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형 회장 7주기] 세아그룹, 정직으로 뿌리 내린 '철과 같은 마음'
[이운형 회장 7주기] 세아그룹, 정직으로 뿌리 내린 '철과 같은 마음'
  • 김종혁
  • 승인 2020.03.10 0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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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의 경영철학 이태성·이주성 3대 경영체제로 안착
세아특수강 세아베스틸 특수강 선재 韓 철강발전 견인
경영-직원 아우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훌륭한 수장'
겸손과 감사,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성품 업계 '귀감'
고 이운형 회장이 별세한 지 7주년이 됐다. 세아그룹은 '정직'이라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뿌리를 내려, 현재 3세대 경영체제로 들어섰다. 그의 겸손, 감사,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성품은 60년의 역사를 지낸 세아그룹의 기업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사진=세아가족 2014년 3-4월호
이운형 회장이 별세한 지 7주년이 됐다. 세아그룹은 '정직'이라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뿌리를 내려, 현재 3세대 경영체제로 들어섰다. 그의 겸손, 감사,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성품은 60년의 역사를 지낸 세아그룹의 기업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사진=세아가족 2014년 3-4월호

 

“철은 세상에 수많은 혜택을 주면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늘 처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겸손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철과 같은 마음입니다.”
이운형 회장은 2012년 ‘언스트앤영 철강 부문 최고기업가상’을 받는 자리에서 생전에 주로 썼던 ‘철과 같은 마음’을 이 같이 표현했다. (‘철과 같은 마음’ 2018.3. 임영태 著> 발췌)

10일은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7년째 맡는 날이다. 정직은 이 회장이 철칙으로 삼는 경영 철학이다. 정직한 경영,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은 2001년 철강업계 최초로 지주사 체제를 구축하는 바탕이 됐다. 또 창업주로부터 현재 3세대 경영체제까지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배경이기도 하다.

세아그룹은 현재 3세대 경영인인 이태성 부사장과 이주성 부사장이 각각 세아홀딩스와 세아제강지주를 이끌고 있다. 공급과잉, 저성장 등의 경영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돌파하기 위해 글로벌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룹 양 축인 세아베스틸과 세아제강의 글로벌 투자가 대표적 사례다. 이는 이운형 회장이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세아그룹에 또 한 번의 퀀텀점프를 안길 기회로 인식된다. 

'세아'가 현재 3대에로 안정적인 경영으로 이어진 데는 창업주의 정신이 이운형 회장을 통해 그룹 내 전사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덕분이다. 경영인으로부터 직원까지 뿌리 깊은 전통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운형 회장은 ‘정직하게 돈을 벌어서 사회를 위해 올바르게 쓴다’는 창업주 해암 이종덕 명예회장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2세대 경영을 이끈 그는 창업주의 정신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자는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겸손과 감사,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성품 은 업계의 귀감이 됐다.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덕목은 감사와 겸허의 마음입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감사하고, 우리에게 원재료를 공급하는 회사, 우리 제품을 이용하는 회사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세아를 일류 기업으로 만드는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장은 2011년 공채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새로 들어온 신입 및 경력 사원에게는 “우리 회사에 지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 회장이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 데는 철강산업의 상징이 된 많은 역사적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최초로 지주사 체제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1981년 금탑산업훈장을 수훈(제18회 수출의 날)하는 등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다. 특히 창원강업(현 세아특수강)과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 인수로 한국에서 특수강 선재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쌓아 올렸다.

이운형 회장은...

1947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74년 부산파이프(현 세아제강) 이사로 취임했다.

◆ 주요 공적

이운형 고 세아그룹 회장/사진=세아그룹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사진=세아그룹

1979년 부산번디(현 세아FS) 설립, 서형 스틸튜브 국산화
1980년 부산파이프 대표이사 사장 취임
1981년 제18회 수출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훈
1985년 한국알로이로드(현 세아에삽) 설립, 특수 용접재료 FCW 국산화
1988년 창원강업(현 세아특수강) 인수, 특수강 선재 사업 시작
1990년 한국강관협회 회장 취임
1995년 부산파이프 대표이사 회장 취임
1996년 ‘세아’로 사명 교체
1997년 한국경영과학대상 수상
1998년 한국철강협회 비상근 부회장 취임
1999년 세아특수강 회장 취임
2000년 국립오페라단 이사장 취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취임
          대한‧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취임,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 이사장 취임
2001년 세아홀딩스 지주회사 설립 및 회장 취임
2003년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 인수, 특수강 사업 본격화
2005년 세아베스틸 대표이사 회장 취임
2006년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취임
2007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취임
2008년 국립오페라단 후원회장 취임
2009년 몽블랑 물화예술후원자상 수상
2012년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수상, 대한금속재료학회 금속‧재료상 수상
2013년 3월 별세
2014년 대원음악상 특별공헌상 수상
2016년 대한민국 문홛예술 발전 유공자 선정, 보관 문화훈장 수훈

이운형 회장은 1974년 부산파이프(현 세아제강) 이사로 입사해 1980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혼란의 연속이었던 1970년대가 지나고 격동의 1980년대가 왔으니, 대표로서 짊어져야 할 부담과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경영의 큰 분기점이었던 상황에서 ‘이운형 사장 체제’는 시작됐다.

