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船의 미래⑫] 축복에서 저주로…해양 플랜트 사업
[造船의 미래⑫] 축복에서 저주로…해양 플랜트 사업
  • 최현웅
  • 승인 2021.09.28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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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선산업 경기 급락 속에
고유가 지속하며 해양 사업이 대체사업 부상
1기당 조 단위 매출 가능해 조선사 몸직 커져
대규모 설비 투자 후 ‘미국 세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치킨싸움 발발 호황은 단기에 끝나

선박 사업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선박은 단연 액화천연가스(LNG)선이다. 고부가가치 선박만 골라서 35척 정도 지으면 1년에 올릴 수 있는 매출은 약 5조50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액화석유가스(LPG)선이나 셔틀 탱커와 같은 중형이지만 선가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4~5척 더 짓는다면 조선소는 선박 사업을 통해 1년에 6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이러기는 정말 쉽지 않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다르다. 보통 시추 장비 중 드릴십의 선가는 1기당 약 5000억 원이다. 심해 개발용 대형 생산 설비인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FPSO)’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 저장 하역 설비(FLNG)’는 프로젝트당 통상 1조 원이 넘고 큰 프로젝트의 경우 2조~3조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국내 대형 조선소 빅3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붐을 타고 매출 규모 면이나 인력 운영 규모 상으로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수많은 ‘심해 에너지 자원개발’ 사업들은 뜻밖의 강력한 암초를 만나게 된다. 바로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이다.

- 글 싣는 순서 -

① 조선업의 부활 후판시장 활력...하반기 수요 '맑음'
② '사양산업' 논란, 대체 수단 '無' 시장 수요 충분
③ 한‧중 ‘인건비 격차’ 10년간 2배 유지
④ ‘표준 선박 대량생산’ 일본, 오히려 쇠락
⑤ 한국 미래는 한국의 선택에 달려있다
⑥ 韓中日 조선소, 제주도 반경 600km내 포진
⑦ 조선산업 성공의 키(key)는 '1급 제철소'
⑧ 韓 中 日 조선산업 주도 '다음 주자는?'
⑨ IMF 사태, 성장의 도약이자 몰락의 계기
⑩ 중소 조선소의 몰락 ‘키코’
⑪ RG 발급 중단…중소조선소 몰락 불지펴
⑫ 축복에서 저주로…해양 플랜트 사업

‘해양 플랜트 사업’은 한때 한국 조선 산업에 축복과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2008년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는 끝을 모르고 성장세를 지속해온 조선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 산업 경기 호황은 화려했다. 엄청난 규모의 조선소 내에는 기존에 있었던 드라이 도크 외에도 플로팅 도크, 해양 프로젝트를 위해 지어진 거대한 육상 건저 설비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이런 설비를 다루고 배를 운용하는 수천~수만 명의 직원들이 일을 했다. 아침이면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일과 후 저녁시간에 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장관이기 까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소의 배후 주거 단지는 ‘천지개벽’을 한 듯 했다. 예전에 해장국과 김밥 따위를 팔던 작은 가게가 몇 개, 이름이 낯선 지방 브랜드 아파트 몇 동이 서있던 ‘시골 동네’는 전국구 톱 브랜드 아파트를 포함 10여 개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미니 신도시’로 바뀌었다. 새로 조선소에 입사한 직원들은 가족과 살 집을 구해야 했는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국의 톱티어 아파트 브랜드들이 들어섰고, 한 가구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분양권 프리미엄이 붙어 전세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거래 제한도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분양권을 사거나 분양된 아파트 거래를 통해 짭짤한 부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아예 아파트를 몇 채 사서 임대 사업에 뛰어든 분들도 있었다. 인테리어 및 기본 가구를 구비하고 월세를 내놓으면 그 당시 이 지역에 거주가 필요했던 수천 명에 달하는 주문주(선주) 감독관들과 엔지니어링 회사의 외국인들이 들어와 고가의 렌트비를 지불했다.

조선소에서 고용하는 임시 직고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들이 머물 숙소 수요도 넘쳤다. 조선소 주변의 수많은 원룸촌이 이 수요를 충족시켰다. 이때 조선소의 직원들 중에서 원룸 주택을 짓거나 매입하여 임대를 놓은 분들이 많았다. 높은 연봉 외에도 한 달에 수맥만 원씩의 부가 수입을 올렸다. 조선소에 취업한 상주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먹고 마시는 장사도 불야성을 이룹니다. 그야말로 ‘길거리의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조선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일감을 구하지 못한 중견‧중소 조선사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직원들도 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정든 직장을 떠났다. 국내 최고의 소비층이 존재했던 조선소 입지 지역사회도 불황의 타격을 받아 흔들거렸다.

