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권오준 박사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②
[연재] 권오준 박사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②
  • 김종대
  • 승인 2020.07.10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은 역동적 미래창조와 끊임없는 변화에 큰 역할

포스코 회장을 지낸 금속공학자 권오준 박사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철의 문명사적 궤적)가 드디어 6월 10일 페로타임즈 출판국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철의 모든 것’을 이론·실무적으로 총정리한 교양서다. 서울공대에서 철에 대한 공부를 본격 시작한 권오준 저자는 “포스코 회장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백년 가까운 세월을 철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책은 철에 대한 이해와 보다 더 많은 관련 지식을 쌓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본지는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의 요약 내용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제1장 인류 역사와 함께한 철 ➀

권오준 박사(포스코그룹 전 회장)
권오준 박사(포스코그룹 전 회장)

건축물의 뼈대인 철골구조로 쓰이는 일에서부터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인체 혈액 속 산소를 운반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철은 언제나 지구에서 삶을 떠받치느라 분주하다. 철은 강하고 단단하고 질긴 물질로서 원소주기율표에서 4주기 금속으로 원자번호가 26이다. 철은 질량으로 따져 지구 전체에서 첫 번째, 지각에서 네 번째 많은 원소이며 지구 핵의 대부분을 이룬다.

철은 생명체의 활동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구 중심에 대부분이 위치한 철은 자전하는 지구 주위에 자장을 형성하여 태양풍을 차단함으로 써 각종 방사선의 유해한 효과를 막아주어 인간을 포함한 살아있는 동식물의 생명을 보호해준다. 또 무선 인터넷 통신을 가능하도록 하여 인간이 정보 문명의 혜택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몸속에는 3g 정도의 철이 들어 있다. 미량 이지만 이 3g의 철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혈액의 구성성분인 적혈구 속에는 철을 포함하고 있는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이 있는데, 이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반응하여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한다. 헤모글로빈은 허파에서는 흡입 되는 산소와 결합하며, 혈액이 산소를 필요로 하는 신체조직을 통과할 때 산소는 헤모글로빈과 분리 되어 신체기관에 전달되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철은 호흡을 통해 흡입한 산소를 체내 세포기관으로 운반하는 기능을 갖는다. 피가 붉은색인 것은 적혈구 속에 들어 있는 철분 때문이다. 산소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듯, 철이 없어도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철보다 더 유용한 다른 물질을 상상하기 어렵다. 중공업과 건축에 사용되는 구조용 철강은 거대한 교량, 대형 회의장을 갖춘 건물이나 오페라 극장, 세계 주요 도시들의 현대식 초고층 건물, 대륙을 잇는 각종 선박들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매우 튼튼하고 상징적인 구조물들을 세우는 것을 뒷받침했다. 철강은 자동차 차체를 만들고, 철도를 놓고 기차를 만들 뿐 아니라 선박의 핵심소재로 활용되어 인간의 생활 반경과 이동성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그러면 철은 어디서 나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철은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프(1834~1907)가 만든 주기율표에 있는 118개 원소 중의 하나이며, 원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원소와 함께 생성되었다. 우주의 기원은 빅뱅이며 우주 속의 은하계와 별 뿐만 아니라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도 빅뱅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빅뱅 초기에는 기본입자인 쿼크와 전자가 먼저 만들어지며, 우주 팽창이 되면서 양자와 중성자가 쿼크의 합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모든 원소는 양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전자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원소는 빅뱅 초기에 만들어진 소립자 합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소기호 1번인 수 소는 양자 1개 및 전자 1개가 합해서 만들어지고, 헬륨은 양자 2개, 중성자 2개 및 전자 2개가 합해서 만들어졌으며, 이 두 개가 합해 우주의 대부분 인 98%를 구성하고 있다.

우주는 은하계로 구성되어 있고 은하계에는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존재한다. 초기 우주는 매우 균질한 분포를 보였으나 38억년이 지나면서 미세한 온도 차이가 생기고 이로 인해 내부에 수축이 일어나면서 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별은 끊임없이 변화를 겪게 되는데, 별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은 높은 온도에서 핵융합에 의해 충돌하며 합성되면서 폭발하여 빛을 내며 사라지기도 한다.

