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줄 횡령 막으려면 "기본으로 돌아가자"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줄 횡령 막으려면 "기본으로 돌아가자"
  • 장대현
  • 승인 2023.08.22 03: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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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KCA) 대표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KCA) 대표

작년 한 해는 조직의 횡령사고가 유독 잦았다. 조직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발생했다. 잘나가는 코스닥 상장사부터 은행, 구청, 공공기관까지 다양했다. 업종별로 따져보면 아무래도 돈을 만지는 금융업이 단연 일등이다.

사고가 발생한 금융사 수장들은 허리 숙여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금융당국도 강력한 내부통제 방안을 내놓았다. 이제 시간이 흘러 조금 잦아드나 싶더니 최근 자고 나면 은행의 횡령 사고가 터져 나온다.

최근 금감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금융권에서 횡령한 직원 수는 202명이고 이들의 횡령액은 총 1816억 원으로 집계됐다. 꼭 횡령 사고가 아니어도 어떤 은행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얻고, 다른 은행은 고객 계좌개설신청서를 위조해 1000여 개의 증권계좌를 개설하는 등 사고 내용도 다양하다. 사실 이 정도면 은행의 윤리가 무너져 고객의 신뢰는 깨졌다고 봐야 한다.

최근 횡령 사고가 발생한 K 은행의 이 모 부장은 2007년부터 올해 4월까지 약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하며 시행사가 갚은 PF 대출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모 부장은 가족 명의 계좌로 대출 상환자금을 임의로 이체하고 대출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K 은행에서 발생한 562억 원 횡령 사건은 작년 W 은행의 697억 원 횡령 사고와 비교해 보면 그 수법이 비슷하다. 한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이 문서를 위조해 장기간 거액을 빼돌렸고 내부의 감시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W 은행의 직원은 자수해 수사에 협조했지만, K 은행 이모 부장은 도주해 검찰이 행방을 추적 중이다.

K 은행은 경영진들이 공식 사과를 하며 고객의 피해가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모 부장을 찾지 못하면 횡령액이 회수될지 의문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모 부장의 범행을 찾은 것이 내부통제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올해 초 이모 부장이 개인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은행이 금융거래정보 조회 요청을 받으면서 범행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애초 K 은행이 자체적으로 밝혀낸 횡령액은 77억 원이었지만, 금감원의 현장점검으로 484억 원의 추가 범행이 밝혀졌다. 은행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은행이나 금융당국이 내놓는 대책도 비슷해 보인다. 지난 6월 금융위가 발표한 ‘금융회사 내부통제 개선방안’을 봐도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 더 이상의 특별한 대책도 나올 게 없을 듯하다. 특이한 점을 찾으면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의 도입이다. 임원 별 내부통제 책무(responsibility)를 사전에 명확히 구분해 사고가 터졌을 때 확실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고가 나면 경영자들이 얼마나 책임을 지지 않았으면 이런 제도가 나왔나 싶어 씁쓸할 정도다. 은행에서는 왜 이렇게 비슷한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될까? 생각해 보면 결국 은행의 계속된 사고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실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정 방지(Anti-fraud) 단체인 국제 부정조사인 협회(ACFE)가 작년 3월에 발간한 2022년 연례 보고서(Occupational fraud report)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총 23개 업종, 133개국에서 약 2,210건의 부정 사례가 보고됐고 전체 손실 규모는 약 4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상적인 기업의 경우 연매출액의 약 5%에 상당하는 손실이 부정으로 인해 발생한 것 추정되고 있다. 연 매출액이 1조 원이라면 손실이 500억 원이라는 말이다.

수년 전의 통계와 비교해 봐도 그 수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특이한 내용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단독 범행은 줄어든 반면 두 명 이상의 공동 범행은 증가했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저성장기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은 매출 신장이 쉽지 않은 현실을 맞고 있다. 이제 회사의 손익 개선을 위해서라도 내부통제가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횡령과 같은 임직원의 부정엔 조직 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사고가 난 조직에서는 향후 대책 마련에 머리가 아플 것이다. 너무 참신한 대책을 만들려고 고민하지 말고 이미 나와 있는 기본적인 통제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업무에 대한 직무 분리(segmentation of duty)와 순환근무(job rotation)의 실행, 직원을 대상으로 한 윤리교육(ethics training)에 신경 써야 한다. 만약 회사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며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회사는 그 직원을 충직한 직원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직원의 모습은 본인이 자리에 없을 때 자신의 부정이 탄로 날까 두려워 뭔가를 숨기려는 부정의 신호(sign)일 수도 있다. 이런 신호를 보이는 직원들은 일단 휴가를 보내고 나서 그 직원의 업무를 살펴봐야 한다. 직원들이 한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했다면 회사 내에서 다양한 직종으로 순환근무를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 업무를 맡게 된 직원이 선임자(先任者)의 업무를 검토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정 관리에 특별한 대책은 없다. 아무리 바빠도, 중요한 기본을 까먹지 않고 실행하면 얼마든지 부정을 예방할 수 있다. 줄 횡령을 막으려면,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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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2023-08-18 15:56:11
결국.... 사람이 하는 일에 최고의 ‘정도’는... 교육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