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현의 인문산책] 그 많던 조선 수군은 어디로 갔나①
[박기현의 인문산책] 그 많던 조선 수군은 어디로 갔나①
  • 박기현 작가
  • 승인 2019.05.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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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불태웠던 최고 함대

조선 수군은 한 때 동아시아 최고의 기술과 건조능력, 해전 전투 능력을 과시하던 첨단 해군이었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고 나라가 쇠약해지면서 위풍당당하던 수군의 위치는 어디로 가고 허약한 육군으로만 나라를 지키게 되었고 그 결과 미상선 제너럴셔먼호의 출현과 일본의 운요호, 프랑스의 철선 등이 밀고 들어 왔을 때 육지 방어 개념에만 충실했을 뿐 이를 바다에서 막아낼 아무런 방법을 갖지 못했다. 과연 그 많던 조선 수군은 다 어디로 갔을까?

조선 세종은 재임 1년 만에 대규모 군사작전, 그것도 수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초대규모 상륙작전을 지휘한다. 1419년 6월 상왕이 된 이방원의 지원에 힘입어 원정군 총사령관 이종무는 병선 227척, 원정군 1만 7,285명의 어마어마한 육군과 수군의 대선단을 이끌고 대마도 정벌을 감행했다.

이 때 왜구 선박 129척을 나포, 20여 척만 남기고 불태웠으며 가옥 1,939채를 태웠다. 적병 114명을 사살하고 21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고 포로로 잡혀 있던 중국인 남녀 131명을 구출하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조선 수군은 동이사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명나라에서도 조선 수군의 실력을 인정할 정도였다.

조선과 왜구의 전쟁 기록화-전쟁기념관
조선과 왜구의 전쟁 기록화-전쟁기념관

조선 초기 수군의 총 전함 수는 무려 829척이나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온 이 숫자는 이후 한 번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 가운데 중대형선은 400 척 정도이고 나머지는 보급선이나 연락선 등 병참과 관련된 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조선 초기의 이 막대한 수군 전력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조선 초기 수군의 가상 적은 일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왜구였다. 이미 고려 말에 최영 장군이 대선 800척 등 2,000척 건조 계획을 발표하여 의욕적인 수군 확충을 제시한 바 있었으나 재원의 부족으로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왜구를 막아내지 못하면 국가의 안녕은 물론 이 씨 왕조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꼈기에 전력을 다해 수군을 양성했다.

이 수치는 성종 시절까지 그대로 가감을 보이면서 유지되고 있었다. 성종 시절 펴낸 ‘경국대전’을 보면 총 군선수가 737척, 수군 숫자는 48,800명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조선 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은 명종 시절 처음 건조되어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전군으로 확대되었고 수군의 주력선으로 결정되었다. 왜군은 작고 날렵한 배를 끌고 와서 배에 올라탄 후 전투를 하기 때문에 배가 높고 올라타기 어려우며 노를 젓는 노수가 적으로부터 덜 노출되는 판옥선을 주력선으로 배치한 것이었다. 또 왜구의 선박을 잡기 위해 태종 때부터 쾌선을 건조, 적을 제압하는데 활용하기도 했다.

※ 박기현 작가는...

안동 출신인 박기현 작가는 우리 역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조선의 킹메이커》를 집필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LG그룹 홍보팀장, 국제신문사 기자, 〈도서신문〉 초대 편집국장, 〈월간 조선〉 객원 에디터, 리브로 경영지원실장,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 문화정책 비평서 《이어령 문화 주의》를 출간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류성룡의 징비》 《조선참모 실록》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KBS HD 역사스페셜》(제5권) 《악인들의 리더십과 헤드십》(동양편, 서양편) 등의 역사서와 《한국의 잡지출판》 《책 읽기 소프트》 등의 교양서 10여 편, 《러시안 십자가》 《태양의 침몰》 《별을 묻던 날》 등의 장편소설 및 여러 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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