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제강사 고철담합 “해묵은 정책 벗어나야”
[페로칼럼] 제강사 고철담합 “해묵은 정책 벗어나야”
  • 김종혁
  • 승인 2021.02.02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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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취재차 연락을 했다. 담합 소지가 있는지 물었다.

현대제철이 일주일 뒤에 고철 가격을 인하한다고 발표하면, 다른 제강사들이 그 전에 인하를 실시하는 등 일사분란한 인하가 반복됐던 터였다.

최근 하락 국면에서도 재연되는 모양새다.  고철업계는 이마저도 담합 행위라는 비판을 쏟아내지만, 사실상 근거는 없다.

취재 당시 공정위 관계자도 “(철강사들간에) 납품 단가 인하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분명한 담합 행위”라고 밝히면서 “다만 개별 회사가 인하를 실시하고, 나머지 업체들도 이를 참고로 인하를 실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담합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어찌됐든 공정위는 답변한 것과 같이 확인하기 어려운 답함 사실관계를 밝혀냈고, 3000억 원에 이르는 과징금 결정을 내렸다.

과징금 규모는 요즘 같이 한 해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업체별로 현대제철 909억5800만 원, 동국제강 499억2100만 원, 한국철강 496억1600만 원, 와이케이스틸 429억4800만 원, 대한제강 346억5500만 원, 한국제강 313억4700만 원, 한국특수형강 6억3800만 원이다.

제강업계는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고철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번 과징금 조치에 대해 제강업계의 억울함은 당연한 일이다.

시장이 그렇다.

공급이 부족한 고철 원료를 경쟁사보다 싸게,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경쟁우위를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다.

인상시에는 최소한 경쟁사 가격을 맞춰야한다. 상승기에는 투기세력이 극성을 부린다.

상승이 과열되면 카드판 레이스를 펼치듯 인상 경쟁이 치열해진다. 어느 지점에 가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아야 과도하지 않고, 적정한 수준에서 상승이 멈춘다.

하락기에도 최소한 옆동네 분위기 정도는 파악해야한다. 특정 제강사가 계속 인하로만 일관하면, 고철 납품상(구좌업체)들이나 시장의 인심을 잃고 원하는 물량을 맛보지도 못한다. 다함께 인하하고, 또 멈춰야 소위 독박을 면한다.

고철시장의 투기성을 생각하면 시장의 특성상 담합 아닌 담합은 불가피할 때가 적지 않다.

제강업계간의 교감은 오히려 시장의 선순환을 위한 전략 차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수백개의 고철 기업, 또 불특정 다수가 섞여 있는 시장에 대한 전략,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제강업계가 생각할 점이 있다.

과연 경쟁사와 보조를 맞추는 구매가 이득일까.

제강업계의 시장 대응은 수십년간 변함이 없다. 대형 제강사가 선두에서 신호를 주면 그에 맞춰 따라가는 형국이다.

수입? 말이 좋다. 원가절감에 특효를 냈던 적이 있었는가. 전략이라는 말이 민망하지 않았었던 적이 있었는가 되돌아보자.

당장은 가격 정책이 시장을 컨트롤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과징금 사례에서 보듯이 8년간(2010~2018년)의 고생은 과징금 폭탄으로 돌아왔다.

회사의 무리한 목표,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고위급 임원, 이에 성실한 복종으로 임하는 몇 몇 구성원들이 해묵은 메뉴얼대로, 기계적으로 대응한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야한다.

고철 선수들은 안다. 준만큼 되돌려받는다는 것을. 상승추세를 역행해서 인하를 무리하게 하면 폭등으로 돌아온다. 당장 작년 올해 초가 그랬다. 반대로 하락추세에서는 알아서 물량이 들어온다. 인하의 강도가 무리하게 선을 넘으면, 그때부터 부작용이 시작된다.

제강업계는 서로간의 교감이 아니라 시장과 교감해야한다. 납품상, 즉 구좌업체는 제강사가 시장을 감지할 수 있는 신경조직이다. 치열한 구매 경쟁에서 제강사를 대신해 전략을 실행할 야전부대다. 제강사는 구좌업체의 성장을 전폭 지원하면서 독자적인 구매 전략을 짜야한다.

이번에 다섯차례를 내려서 10%의 원가절감에 기여했다면, 다음 단계는 안봐도 뻔하다. 수십년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제강사나 고철이나 한곳도 만족하지 못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제강사는 시장을 컨트롤해야한다는 사명감(?) 내지는 선민의식이나 갑의 위치에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강사 전략은 제강사의 간판을 달겠다고 자처한 협력사들과의 신뢰와 교감에서부터 시작돼야한다. 이는 소송을 통해 과징금을 줄이거나 ‘백지화’를 얻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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