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상승에 직장인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2023년 10월 7일 새벽, 하마스(이슬람 저항운동)가 이스라엘을 향해 대규모 로켓포 공격을 가했다. 약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스라엘은 즉각 전면전을 선포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에 무력으로 개입해온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공습하면서 ‘저항의 축’ 중심 국가인 이란과의 새로운 전쟁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왜 팔레스타인 지역이 반세기 만에 세계 최대의 화약고가 되었는가? 갈등의 씨앗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을 지배하던 영국이 유대계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 1917년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벨푸어선언’에서 찾을 수 있다. 동시에 아랍 민족을 오스만제국과의 싸움에 참여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도 약속했다. 영국은 물러나고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N의 중재로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영토와 아랍인 영토로 구분하여 유대인에게 56%를 주고, 나머지 44%(가자지구, 요르단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이 살게 했다. 유대인 정착민들이 그곳에 살던 원주민을 쫓아낸 결과이다.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1878년 기준 팔레스타인 주민 87%가 이슬람교도였고, 유대인 인구는 3%도 안 됐다. 이 같은 2중 배분에 불만을 품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주변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한 ‘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고, 승자는 이스라엘이었다. 2차 중동전쟁은 1956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에 일어났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으로 당시 수에즈 운영을 주도해온 영국․프랑스는 이권 상실에 반발해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연합공격을 벌였다.
1967년 나세르 대통령이 이스라엘 남쪽의 바다로 이어지는 아카바만의 입구 티란 해협을 봉쇄하고 이스라엘 선박 통과를 금지하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하면서 3차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차례로 공격해 6일 만에 대승을 거뒀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종교축제일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초기 열세였으나 미국의 군수지원으로 승리를 거뒀고, 1974년 이스라엘은 이집트․시리아와 정전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전쟁의 최대 원인은 이스라엘 건국 배경인 시오니즘(Zionism)이다. 디아스포라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이 조상들이 살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하란 지역(현 이라크)에서 가나안으로 최초로 이주했다. 그 후 아브라함의 후손은 가뭄을 피해 이집트(애굽)로 이주했고, 노예 생활로 신음하던 유대민족은 모세와 여호수아 지도력으로 이집트 대탈출을 강행한다. 1주일이면 갈 수 있는 땅이지만 광야 40년 생활 끝에 가나안에 정착한다. 이미 정착해 살고 있는 가나안 7족속과 블레셋 족속과 전쟁을 벌여서 유대 국가를 이룬다.
다윗왕과 솔로몬왕 시절 번창했던 유대 국가는 아수르(아시리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고, BC 5~7세기경부터 디아스포라가 됐다. 유대민족의 시련은 끝이 없었다. 로마제국의 핍박, 유럽의 흑사병 창궐 시 유대인을 학살하고 추방시켰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레닌과 스탈린 치하의 유대인 핍박 등을 거침으로 유대인들의 독립국가 설립이 간절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란의 백색혁명(급진적인 세속화 정책)을 추진하던 팔라비 왕조 시절에는 이스라엘과 우호적이었다.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국은 트랜스 이스라엘 파이프라인(Trans-Israel pipeline)을 건설하여 이란에서 건설된 석유를 이집트(수에즈 운하)를 거치지 않고 이스라엘과 유럽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경제적 협력이 강했다.
하지만 1978년 이란에 ‘이슬람 혁명(Islamic Revolution)’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팔라비 왕조의 세속 왕정을 무너뜨리고 국호를 현재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꾼 세계 최초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숭상하는 신정국가로 재탄생하였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싸고 양국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갈등 해소 및 평화적 해결까지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예상된다. 중동전쟁 종결의 정답은 없겠지만, 평화와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한 해결책이 절실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미국도 이도 저도 못하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 등 중동국가들도 자국의 입장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휴전 제안을 거절하면서 ‘완전한 승리가 해결책’이라는 강경안을 내놓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공습과 역습으로 피해 규모는 확대되고 있으며 민간인들의 피눈물이 역력하다.
전쟁 장기화로 이스라엘의 경제문제도 심각해졌다. 국가신용등급이 내려앉고 이스라엘을 떠나는 인재의 거대한 물결이 현실이다. 미래의 가자 지구는 현지 팔레스타인 주민에 의한 통치여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평화를 이루었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를 완전히 떠나면서 절차에 따라 평화협정의 파트너였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에게 그 지역을 넘겼다. 그러나 하마스는 17개월 만에 PA를 가자지구에서 몰아냈고, 테러 국가로 변신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모두 형제처럼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이란이 지원하는 하마스가 권력에서 물러나고, 이스라엘 네탸나후 정권이 이란을 분열시키기 위한 쿠르드족이나 발로치스탄 등 이란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원하는 소수 민족에게 무기를 은밀하게 지원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란을 고대 페르시아의 영광스러운 역사와 풍부한 예술과 자부심의 국가임을 인정했으면 한다.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이념적 갈등과 해결 노력에 외부세력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중동평화의 희망이 실현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