무게가 가벼운 별들은 수소나 헬륨을 만들고 폭발이 종료되나, 무거운 별은 지속적으로 폭발하면서 네온, 산소, 규소, 마그네슘 등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별들의 핵융합에 의한 폭발은 최종적으로 철이 만들어지면서 종료되는데,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면서 만들어진다. 철과 다른 원소들은 우주라는 냄비의 속이 휘저어 지면서 서로 격렬하게 충돌하며 뭉쳐져 다시 은하계와 별을 만든다. 태양계도 우주에 흩뿌려진 원소로 구성된 수많은 바위와 금속 조각들의 일부가 뭉쳐져 지구 등 행성과 소행성을 만들어 형성되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철을 5천년 가까이 사용해 오고 있다. 그런데 고대에 인간에게 알려진 철은 대부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2013년 「고고학저널」에 발표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기원전 3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이집트 철구슬들을 조사하고 그것들이 운석으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알아냈다. 구약성서에서도 철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먼 옛날, 어떤 운 좋은 사람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운석을 발견했다. 철과 니켈이 주성분인 그 물체는 우주로부터 날아와 무서운 속도로 대기를 뚫고 지상에 추락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운석을 통해 철과 처음 만났고, 이 만남을 계기로 인간의 철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고대인들이 외계로부터 날아온 운석이 아니라 지구 표면에 묻혀 있던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게 된 것은 운철 시대로부터 수 천 년이 지나 철기시대의 문을 연 히타이트 제국이 출현하면서였다. 기원전 약 2000년, 히타이트 족(族)은 오늘날 터키에 속하는 아나톨리아 지방에 정착해 하투샤에 수도를 정하고 인근 강에서 얻은 사철(砂鐵)에서 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확보한 제철 기술 덕분에 히타이트 족은 제국을 급속히 확장시켰으며, 동(東)지중해 주변의 지역 패권을 놓고 이집트와 경쟁할 정도로 강성해졌다.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뒤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전 500년 사이에 농경과 전쟁에서의 철의 사용은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들로 확산되었고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국에도 전래되었다. 철의 사용은 주요한 문화·정치·사회 변화를 초래하였다. 철은 고대 로마제국의 흥망 성쇠에도 관여하였고, 이슬람 세계가 한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넘어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류는 오랫동안 거의 같은 방식으로 철을 제련해 왔다. 고대 대장간부터 17세기 제철소까지, 철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된 연료는 목탄이었다. 하지만 목탄 생산을 위해 나무를 대량으로 벌목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고로를 만들어 석탄·코크스를 이용하는 제철법을 개발해 선철의 대량생산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선철 보다 모든 분야에서 특성이 우수한 강의 생산에 적합한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전로(轉爐) 및 평로(平爐) 제강기술을 확립하였다. 전로 기술은 베서머 전로, 토마스 전로를 거쳐 순(純)산소를 사용하는 LD전로로 정착하게 되면서 생산성과 품질 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 미국 등지에 남아있던 평로 설비는 경쟁력을 잃고 도태하게 되었다.

석탄/코크스를 이용하는 고로법(高爐法)을 발전 시킨 영국의 철 생산량은 19세기 중반 세계 생산의 근 절반을 담당하게 되었고,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대영제국의 위세는 19세기 후반을 기해 한풀 꺾이고 그 자리에 미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미국은 뛰어난 제철 역량과 거대한 시장을 활용하여 고층건물과 교량 건설뿐만 아니라 자동차 생산과 무기 제조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산업적 진보는 세계 1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가속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 했듯이 철강 산업에서 미국의 역할은 일본-한국-중국의 동북아 국가로 넘어 왔다. 기술 측면에서는 일본이, 원가경쟁력 측면에서는 한국이, 그리고 철강 소비량 측면에서는 중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세계 철강 소비는 적어도 2050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가 되면, 인도와 아프리카 특정 지역들과 같은 개발도상 지역들에서 급격한 인구 성장과 도시화 때문에 철 소비가 현재 속도보다 1.5 배 더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문명은 급속한 산업화와 정보기술(IT)의 과실을 누려왔다. 그런 가운데 철강 산업은 계속해서 진화하면서 연관 산업의 지속적인 진보를 유도해왔다. 철은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들어 4,000여 년 전 시작된 철기시대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류문화사에서 철의 물리적·경제적 기여에 근접했던 다른 재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철은 운석에서 발견된 이래 인류의 삶, 역사, 문명과 문화의 변천에 끊임없이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리고 우리가 역동적인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새로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철은 앞으로도 영원히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