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철강 오너家의 일감몰아주기 사각지대
[페로칼럼] 철강 오너家의 일감몰아주기 사각지대
  • 김종혁
  • 승인 2020.06.10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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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 페로타임즈 국장
김종혁 페로타임즈 국장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대표는 2010년 6월 100% 지분을 투자해 현대머티리얼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2018년 연결 기준 매출은 3985억 원을 기록했다. 설립 당시 개별 기준 매출은 84억 원. 8년도 채 되기 전에 거의 50배 규모로 키웠다.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주식 투자로 초대박을 치거나 부동산 투기로 구매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다고 해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다.

현대머티리얼은 사업 초기 철스크랩(고철)을 중심으로 일반 유통, 무역 거래를 주업으로 삼았다. 한국을 거점으로 글로벌 무대를 종횡무진 한다 해도 이만한 성과를 내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 회사는 이제 친환경설비전문기업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정일선 대표의 개인회사는 범현대가(家)로 엮인 현대제철이 기반을 만들고, 그가 대표로 있는 현대비앤지스틸이 페달을 밟아줬다.

현대제철은 현대머티리얼의 초기 출범부터 3년간 1480억 원 규모의 일감을 몰아줬다. 같은 기간 현대머티리얼은 331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대제철과의 거래를 통해 일으킨 매출은 전체 45%의 비중을 차지했다. 현대비앤지스틸은 2013년부터 100억 원 이상의 일감을 꾸준히 대줬다.

현대머티리얼과 제철 및 비앤지간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0년 73.9%, 2011년 80.4%로 정점을 찍었다. 2013년은 32.4%로 급락했고, 2014년에는 10.0%로 떨어졌다.

이때는 이미 내부거래의 의미가 크게 없다. 작년 기준 현대머티리얼의 내부거래 비중은 4.9%에 불과하다. 공정거래법상 문제의 소지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총수 오너일가의 지분 20% 이상인 상장 및 비상장 기업에 대해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고 있다. 공정위는 규제 기준을 계속 강화하면서 2017년 현대머티리얼을 사익 편취 감시 대상에 올렸다.

가장 큰 문제는 총수 오너일가의 개인회사가 자립하기까지 그룹 계열사들이 동원되고,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오르면 지분을 조정하거나 내부거래 비중을 낮춰 규제망을 피하는 데 있다.

현대머티리얼은 100%의 지분투자로 국내 1곳, 해외 2곳의 계열사를 마련했다. 모두 현대머티리얼의 주인인 정일선 대표 소유나 다름없다. 이중 2017년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현대첨단소재는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올해 첫 사모채 모집에 나섰고, 주요 기관의 보증으로 AA급 금리로 발행에 성공하는 등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철강업계는 구조조정 한파에 시달리고, 월급쟁이들은 자리를 잃을까 마음이 하루도 편치 않다. 총수 오너일가의 편법 성장이 어느 날 후세대들에게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신화로 포장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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