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뻘겋게 녹슨 제철소 인근마을 17년동안 ‘버려진 도시’로 전락
[기획특집] 뻘겋게 녹슨 제철소 인근마을 17년동안 ‘버려진 도시’로 전락
  • 김종대 페로타임즈 대표
  • 승인 2019.06.11 0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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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로의 가동중지명령은 "사망선고" ...막스휘테 몰락은 수입철강재와 원가경쟁력 하락때문
- 철강기업 혼자가 아닌 전후방 산업도 위급한 상황 자초...국제표준 기준한 조사 선행돼야

광양시, 당진시가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고로정지 10일의 행정명령을 내려 철강업계와 정재계 학계 등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지자체 및 환경단체들은 조업중지 방침을 옹호하며 대기오염에 대한 철강기업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철강업계와 전후방 산업, 그리고 시민사회경제단체들은 행정명령의 완화를 요구하며 대립중이다.

고로의 조업정지는 단순한 가동중단이 아닌 사회경제를 마비시키는 치명적 조치라는 비판일 거세다. 독일 막스휘테제철소의 몰락과 함께 버려진 도시로 전락한 인근마을의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 하다. 본지 김종대 발행인르포기사를 토대로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편집자주]

"최근에 국내 철강기업들에게 내려진 행정명령은 기함할 일이다. 고로의 가동 중지명령은 사망선고나 마찬가지다. 철강기업 혼자 죽는 일이 아니라 전후방 산업도 위급한 상황을 자초하게 된다."

"가동중지는 비즈니스라는 전쟁터에서 손을 털라는 주문과 같다. 이렇게 철강산업을 흔들면 국가 기간산업(커맨딩하이츠)의 역할은 누가 할 것인가."
 

막스휘테 제철소 정문. 2002년도에 가동을 중단하고 ‘사무실이나 전시회 공간으로 임대한다’는 팻 말을 붙여 놓았다.(2014년 4월 방문한 필자)
막스휘테 제철소 정문. 2002년도에 가동을 중단하고 ‘사무실이나 전시회 공간으로 임대한다’는 팻 말을 붙여 놓았다. 정문에 표시된 'X자' 팻말이 눈길을 끈다. (2014년 4월 방문한 필자)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슐즈박 로젠베르크’(Sulzbach Rosenberg). 이곳에는 ‘막스휘테제철소’가 있다. 제철소 정문 200여 미터 전방에 들어서자 높다란 제선공장의 송풍기가 드러났다. 송풍기는 오랜 세월을 이야기 하듯 뻘겋게 녹슬어 있다.

제철소 진입로도 썰렁했다. 사람도, 상점과 음식점도 보이지 않았다. 주택도 많지 않았다. 철강공장 정문 표지판에 써 붙인 애처로운 문구만 멀리 코리아에서 달려온 이방인을 반길 뿐이었다.

불꺼진 막스휘테제철소는 ‘사무실로 빌려 줍니다.(Hallenvermietung)’ ‘큰 공간을 빌려 극장이나 전시회를 할 수 있습니다.(Bürogebaude)’ ‘땅도 빌려 줍니다.(Grundstücke)’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이 “제발 날 살려 달라”는 마지막 소원 같았다. 가슴이 싸~해졌다.

“공장견학은 허락할 수 없다. 공장이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곳 관리책임자 ‘파울 바움게르트너’씨의 말이다. 그는 “사전에 허가된 안내자와 함께 와야만 견학 할 수가 있다”면서 필자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언제 문을 닫았는가?” “2002년도에 문을 닫았다.”

12년 동안(2019년 현재도 진행 중) 마땅한 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됐다. “이유를 알 수 있나?” “통독이 되고, 유로가 통합되면서 폴란드나 헝가리 등에서 밀려드는 철강 제품과의 원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공장내부는 언제 볼 수 있나?” “매주 일정한 날을 정해 외부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지금은 개방 할 수가 없다”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던지자 이곳 관리자인 바움게르트씨는 막스휘테의 홍보 동영상 CD를 건네준다. 참고하란다.

‘막스휘테제철소’가 가동되었을 당시의 모습. 막스휘테 제철소 홍보 동영상 촬영
‘막스휘테제철소’가 가동되었을 당시의 모습. 사진=막스휘테 제철소 홍보 동영상 촬영

이 공장은 철도 레일을 만들던 철강공장이었다. 반경 200Km지역을 커버했을 만큼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전에 가동이 중단됐다. 사약을 받기 이전부터 막스휘테는 생존을 위해 품목을 다양화했지만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설비 합리화를 통한 변신도 검토했지만 적자의 늪을 탈출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막스휘테’(MAXHüTTE:막스하우세 스트라세 1번지 소재)는 회사 이름만 공장 외벽에 걸쳐 놓고, 녹슬어 가는 제철소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지 맥없이 손 놓고 있었다. 외곽에서 바라본‘막스휘테’는 고철 집하장 같았다.

