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중의 미디어비평]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논의 유감
[김서중의 미디어비평]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논의 유감
  • 김서중
  • 승인 2020.1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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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중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법무부가 9월 28일 19개 법률에 흩어져 있던 ‘징벌적손해배상제’를 한군데 모으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집단소송제와 함께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해서 아예 기업이 반사회적 활동을 할 엄두조차 못 내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모펀드 부실 판매 등에서 보듯 기업의 무책임한 반사회적 활동은 커다란 재앙과 다를 바 없어, 기업의 불법 행동 동기를 원천적으로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의 무서움을 경험한 사람들은 법 개정의 필요성에 적극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법 개정안에는 구체적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개정안 취지를 보면 가짜뉴스 언급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가짜뉴스도 포함할 여지를 열어 놓은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에 조사 대상자의 80% 전후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가짜뉴스, 즉 허위조작 정보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왜곡 보도의 피해를 입은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그런 사례를 보아온 시민에게서 당연히 나타나는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징벌적손해배상제는 언론보도의 위축을 가져 올 것이고, 언론이 못마땅한 권력이 이를 악용할 소지도 있다. 언론보도가 진실에 기반을 두어야 마땅하지만, 100% 진실만을 보도해야한다는 압박이 있으면 사실상 보도를 못하고 결과적으로 언론의 감시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보도 시점에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으면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는 ‘위법성의 조각 사유’는 언론의 감시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징벌적손해배상제는 그런 감시 기능을 위축시킬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더군다나 살아 있는 권력이 이 제도를 악용하면 그 결과는 더욱 참혹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관련 보도를 했던 PD수첩이 겪었던 고통을 떠올려 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언론관련 단체들인 신문협회, 편집인협회, 기자협회 등이 징벌적손해배상제에 반발하여 성명이나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허위조작 정보의 빌미를 제공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물론 상업적, 정파적으로 편파적인 보도를 내보내는 유력 언론들의 행태를 지적하거나 대책을 논의한 바 없는 단체들이 징벌적손해배상제만을 반대한다고 했을 때 시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존 언론의 편파적 보도가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여론을 자초한 바가 있다.
 

한편 이들 단체들이 보인 대응의 적절성과 별개로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에 따른 문제는 있다. 법리론적으로 보면 다른 종류의 기업과 달리 언론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위자료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직접적 손해(적극적 손해)와 잠재적 손해(소극적 손해)는 개량화하여 명확한 손해를 계산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개량화할 객관적 근거는 없다. 결국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해도 언론 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커질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사법부의 양형 판단을 현실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도 악의적인 즉 고의중과실 보도에 억대의 손해배상 판결이 가능함에도 사법부가 약소한 금액만을 산정하는 친 언론적인 행태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그러고도 언론 보도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그보다 세 배 정도를 부과하는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논하기에 앞서 언론(단체)들은 자율적으로 기존 언론의 보도 행태의 문제점을 직시하여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사법부가 지금의 양형 판단 기준 내에서 고의중과실이 있는 언론 보도에 적절한 최대의 손해배상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하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여 본 바가 없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언론 본연의 기능을 위반하는 행위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 김서중 교수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과 박사

現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자율학부 교수
現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

KBS 이사회 이사(2015~2018), 제28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2014), 제15대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2013),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2007), 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2005), 언론중재위원회 위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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