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탄소중립시대, 철스크랩은 유통에서 ‘산업’으로 가야 한다
[특별기고] 탄소중립시대, 철스크랩은 유통에서 ‘산업’으로 가야 한다
  • 김경식
  • 승인 2023.05.17 03:0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스크랩 패러다임 전환 '블루오션' 단계 진입
가치사슬 재설계 사슬마다 부가가치 생성해야
더 큰 부가가치는 배출권거래제에서 나올 것
그린금융 등 전략수립 단계별 과제 생성 추진
김경식 ESG네트워크대표·고철연구소장
김경식 ESG네트워크대표·고철연구소장

2003년 여름 무렵, 레스트 브라운(Lester R. Brown)의 『에코이코노미』 가 한국생태경제연구회에 의해 국내에 소개됐다.

당시 필자는 현대제철 기획팀에 근무하면서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민영화)에 따른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저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 원자력 발전 반대운동을 하던 생태경제연구회 회원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됐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내용인즉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화석에너지를 대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 한 그린(Green) 수소를 만들어 수소경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이나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물론이고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 모든 운송 수단의 연료도 수소가 이용되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재활용이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새로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기보다는 이미 개발된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모범이 철스크랩(고철) 재활용이라고 소개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20년 전에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후 2004년 한보철강 인수를 위해 현대제철에 홍보팀이 구성되고 첫 팀장으로 발령을 받아 시작한 것이 철스크랩의 친환경성 논리를 개발·홍보하는 것이었다.

『푸른연금술사』란 제호로 사보를 발간하고, 철의 순환과 재활용을 강조하는 홍보영화를 만들었다. 홍보영화에는 우리에게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세계적인 환경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이 직접 출연했다. 그는 홍보영화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철스크랩 재활용의 중요성을 인터뷰해주었다. 『푸른 연금술사』는 환경운동 시민단체에서도 애독하고 있고, 홍보영화는 철강업계는 물론 철스크랩 유통 종사자들에 큰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오염물질 다(多)배출의 대표적 업종인 철의 친환경성을 알렸고, 또한 ‘고철 장사’에서 당당한 ‘친환경 자원 사업자’로의 인식 변화에 계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이러한 변화에 보람을 느껴서 한때 필명을 자유기고가 ‘고철’로 글을 쓰고, 현대제철 퇴직 후 운영하는 연구소도 ‘고철연구소’로 작명했다.

철스크랩과 필자와의 인연은 그 전에 시작되었다.

홍보를 하기 이전인 2003년에 철스크랩을 하나의 유통 물자에서 ‘산업’으로 육성시키기 위한 제도화 작업을 했다. 우선 한국철강협회 내에 철근·형강을 생산하는 회원사들을 별도로 모아 ‘보통강전기로협의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산업연구원(정은미 박사)에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보고서가 『철스크랩 유통구조 합리화를 위한 연구』였다. 용역의 주목적은 유통구조 합리화와 품질개선이었다. 당시에는 제강사로 철스크랩 납품 시 이물질 혼입으로 품질이 늘 문제가 됐다. 이는 철스크랩 운송·이적 과정에 불필요한 비용을 들게 하고, 전기로 생산과정에서도 T.T.T 연장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전기 사용과 부원료 투입이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가 보유한 대도시주변 그린벨트에 철스크랩 가공단지를 조성하고, 장기·저리의 설비자금을 제공해서 스크랩을 분류·절단·압축 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당연히 유통 원가가 올라가게 되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제조원가는 절감이 된다. 따라서 원가 상승요인과 절감요인을 합리적으로 안분하면 철스크랩 사업자, 제강사, 지자체, 정부 등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제도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일은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용역을 마무리할 즈음 필자의 업무가 홍보·대관으로 변경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철스크랩은 산업화가 되지 못하고 유통 물자의 하나로 거래되고 있다.

‘스크랩은 생산품이 아니라 발생품이다’는 인식과 ‘항상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라는 고정관념이 너무 큰 것 같다. 도난과 부패의 우려가 적은 데다가 전·후방 고객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등락의 흐름을 쫓아가면 기본 수익은 보장이 되기 때문인가?. 더구나 탄소중립시대를 맞아 철스크랩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용광로 투입용 고철이 늘어나고 있다. HMR(용선투입비율)도 현재 90~85% 수준에서 80%, 70%로 늘어날 것이다. 더구나 포스코는 광양·포항에 각 연산 250만톤, 총 500만 톤의 신규 전기로 가동을 계획하고 있다. 현대제철도 휴지 중인 미니밀(전기로)을 재가동할 계획이다. 한국산 철스크랩의 해외 수입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철스크랩 업계 입장에서는 블루오션에 들어섰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철스크랩이 산업화되지 못하고 유통 물자의 하나로 존재하면 아무리 블루오션이 펼쳐져도 업계 종사자들의 수익성은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적절한 유통 마진 수준에 머물 것이다. 또한 사회적 지위(평판)나 고객과의 상대적 대등성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려면 산업화를 해야 한다. 산업화란 조직적·체계적·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원가(비용)이 가치로 전환되는게 산업화다. 따라서 가치사슬을 재설계해서 각각의 사슬마다 부가가치 생성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 앞서 소개한 ‘유통구조 합리화’도 초보적인 산업화로 볼 수 있다.

이제 시대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패러다임 시프트에 맞게 가치사슬도 재구축하고 무엇보다 ‘사업 여건’을 조성·활용해야 한다. 이 점이 이전 시대와 확실히 다르고 또 다르게 해야 한다. 특히 가치사슬의 재구축에는 탄소 측정과 이력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하면 ‘브랜드’를 도입할 수 있다. 브랜드를 도입하면 자동차나 건설 회사 같은 최종 소비제품 생산자가 “우리 제품은 ‘00브랜드’ 소재로 만들었습니다(intel inside)”고 홍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사업 여건 조성·활용의 대표적인 예는 ‘배출권거래제’다. 철스크랩의 부가가치는 1차 적으로는 가치사슬에서 나오지만 더 큰 부가가치는 배출권거래제에서 나올 것이다. 사업 여건 조성의 또 하나의 예는 재생에너지다.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을 흔들면서 배출권도 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철스크랩 산업화를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난 수십 년의 과정이 주는 교훈은 철스크랩 업계가 기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업계가 자체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자체적으로 먼저 전략을 수립하고 단계별 과제를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철 스크랩업계가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린금융’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단계별 과제의 한 예다. 그렇게 해서 제강사가 따라오게 해야 하고, 정부도 제도적 지원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 왜 그런가. 철스크랩 산업화의 궁극적 수혜자는 국민이고, 그 국민이 정부와 제강사의 변화를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은 철스크랩 업계가 하는 것이다. 산업화를 통해 철스크랩 종사자들이 탄소중립 시대의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그에 맞는 사회적 지위와 자긍심을 갖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원성환 2023-05-17 11:07:1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winpartn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