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현의 인문산책] 600년 음주문화, 술꾼이 왕조를 이기다①
[박기현의 인문산책] 600년 음주문화, 술꾼이 왕조를 이기다①
  • 박기현
  • 승인 2019.10.25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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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자미상,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강기업들의 술 문화는 다른 업종에 비해 과하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중후장대한 장치 산업이기 때문일까? 조직 내의 술 문화는 족하면 신바람을 일으키지만 과하면 조직을 와해시키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일부 기업들은 ‘9시’를 저녁 회식 기준으로 삼거나, 건전한 오락으로 회식을 갖기도 한다. 각양각색으로 변화되고 있는 회식문화와 술 문화는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조선 왕가들은 쌀로 술을 빚는 것은 가난의 재촉이요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금주령과 함께 임금 스스로 절주 할 정도로 모범을 보였다. 몇해 전 대통령 해외순방 때 청와대 비서는 술로 인한 일탈 행위로 세계적인 망신살을 뻗혔다. 기업역시 술과의 전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실패의 길목으로 다가서게 된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건전한 술 문화를 위해 조선왕조의 술 문화에 대한 역사를 알아본다.

음주는 공적이다

구한말에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금주를 기독교인의 금칙으로 세워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의 음주가 얼마나 심각한지 열 살만 넘으면 술을 마시기 일쑤고 어린아이들이 대낮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하곤 했기 때문이다.

조선 선비 이문건의 <양아록>을 보면 11살이 되면 술에 관대하게 방치되는 조선 풍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만큼 술문화에 관대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술을 좋아한 임금이라면 성종과 연산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성종의 경우 큰 술잔에 술 마시기를 좋아했는데 성종은 술이 취하면 신하에게 아름다운 옥잔으로 술을 마시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종친이 술을 마신 뒤에 그 옥 술잔을 소매에 넣고 일어나 춤을 추다가, 일부러 넘어져 술잔을 깨뜨려버렸다. 성종의 과도한 음주를 지적하는 것이었기에 성종은 그 뜻을 알고 죄를 묻지 않았다. 임금이 참석한 연회에서도 주사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그래서 술이 사대부의 자랑인양 많이 마시는 것이 관례가 되곤 했다.

문제는 술을 빚는 재료가 식량이었다는 점이다. 경종 명종 시절의 경우 전염병과 기아, 흉년으로 백만명 이상이 굶어죽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인데 그 귀한 식량을 술을 빚는데 사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망국의 지름길이 아니던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금주령이 내려진 것은 창업주인 태조 때부터였다. 조선 왕조를 막 세웠는데 일년 이상 가뭄이 계속되자 태조는 스스로 술을 끊고 전국에 금주령을 내렸다. 이런 왕가의 필사적인 금주령은 선조 때까지만 거의 백회에 이르렀고 영조 때는 가장 엄격한 금주령으로 백성들을 단속했다.

사실 백성이라야 양반들을 일컫는 것으로 서민들은 그저 제사를 위해 조금의 술을 빚어 낼 정도였지만 양반들은 몇십 가마의 쌀을 들여 술을 빚고 큰 잔치를 벌임으로써 서민들의 빈축을 사곤 했던 것이다.

식량란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쇠고기와 술을 가장 좋아한 주색의 거장으로 기록된 연산군조차 소를 잡지 말며 금주령을 엄격하게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2편에서 계속-

※ 박기현 작가는...

안동 출신인 박기현 작가는 우리 역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조선의 킹메이커》를 집필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LG그룹 홍보팀장, 국제신문사 기자, 〈도서신문〉 초대 편집국장, 〈월간 조선〉 객원 에디터, 리브로 경영지원실장,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 문화정책 비평서 《이어령 문화 주의》를 출간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류성룡의 징비》 《조선참모 실록》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KBS HD 역사스페셜》(제5권) 《악인들의 리더십과 헤드십》(동양편, 서양편) 등의 역사서와 《한국의 잡지출판》 《책 읽기 소프트》 등의 교양서 10여 편, 《러시안 십자가》 《태양의 침몰》 《별을 묻던 날》 등의 장편소설 및 여러 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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