이런 가운데 조선업계에는 희망의 햇볕이 들어왔다. 해양 플랜트였다. 조선소의 사업 구조는 기존에 선박 사업 중심이었는데, 선박 발주가 줄어들자 설비와 인력이 막대하게 소요되는 해양플랜트 사업을 확대했다.

사진=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세계 최대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FPSO)인 ‘에지나’호가 2018년 8월 26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라고스 생산거점에서 건조를 마치고 에지나 해상 유전으로 출항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제공
사진=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세계 최대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FPSO)인 ‘에지나’호가 2018년 8월 26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라고스 생산거점에서 건조를 마치고 에지나 해상 유전으로 출항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제공

 

2000년대는 중국을 위시하여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 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또한 저금리 정책 등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제 부양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규모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수요의 급증을 유발했다.

그러나 공급 시장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9.11 테러로 촉발된 2003년 중동 전쟁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에너지 시장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여유 생산능력이 부족했던 중동의 오일 부국들은 수급을 조정하며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에 문제가 생길 지정학적, 정치적 요인들이 발생했다. 주요 산유국에서는 ‘자원민족주의’가 대두되었다. 게다가 중동은 이란의 핵문제와 터키와 쿠르드족의 충돌로, 아프리카는 나이지리아의 정치 불안으로, 남미는 미국과 베네수엘라와의 갈등으로 공급의 불안요소를 가중시켰다.

이런 불균형적 상황에 의해 유가는 계속 상승 행진을 하다가 2008년 7월에는 배럴당 140.70달러라는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금융 위기로 일시적으로 조정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유가는 2014년까지 배럴당 100달러 내외를 유지하며 장기간 고공 행진을 지속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에너지 소비국들의 불안은 가중되었고, 세계 주요국들의 ‘에너지 안보 정책’이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세계 주요국 및 에너지 메이저 업체들은 이미 1970~1980년대의 ‘오일 쇼크’ 상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었다. 유가 폭등과 경제 침체의 문제를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발굴로 해결했던 경험이다. 그들은 즉시 ‘모범 답안’을 펼치며 행동에 돌입했다. 이런 각국의 뜨거운 열기에 ‘세계의 돈줄’들이 기름을 부었다. 중동 국가들이 고유가로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 머니, 금융 위기 이후 갈 곳이 없었던 전 세계의 투기 자본들이다. ‘심해 에너지 개발 시장’이 고속 성장을 넘어 과열의 양상으로 치달았다.

조선 산업의 슈퍼 사이클이 금융 위기에 이은 경제 침체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보이고 있었을 때, ‘해양 에너지 개발 붐’은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에게는 정말 ‘신이 내린 동아줄’과 같은 일이었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급작스런 시장의 축소’를 만나면 엄청난 골칫거리가 된다. 특히 조선 산업에서의 설비 투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게다다 한번 늘린 설비 및 인력을 단시간에 다시 줄이기는 매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도크, 안벽 등 고정 건조 설비는 따로 분리해 매각할 수도 없다. 설비에 일단 투자를 한 이상 감가상각 기간 동안 매출과 이익을 냄으로써 그 투자비를 ‘뽑아 먹는’ 수밖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해양 플랜트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크게 ‘시추 장비(Drilling Equipment)’와 ‘생산 설비(Production Facility)’로 나뉜다. 시추 장비는 말 그대로 해양 유전이나 가스전을 탐사하거나 오일, 가스를 뽑아내기 위해 해저 바닥에 구멍을 뚫어 시추 파이프를 유정이나 가스정까지 밀어 넣는 역할을 하는 장비다. 생산 설비는 이렇게 시추한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오일이나 가스를 뽑아내어 불순물을 정제하고 분리하여 저장 또는 운반선에 하역(Off-loading) 해주는 설비다.

고유가로 인한 ‘추가 에너지 확보 경쟁’에서의 타겟은 기존의 경제성이나 기술 한계 때문에 작업하기 어려웠던 심해(Deep-sea) 혹은 극한의 해상 환경(Harsh-environment)의 개발이다. 가깝고 수심이 낮은 근해라면 이런 시추 장비나 생산 설비의 ‘하부’를 고정식 구조물 형태로 만든다. 그러나 깊은 바다는 하부가 보통 ‘선박 혹은 부유체’의 형태로 제작된다. 일부 생산 설비는 시추된 오일과 가스를 임시적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저장은 일반적인 탱커와 가스선이 가진 기본 기능 중 하나다. 즉, 심해용 해앙 플랜트는 기존의 선박 사업과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사업이었다.