그는 젊은 패기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시대를 앞선 리더’로 통했다. 이 회장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에 걸쳐 사업의 전문화와 다각화를 추진했다. 세아그룹 역사에 기록된 일대 전환을 마련했다.

세아제강 포항 1공장이 본격 가동해 매출 신장을 이루었고, 이후 소경, 중경, 스파이럴, 고급 대구경, 스테인리스 강관 전문 공장이 차례로 세워지면서 강관산업의 중심에 섰다.

세아 최초의 합작법인인 한국번디는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특수 용접재료 메이커인 에삽(ESAB)과의 합작법인 세아에삽을 출범시키며 수입에 의존하던 소재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시기 세아특수강의 전신인 창원강업을 인수했다. 자동차 부품 필수 기초 소재인 고급 선재제품의 국산화를 실현했다.

국가 기반 산업이 취약한 시절이었던 당시 이 회장은 철강소재의 혁신과 발전을 견인하며 세아그룹을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1981년 강관업계 최초로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한편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어려움이 있어도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내실을 다진 끝에 여러 계열사들이 각자가 속한 업계의 선도기업으로 도약하도록 독려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전 세계 경영환경이 크게 변화했다. 이 때부터 부산파이프도 국내외 22개 계열사가 속한 그룹 체제로 전환했다. 그해 이 사장은 그룹 회장으로 추대됐다. 현재의 사명인 ‘세아’로 바꾼 시기다.

사진=세아그룹

사명에는 ‘세계로 도약하는 아시아의 일류기업’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수출시장 확대 및 국제화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는 이 회장의 도전정신을 표방한 그룹명이다.

그룹 체제로의 변화, 사명(社名)과 CI의 변경 등을 통해 이 회장은 보수적인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했다. 새로운 비전 제시로 사원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경영다각화를 실시한다면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실제로 흩어져 있던 전 계열사가 하나의 그룹으로 연결되면서 인사 교류나 업무 협조도 훨씬 활발해졌고, 기업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그룹의 탄생과 함께 이 회장은 변화와 혁신의 전략을 강화했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철강분야의 합리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사업다각화를 계속해서 시도했다. 

6년 뒤인 2001년, 이 회장은 지주회사제를 도입했다. 제조전문회사인 ‘세아제강’에서 투자전문회사인 ‘세아홀딩스’를 분할해 (투자전문회사) 지주회사로 세운 것인데, 이는 국내 재계에서도 선발주자 격이었다.

지주회사제 도입으로 세아제강은 자체 사업에만 집중해 경쟁력을 키웠고, 세아홀딩스는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등 새로운 성장 원동력을 만들어 자회사의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고 전문화시켰다. 순수 지주회사로 새롭게 탄생한 세아홀딩스는 2001년 한국거래소에 상장해 기대 이상의 주가를 형성하기도 했다.

기업 분할 수 가장 괄목할 만한 업적은 2003년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의 인수였다.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던 기아특수강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와 맞물리면서 법정관리 기업으로 전락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아특수강을 회생 불가능한 기업으로 여겨 공매 입찰 참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특수강 사업이 국가기간산업으로 반드시 필요하며, 철강비즈니스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겼다. 입찰 과정에서 경쟁자에게 우선 협상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이 회장은 일관되고 적극적인 자세와 노력으로 많은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세아는 기아특수강을 품으로 들이는 데 성공했다. 인수 이후 투명하고 원칙적인 경영은 만년 적자 기업을 불과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세아베스틸 항공사진(왼쪽)과 대형프레스 단조설비 생산모습
세아베스틸 항공사진(왼쪽)과 대형프레스 단조설비 생산모습 <사진=세아그룹>

기아특수강의 인수와 투자는 세아그룹의 사업 확장과 균형을 이루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규모 기업집단 34위(2011년 기준, 공기업 제외), 매출액 6조4656억 원(2011년 기준, 국내 기준)을 달성함으로써 세아 경영사에 기념비적인 성취를 남겼다.

이운형 회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세아를 지휘한 훌륭한 수장이었다. 지주회사제 도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위기 속에서 빛을 향한 내실경영과 합리적이고 성공적인 투자로 세아를 재계 50위권의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끌어올렸다.

2012년 12월에는 52년 만에 그룹 통합사옥인 세아타워에 입주하면서 각 계열사의 화합과 소통 통합 시너지의 토대를 마련했다.

세아그룹은 현재 3세대 경영체제로 들어서면서 글로벌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이 2016년 관세장벽을 세우자, 세아제강은 현지 강관사를 인수해 정면 승부를 걸었다. 세아베스틸은 유럽, 동남아 등에 현지 법인을 세우며 공급과잉과 저성장 등의 위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섰다. 

세아그룹은 올해로 60주년(이종덕 회장 1960년 부산철관공업 설립기준)을 맞는다. 이운형 회장이 쌓은 그룹의 기틀은 3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룹 역사적 전통과 경험, 특히 정직으로 뿌리를 내린 기업의 문화는 앞으로 100년을 향한 경쟁력이자 동력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왼쪽부터 세아스틸USA, 미국법인 SSUSA, 베트남법인 VINA, 이탈리아법인 이노스텍
왼쪽부터 세아스틸USA, 미국법인 SSUSA, 베트남법인 VINA, 이탈리아법인 이노스텍 <사진=세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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