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여전히 공정성에 민감하고, 부패의 유혹에 취약하며, 타인의 악행에 분노하고,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혼동하며, 경제적 추론보다 이야기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로버트 실러(예일대 교수)
1920년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행동은 반복된다. 주식투자자들의 행태가 비이성적 과열, 투기적 버블에 심리적 기초를 두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감정으로 행동하기 쉽다. 이성의 기저에 깔린 인간의 본능 즉 야성에 의존한다. 야성(野性)은 자연 그대로의 거친 성질을 의미한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든 전적으로 각자가 지닌 자유 의지의 표현이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저서 ‘야성적 충동’에서 “경제를 움직이는데 야성적 충동은 꼭 필요하다.”라고 썼다. 즉 야성적 충동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정신적 에너지이자 생명의 힘으로 거시경제학의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로버트 실러 교수는 효율적 시장가설 반대편에 서서 인간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08년 미국증시 폭락과 이에 앞선 부동산 가격 폭락도 예견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 석학이다. 경제를 움직이는데 야성적 충동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2000년 ‘비이성적 과열’이란 책을 통해 뉴욕 증시의 거품을 지적했다. 곧바로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그의 진가는 인정받았다.
2000년도의 닷컴버블은 인터넷 혁명과 신경제 도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의 결과다. 그의 이론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시장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명제를 깔고 있다. 시장 수급을 감안해 인간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이에 따라 시장은 균형을 찾아간다는 합리적 기대가설에 반대하는 셈이다.
야성적 충동은 경제에 내포된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는, 그러나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핵심 요소들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경기순환이라는 것이 투자에 대한 ‘자신감’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하며, 실업이라는 것은 ‘화폐착각’에 따른 임금경직성 혹은 노동자들의 ‘공정성’에 대한 민감함에 따른 현상으로 풀이한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의 분석 도구는 심리적, 사회문화적 요소들에 집중한다. 즉 자신감(confidence), 공정성(fairness), 부패(corruption), 화폐착각(money illusion), 스토리(stories) 등이다. 또 실러는 경제 현상을 해석할 때 객관적인 통계 자료나 정부 당국이 생산한 자료만을 이용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지표 자체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내적 심리가 경제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의 힘이다.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등의 공간은 특정한 주장과 자료가 잘 포장되어 힘을 발휘한다.
본래 야성적 충동이란 말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자본주의 수정이론을 만든 영국 경제학자 케인즈가 쓴 말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근간인 ‘합리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야성적 충동이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기업가로서 도전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낙관주의적 에너지를 뜻한다.
금융위기와 같은 세계적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면 항상 경제학적 관점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이 활발히 진행된다. 하지만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순수경제학의 근본적 자기모순은 이러한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한 합리적 경제 인간, 확률과 분석을 통한 이성적 판단으로 행동하지 않고 야성에 의한 이성적 판단을 통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야성적 충동이 강해지면 전통적인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직감에 의존하게 된다.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직감을 강조했다가 실패했다. 곧 야성적 충동은 경제에 내포된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는, 그러나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핵심 요소들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그렇다고 야성적 충동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 정책자에게 요구되는 도전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낙관주의적 에너지를 뜻한다. 야성적 충동(직감)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통적인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고 공감할 때 조직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국가는 야성을 적절히 조절하여 이성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올바른 경제정책을 수립하면서 인간의 ‘야성적 충동’을 조절하여 사고와 정책에 충실히 반영할 때 경제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