근 FCPA 집행 동향에 관한 세미나에서 미국 FCPA 집행기관의 향후 집행 대상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기업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미국 행정부가 바뀌어도 FCPA 집행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집행기관의 역학관계는 바뀌지 않겠지만 집행기관이 법 준수(compliance) 능력을 보여주는 기업에 더 호의적일 것은 분명하다. FCPA는 미국이 제정한 연방법이지만 이제 국적이나 재판관할을 따지지 않고 적용되는 글로벌 반부패법이 되었다. 2021년은 FCPA 집행의 또 다른 기록적인 한 해가 될 수 있다. 강력한 집행의 추세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제라도 급증할 FCPA 집행에 대비해야 한다. 효과적인 기업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유용한 대비책이다. 특히 모든 비즈니스 단계에서 관련되는 제3자(third-party)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향후 4년은 기업 컴플라이언스 담당자들에겐 바쁜 시간이 될 것이다. 이제 기업이 법을 스스로 준수하는 컴플라이언스 능력을 제대로 보여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건 FCPA를 위반하면 가혹한 ‘처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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