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KG동부제철 창업정신 잃지 말아야
[사설] KG동부제철 창업정신 잃지 말아야
  • 페로타임즈
  • 승인 2019.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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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제정 러시아의 표토르 황제(1세)는 250명이 넘는 대규모 사절단을 유럽에 파견했다. 황제도 사절단 일원으로 참가했다. 동인도 조선소에서 선박건조 기술을 배웠다.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는 황제의 입국을 모르는 척 눈감아 주었다.

실학자 박제가는 청나라 사신으로 수차례 드나들면서 청나라 선박의 규모와 대외 교역을 목격했다.

박제가는 선박과 상선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차(車)와 성(城), 도로, 교량, 철 등을 보고 들은 것을 상세히 기록했다. 조정에 나아가 “중국과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청도 수차례 올렸다.

다산 정약용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배들은 그 제작이 너무 둔하고 무겁기 때문에 풍륜을 달지 않고서는 진행속도를 빨리 할 수 없고, 나라 사이에 불의의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조선법(造船法)을 연구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간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국가 선진화 주장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약 100년이 지났을 즈음, 박규수는 철선을 직접 만들었다. 대원군의 윤허를 받아 신미양요 때 침몰한 미국 선박 제너럴셔먼호를 건져 올려, 셔먼호의 자재를 기초로 하여 조선 최초의 철선을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철선을 작동시키는 에너지원과 설비원리를 기술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인물이 전혀 없었으므로 최초의 철선제작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박규수의 실패는 대원군의 실패였다. 조선산업의 역사는 이렇게 모질게 시작됐지만 150여년이 지난 오늘은 세계 1위의 조선건조 기술을 가지게 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의 창업자들이 무모할 정도로 도전했던 불굴의 정신이 만든 결과였다.  그러나 세계 조선경기가 둔화되자 우리의 조선, 해운 산업은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있다. 한번 기울어진 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그동안 세계 일등이라는 달콤함에 안주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방식에 사로잡혀 혁신을 등한시했고, 창업 초창기의 초심을 잃었던 결과이다. 

조선산업은 철강산업의 전방 산업이며, 철강재 수요가 가장 많은 분야이기 때문에 조선산업의 현실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볼 수만 없는 일이다. 바로 철강산업의 경우도 조선 산업과 그닥 다르지않다. 덩치도 비슷하고 장치산업이란 구조적 숙명도 같은 길을 걷기 때문이다.

지난 2일 KG동부스틸은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고 ‘뉴스타트’의 줄을 당겼다. 부채로 시름을 겪던 동부제철의 인수를 끝내고 오너 스스로 수출 주도형 경영을 전면에 내세웠다. 컬러강판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반면에 기존의 전기로를 처리하고, 그 부지를 매각하여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이 인수를 꺼렸지만 KG그룹은 과감히 동부제철을 인수했던 만큼 동부제철의 부활을 철강업계는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오너 스스로 마케팅에 직접 뛰어 들겠다는 대목은 제정 러시아의 표토르 황제의 행보와 닮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업정신’(초심경영)을 잃지 않아야 철강산업에 새로운 기운이 뿌리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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