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韓 철강역사상 2번째 해외훈장-'업'의 본질추구 100년대계②
[인물] 韓 철강역사상 2번째 해외훈장-'업'의 본질추구 100년대계②
  • 김종혁
  • 승인 2019.07.09 0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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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의 객원 칼럼니스트인 박기현 교수(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겸임교수)는 동국제강 60년 사사를 집필하면서 장세주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깊이 관찰한 인물이다. 장세주 회장이 이번에 브라질 상원의회로부터 훈장을 수훈한 계기로 과연 장세주 회장은 어떤 경영철학을 가졌는지 박기현 교수의 시각으로 알아본다.

장경호 창업자의 개척정신과 2대회장 장상태 회장의 도전적 행보를 본격적으로 가시화 한 것은 장세주 회장때 부터이다.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그는 회사의 인프라를 첨단화 고도화 하는 한편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구축하며 동국제강의 미래를 설계해 나갔다.

동국제강 제2창업의 주역

장세주 회장은 1978년 입사해 1999년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 2001년부터 회장을 맡았다. 장상태 선대회장과 장세주 회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리더십의 형태이다. 장상태 회장이 언제나 맨 앞에서 그룹을 이끌었다면 장세주 회장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기도 하는 유연한 리더십을 구사한다. 그는 쉼없이 움직인다. 본사에서 포항으로, 당진에서 다시 브라질로 달려가 있다.

장상태 회장 시절부터 만들어 온 ‘강한 동국제강’의 신화는 장세주 회장 때에도 계속 됐다. 평사원으로 입사한 장세주 회장에게 초고속 승진은 없었다. 현장에서 철 냄새를 맡으며 다른 직원들과 함께 성장했다. 선친은 그가 현장의 기본기를 익혔다고 판단됐을 때 기획조정실장, 영업본부장, 인천제강소장 등을 거쳐 단계적으로 경영 노하우를 익히게 했다.

장세주 회장은 사장 취임 때 책임경영을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16년간 크게 세가지 성과를 냈다.

첫째는 장상태 회장의 평생의 꿈이었던 일관제철소를 브라질에 지었고, 둘째로는 충남 당진에 명품 후판공장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을지로의 랜드마크가 된 페럼타워를 세웠다.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그는 역동적인 경영스타일을 보여왔다. 글로벌 경영, 디지털경영으로 대표되는 제2창업을 주도했다. 2000년도부터 불황의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장회장은 시설합리화에 치중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1년에는 매출 1조7,000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매출 2조원을 기록했을 때에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여 언론으로부터 3세경영의 성공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는 부친과 조부가 이끌었던 용호동시대와 포항시대를 당진 브라질로 확장했다. 고부가가치 사업의 확장, 새로운 인사시스템의 도입, 슬림화, 소통의 혁신, 끊임없는 개혁 등을 벌여 온 장 회장의 추진력이 바탕이 됐다.

장 회장은 전기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안정적인 원료 확보와 선진기술의 축적을 강조했다. 해외사업을 강화하면서 일본 JFE스틸과 포괄적협력협정을 맺음으로써 든든한 원군을 얻었다.

또 호주, 브라질과도 안정적인 원료확보에 성공했다. 대 중국시장에 대한 마케팅 역량도 강화했다.

업의 본질을 중요시한다

그의 경영 철학 밑바탕에는 업을 중요시하는 본질 추구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고품질 후판 생산기지인 당진공장 건설을 밀어부친 것도 철강업의 근본을 중요시 여기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장세주 회장은 회사의 가치 증진을 위해서라면 모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히 투자에 나섰다. 브라질 CSP제철소 건설 사업은 그의 도전 정신을 잘 보여준다. 백년대계의 동국제강을 위해 브라질 사업은 꼭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 먼거리에서?” “땅도 물도 사람도 다른 나라에서 가능할까?” “브라질 국민성이 우리랑 다른데?”

갖가지 우려도 나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경기가 어려워 질수록 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장회장은 2013년 상반기 사업장 현황을 보고 받은 후, 삼성전자가 하이닉스의 모바일 D램을 대량구매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여, 적과의 동침도 불사할 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임직원들에게 주지시켰다.

100년 기업을 위한 거시적 혜안

브라질 제철소 건설은 그의 집념을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다.

2005년 브라질 쎄아라 주에 제철소 건설 사업을 발표하고, 2007년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난관에 부딪치며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몸소 현장을 누비며 브라질 발레와 주 정부, 연방 정부에 제철소 건설의지를 각인시켰다. 마침내 CSP는 건설에 돌입, 2016년 화입식을 가졌다. 안타깝게도 그는 화입식에 동생인 장세욱 부회장 혼자 보내야 했다.

그가 브라질 제철소 착공식에서 “10년 걸렸다. 집념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철강업은 나의 운명이며, 철강에 대한 열정이 브라질까지 오게 한 원천”이라고 말했었다.

굴하지 않는 것, 거슬러 올라서며 물러서지 않는 것, 암흑속에서도 한 줄기 광명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장세주 경영 스타일이다.

그러고 보면 장경호 , 장상태, 장세주는 결국 동일한 경영 DNA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포기할 줄 모르고, 철강업의 본류를 찾아 돌아가는, 연어의 회귀 본능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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