서둘러 타지로 떠난 텅빈마을

스트라세 지방경제에 큰 버팀목이었던 막스휘테제철소는 고로의 불을 끈 이후로 버림받은 도시로 변했다. 사람들은 서둘러 타지로 떠났다.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공장 앞 진입로 맞은편의 텅 빈 공간은 생활 쓰레기 분리 장소로 둔갑했다. 방문자도 ‘불 꺼진 철강공장’을 더 이상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다. 현실은 냉정하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문구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막스휘테’의 용광로가 불을 껐다고 독일 경제가 침체 된 것은 아니지만, 화려했던 스트라세 지역은 왜 몰락했을까 하는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반면에 독일을 대표하는 철강기업 ‘티센크룹’은 5대째 경영을 잇고 있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또 궁금해졌다.

티센크룹의 성장 요인은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선택과 집중이다. 미국 뉴코의 성장 비결도 동일하다. 물론 이들 기업은 지역사회와 공존하기위한 친환경 생산활동을 부단히 추구해왔다. 그리고 지자체의 지원도 한몫을 차지했다. 철강기업의 성장발전이 지역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을 지자체는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워 지역경제를 융성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를 지자체는 기업과 늘 협의 한 셈이다. ‘고로의 불을 끈 막스휘테’만 보더라도 스트라세 지자체는 오랜 시간을 두고 처리하느라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일명 도시재생이라는 명목으로 최선의 방책을 준비하는 것이다.

2014년 4월에 지켜보았던 막스휘테의 현실은 국내 철강기업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철강기업들이 막스휘테의 전철을 밟지 않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 옛날, 제선공장과 제강공장에서부터 압연라인에 이르기까지 생산 활동을 이어가던 ‘막스휘테’ 근무자들의 활기찬 모습은 다시 볼수 없고, 동영상은 빛바랜 필름일 뿐이다.

제철소의 본질은 시뻘건 쇳물이 이글거리는 역동성이다. 식어버린 고로의 모습은 산등성이를 꼴깍 넘어가버린 어둠과 다를 바 없다.

고로중단 행정 명령은 사약

최근에 국내 철강기업들에게 내려진 행정명령은 기함할 일이다. 고로의 가동 중지명령은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이다. 철강기업 혼자 죽는 일이 아니라 전후방 산업도 위급한 상황을 자초하게 된다. 가동중지와 같은 엄한 행정명령은 성급했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철강생산 설비들은 최신예의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열정을 지극히 필요로 한다. 그런 철강인의 열정이 식으면 다시는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탈환하기 어렵다. 철강제품은 글로벌 제품이므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새로운 경쟁자와 싸워야 하는 업종이다. 그래서 철강인들은 늘 전쟁터에 나선 병사와 같다. 전쟁터에서는 처지를 변명할 여력이 없다. 전쟁터에서는 먼지가 날린다고 병사들이 먹어야 할 밥을 짓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지않는다. 병사를 먹여야 후방의 국민안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매뉴얼처럼 진행되는 과정을 우리식의 잣대로 기준하여 가동중지 명령을 내린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 고로메이커가 가동을 중지한다면 방휼지쟁(蚌鷸之爭)이 된다. 도요새가 조개를 잡다가 조개가 도요새의 주둥이를 무는 통에 어부가 조개와 도요새 모두를 손쉽게 잡는 횡재를 이웃 나라에 안길 것이다.

‘방휼지쟁’ 이익은 이웃나라 몫

철강산업의 전방산업은 조선산업, 가전산업, 건축과 토목산업, 자동차산업 등이며, 철강제품은 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밥을 지어야 하는데 쌀이 부족하다면 외국산을 들여오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제조업체들이 베트남으로 인도네시아로 미국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는 판국에 어쩌라는 것인가.

가동중지는 비즈니스라는 전쟁터에서 손을 털라는 주문과 같다. 이렇게 철강산업을 흔들면 국가 기간산업(커맨딩하이츠)의 역할은 누가 할 것인가.

다만, 국내 고로메이커들이 엄청난 투자를 통해 환경보전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만큼,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면밀히 따져 가동중지라는 행정명령을 재고할 일이다. ‘사무실로도 빌려주고, 운동장도 빌려주고...' 막스휘테의 참담한 현실은 아무도 원치 않을 것이다. 먹거살 기반은 남겨 놓아야 하는 논리이다.

자그마한 어촌과 농촌을 잘사는 도시로 탈바꿈 시킨 철강기업들이 홀대받는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고로메이커의 환경오염관련 사항은 내부 고발자로부터 기인됐다는 보도도 있으나, 시발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로의 블리더 개봉이 정말 환경오염의 주범인가를 밝히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표준과 학계의 견해 등을 모두 종합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면밀한조사를 거쳐야 하며, 철강기업들도 친환경투자를 위한 세세한 일까지 지역주민들에게 낱낱이 알리고 이해시키는 기업시민정신을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철강 기업의 경쟁력은 규모냐 기술이냐?’ 그리고 ‘친환경설비를 완벽히 갖추는 일이냐?’ 기술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친환경설비도 마찬가지이다. ‘막스휘테 제철소’의 녹슨 송풍기가 “당신들은 나처럼 되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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