2010년 초중반은 해양플랜트 시장이 정점에 이른 시점이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해지기 직전의 노을도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말도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의 매출은 해양 플랜트 사업을 본격화 하면서 거의 2배가 증가했다. 대우조선해양만 해도 매출 10조 원을 훌쩍 넘기고 2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양 플랜트 사업의 규모는 얼마나 큰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선박 사업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선박은 단연 액화천연가스(LNG)선이다. 현재 대형 LNG선의 경우 대략 척당 2000억 원 정도에 거된다. 이 LNG선을 1년에 약 15척 지으면 약 3조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여기에 약 1500억 원 정도 하는 메가 컨테이너 운반선을 10척 지으면 1조5000억 원, 약 1000억 원하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10척 지으면 약 1조 원 등. 고부가가치 선박만 골라서 35척 정도 지으면 1년에 올릴 수 있는 매출은 약 5조50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액화석유가스(LPG)선이나 셔틀 탱커와 같은 중형이지만 선가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4~5척 더 짓는다면 조선소는 선박 사업을 통해 1년에 6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이러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런데, 해양플랜트 사업은 다르다. 스펙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시추 장비 중 드릴십의 선가는 1기당 약 5000억 원이다. 심해 개발용 대형 생산 설비인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FPSO)’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 저장 하역 설비(FLNG)’는 프로젝트당 통상 1조 원이 넘고 큰 프로젝트의 경우 2조~3조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1년에 이같은 시추 장비 몇 기와 대형 생산 설비 몇 개 프로젝트만 동시에 진행하면 해양 사업 규모가 조선 사업 전체의 매출 규모를 넘어선다. 즉, 조선소의 매출이 10조 원이 넘어가는 것은 일도 아닌게 되는 것이다. 국내 대형 조선소 빅3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붐을 타고 매출 규모 면이나 인력 운영 규모 상으로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수많은 ‘심해 에너지 자원개발’ 사업들은 뜻밖의 강력한 암초를 만나게 된다. 바로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이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관습,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2010년대 중반,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이런 ‘혁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누르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것이다. 그것도 타국 에너지 자원을 빼앗거나 사들여서 된 것이 아니다. 자국 영토 내 ‘경제성이 없던’ 자원을 혁신적 기술을 이용하여 ‘환골탈태’ 시킨 성과다. 천연가스 광구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하고 수평적으로 분산되어 있어 경제적 가치가 없었던 ‘셰일 가스’를 ‘수평 시추’ 및 ‘수압 파쇄’라는 혁신적 공법을 이용해 비교적 낮은 원가에 확보할 방법을 개발했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에서 약 100년을 사용해도 다 쓸 수 없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확보했고, ‘최대 소비국’이 아닌 ‘최대 산유국’으로서 세계 에너지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셰일 가스 혁명은 ‘장기 고유가 시황’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가가 낮은 시절에는 셰일 가스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개발 사업에 ‘돈’을 댈 투자자가 없었다. 미국도 자국 내 비싼 자원을 개발하기보다는 OPEC이나 다른 산유국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에너지 자원을 사서 소비 및 비축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수급 불안으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다른 산유국들이 환영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직전까지 ‘에너지 안보 협력’을 매개로 미국과 엄청 친하게 지내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불편함 심기를 드러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도 가장 큰 친구이자 고객이었던 미국이 가장 위험한 경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장인 OPEC는 극한의 결정을 했다.

바로 ‘미국의 혁명’을 무산시키기 위한 ‘치킨 게임’에 돌입한 것이다. OPEC는 전 세계에 오일 공급을 엄청나게 늘려 유가 하락을 주도했다. 아직까지는 생산성이 낮아 배럴 당 60~70달러 선에 머물고 있는 셰일 가스의 ‘원가적 한계’를 공략한 것이다. 유가를 끌어내려 미국 셰일 산업계를 ‘고사’ 시키려는 의도였다. 에너지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강대국 간의 이 ‘위험한 게임’은 금융 위기 이후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선 세계 경기와 만나, 유가의 급격한 하락 및 장기 저유가의 상황을 만들었다. 한국 대형 조선소의 ‘고난의 시간’이 다가왔다.

<자료: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이종무 대우조선해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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