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달라진다. 미국을 보자. 민주당과 공화당이 집권할 때의 기후 정책은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민주당은 탄소 감축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보급에 박차를 가한다. 국제적 협력을 중시한다.
반면 공화당은 기후라는 용어 자체를 쓰기를 꺼린다. 화석연료 산업을 지키는 쪽에 무게를 두고, 규제를 풀고, 석유와 가스 개발을 확대하는 쪽으로 간다. 환경과 탄소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시키고 전기차 보급 정책을 철회한다.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정 탈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와 보수 정부에 따라서 에너지 정책이 뚜렷이 갈린다. 진보 정부는 탈석탄,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를 기치로 내건다. 탄소중립의 달성을 선언하고 산업 구조를 과감히 바꾸겠다고 한다.
이재명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강력한 에너지 구조 개편, 석탄 화력의 단계적 폐지, 그리고 원자력과 LNG의 보완적 위치 재정립이 핵심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배 규모로 키우겠다고 한다. 태양광과 풍력이 일기에 따라 불안정한 약점을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대규모 구축으로 보완하겠다는 구상이다.
보수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은 지켜야 하지만, 원전을 더 활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재생에너지는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산업의 부담 경감과 실행력 강화 명분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늦추고 기존 산업(석탄, 화력 등) 규제 완화 정책을 병행했다.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눈여겨볼 것이 독일의 사례다. 독일은 원전을 2022년까지 완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에 집중했다. 2024년에는 풍력과 태양광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전체 전력 생산의 55%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그런데 전기요금이 크게 오르고,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졌다. 재생에너지 확대 초기에 막대한 투자 비용과 보조금이 전기요금 상승의 원인이 되었다. 독일 제조업은 그동안 저렴하고 안정적인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가스 공급이 불안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고, 이는 특히 철강, 화학, 시멘트 등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에 치명타를 입혔다.
독일 경제가 침체에 빠진 데에는 숙련된 기술 인력 부족 같은 복합적 요인도 있지만, 에너지 정책이 미친 영향이 컸다. 자동차 산업조차 공장 폐쇄를 고민할 정도다.
독일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력 생산 방식만 바꿔선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건물, 수송, 산업 등 에너지 다소비 부문에서 효율을 높이고, 전체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꾸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독일이 송전망 확충 과정에서 지역 반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점도 큰 교훈이다. 한국도 이와 같은 사례를 겪고 있는데, 지역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정치적 명분이나 이념 경쟁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과 세밀한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흔들리면 기업은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없고, 사회적 비용만 커진다.
에너지 정책은 국민적 합의와 미래 세대를 위한 지혜, 그리고 과학적이고 경제적 현실감각 속에서 꾸려져야 한다. 또 국가의 기간산업이며 경제의 버팀목인 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희생하면서 무리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