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인심 잃은 제강사, 살길 찾는 고철
[페로칼럼] 인심 잃은 제강사, 살길 찾는 고철
  • 김종혁
  • 승인 2020.12.09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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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 페로타임즈 국장
김종혁 페로타임즈 국장

앉은뱅이와 맹인의 일화가 있다.

앉은뱅이는 어느 날 한 맹인을 만난다. 자신을 업어주면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던지라, 둘은 애틋한 마음으로 한 몸처럼 위하고 살았다.

장터 사람들은 둘이 서로 의지하고 사는 모습에 감동하고 많은 인심을 베풀었다.

삶은 예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앉은뱅이는 조금씩 욕심을 냈다. 견물생심이라 했나. 그나마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니, 좋은 음식은 자기가 먹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은 맹인에게 줬다.

맹인의 몸은 갈수록 약해졌다. 좋은 것만 먹고, 살까지 오른 앉은뱅이는 더 이상 동반자가 아닌 큰 짐이 됐다. 맹인은 어느 날 논길을 걷다가 앉은뱅이를 업은 채로 굴러떨어졌고, 둘은 결국 모두 죽게 됐다.

제강사와 고철 기업들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다. 어느 한쪽의 욕심과 이기심이 발동하면 관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최종 목적지도 모른 채 불리한 한쪽에서 그냥 참고 사는 거다.

올해의 상황은 불행하게도 제강사의 마음 바닥을 확인하게 됐다.

현대제철은 고철 가격 상승을 누르기에 급급했고, 국내 입고량이 주춤하면 허겁지겁 해외에서 비싼 돈을 주고 수입을 했다. 해외 가격은 불과 2개월 사이 100달러나 급등했는데, 납품 가격은 2,3만 원 오른 게 고작이다. 제강사의 명분은 '우리가 어렵다‘는 얘기다.

철근 메이커들은 반사이익을 본다. 최대 수요처인 현대제철이 국내 가격 기준을 낮게 잡다 보니 이보다 톤당 1,2만 원만 높여 사면 그만이다. 대다수 기업이 적자를 볼 때 철근 영업이익률은 5% 이상 10%에 달했다.

고철 기업은 어떤가. 올해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은 바닥으로 치달았다. 매출은 급감하고, 은행 대출 이자를 갚기도 버겁다. 고철 납품 가격을 조금이라도 올려준다면 그 이상의 은혜가 없다.

고철 기업들은 제강사들의 이 같은 행태가 낯설지 않다. 제 살길만 찾는 제강사가 야속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자금이라도 돌려야 하니 ’제값‘을 못 받아도 납품만 받아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고철 기업들의 상황을 아는 제강사 담당자들은 내부 눈치를 보기 십상이다. 아니 필사적으로 봐야 할 처지다. 적자 상황이고, 구조조정이 살벌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국내 납품 가격을 인상하려면 외부 눈치도 봐야 한다. “이럴 때 왜 먼저 나서서 가격을 올리나.” 동종사들의 눈총이 따갑다.

제강사들은 올해 말까지 고철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실적을 최대한 플러스로 돌려놔야 한다. 소신 발언이 있어도 자제해야 한다. 그래야 신상에 좋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연봉 1억을 찍는다.

내년 국내외 고철 시장은 예상치 못한 큰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중국의 수입 재개 가능성이 그 핵심에 있다. 제강사들이 올해의 짐을 털어내면 내년부터 고철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고철 업계의 분위기를 보면, 제강사는 고철 기업의 신뢰, 최소한의 인심마저 잃었다.

제 살길 찾는 제강사에 바랄 것은 없다. 제강사 각 기업의 정책과 전략에 ’왈가왈부‘도,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

핵심은 고철 기업들도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철 자급 시기에는 현재처럼 제강사에 의존해서는 생존이 어렵다.

특히 고철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산업화하고, 국가 차원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첫 단추는 '탈제강사'다. 고철 수출은 이를 위한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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