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중의 미디어 비평] 언론 오보의 피해자, 미래의 내가 아니려면
[김서중의 미디어 비평] 언론 오보의 피해자, 미래의 내가 아니려면
  • 김서중
  • 승인 2020.09.2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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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중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언론의 오보나 허보는 전 세계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초기 중립주의를 유지하던 미국의 참전 명분을 제공한 것 중 하나는 독일 점령 해역을 지나던 미국의 상선 루시타니아호가 유보트 공격으로 침몰된 사건이다. 언론들은 독일이 상선까지 침몰시켰다고 전쟁을 부추겼다. 민간 상선까지 공격받는 상황에 참전을 안 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은 루시타니아 호가 독일 점령지역을 항해하면 격침시키겠다고 뉴욕타임스에 경고까지 했고,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루시타니아 호는 단순 상선이 아니라 군수품 수송선이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1차 대전에 미국이 참전한 결과가 참혹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1948년 12월 27일 동아일보는 역사적인 오보를 한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소련은 신탁통치를,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는 기사다.
하지만 회의에서 소련은 즉시 독립을, 미국은 5년간 신탁통치를 주장했다. 오보에 따라 춤췄던 한국의 정치 세력은 진실과 무관하게 미국과 소련 편들기에 나섰고, 동아일보는 38선 이남에 심각한 정치 대립을 야기하였다.
이승만과 한민당은 반탁 명분으로 친일세력까지 우익 진영에 합류시키려 했고, 친일세력은 반탁을 외치며 독립 인사인양 과거의 경력을 세탁하려 했다. 친일 역사 왜곡의 한 장면이다.
동아일보는 무엇을 근거로 기사를 썼을까? 정치적 선택이었을까?

언론의 진실보도는 그 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오보를 모르기도 하지만 오보가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여긴다. 자신이 전쟁에 참여할 가능성도, 친일이나 좌우익 정치 갈등에 연루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보가 정말 일반인들의 삶과 무관할까? 부동산, 복지 정책, 코비드19 등등 관련 보도만 봐도 외려 개인의 삶과 무관한 언론 보도가 있을 리 없지만, 그 역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감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의 시민은 언론의 오보에 둔감하다.
둔감한 대중을 무서워할 언론은 없다. 언론이 진실 검증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보로 인해 언론사가 망하는 일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언론 때문에 망하는 개인은 많다.
1998년 골뱅이 통조림 사건은 언론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오보 사건이다. 7월 8일 검찰은 골뱅이 통조림 회사들이 포르말린을 첨가해 통조림을 만들었다고 관련 회사의 대표들을 구속, 불구속으로 기소하였다. 언론은 포르말린의 유해성을 강조하며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식약청은 7월 23일 자연 상태에서 포르말린이 생성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문화일보도 관련 기사를 냈다.
그래도 검찰의 수사와 기소는 이어졌고, 1999년 1월 22일 1심에서 무죄에 이어 대법원까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사이 2~30개에 달하는 대부분의 영세한 골뱅이 통조림 회사는 망했다. 전문지식이 없는 검찰의 섣부른 수사와 발표, 그리고 언론의 선정적 대응이 초래한 참사였다.

그런 사건을 겪었음에도 2004년에는 쓰레기 단무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단무지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만두소에 넣는 것을 ‘쓰레기’ 단무지라며 수사했다. 언론은 경찰 수사 결과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한 방송사는 경찰이 원래 쓰레기로 버린 자투리를 찍은 영상을 실제 만두소에 들어가는 자투리인 양 보도했다.
골뱅이 통조림 사건을 겪었음에도 확인조차 제대로 안 한 언론사들. 이번에도 영세한 단무지 업체, 만두업체들은 파산 위기를 맞이했다. 비난에 시달리던 한 만두업체 사장은 자살했다. 하지만 몇 달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인체유해성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내놔 일단락 됐다.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할까?

식품 위생은 전 국민과 관련된 사안이기에 언론이 긴급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학적 검증 없는 언론의 보도는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 미래에 내가 그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속보보다는 진실 보도가 중요한 이유다.
전문성을 지닌 언론이 더욱 절실한 시대다. 그리고 내 스스로를 지키는 나의 경각심이 필요하다.
 

※ 김서중 교수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과 박사

現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자율학부 교수
現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

KBS 이사회 이사(2015~2018), 제28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2014), 제15대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2013),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2007), 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2005), 언론중재위원회 위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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