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만난다.”-칼 융
“침묵은 경멸의 가장 고상한 표현이다.”- 니체
똑똑한 사람은 알맞게 옳은 말을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때맞춰 침묵할 줄 안다. 말하지 않는다고 약한 것이 아니라 침묵은 때때로 가장 강력한 대답이다. 침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결국,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며 떠드는 사람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즉 침묵은 대화에서 훌륭한 병기가 된다.
서울의 한 IT 기업에서 15년째 근무 중인 차 과장은 회의 시간마다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스타일이었다. “조용히 있으면 존재감이 사라질 것 같아서요.” 그는 늘 의견을 냈고, 상사의 지시에 바로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책임의 화살은 늘 그에게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말이 많으면 오해도 많고, 그중엔 불필요한 말이 섞이기 마련이다.
그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옳은 말을 했는데도 상황을 악화시켰구나.” 이후 그는 바꿨다. 회의 때는 먼저 듣고, 상대의 논리가 완전히 펼쳐진 후에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평가가 달라졌다. “차 과장이 요즘은 참 신중해졌네.” 그의 침묵은 수동이 아니라, 집중의 신호가 되었다. 침묵은 단지 말을 줄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판단을 유보하고, 관찰을 늘리는 지혜의 시간이다. 말은 행동의 전초전이다. 침묵의 순간, 사람은 듣고, 정리하고, 비로소 본질을 본다. 말보다 무서운 비언어적 소통의 70%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표정, 몸짓, 눈빛, 그리고 시간의 간격이 바로 그 언어다.
한 일본 기업의 회의 문화가 흥미롭다. 발언이 끝난 뒤 반드시 ‘5초의 침묵’을 둔다. 이 침묵은 의견을 반박하거나 동의하기 전에 ‘숙성의 시간’을 갖자는 신호다. 그 결과, 회의가 감정적 충돌보다 깊은 이해로 이어진다.
MIT의 조직 행동 연구에 따르면, 회의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가장 많이 말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묵히 듣고 요약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침묵 속에서 흐름을 읽고, 필요한 시점에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즉, 침묵은 학습의 공간이자, 통찰의 배양지다.
침묵은 생각의 온도를 조절한다. 우리가 말할 때 대부분의 실수는 감정이 말을 대신할 때 일어난다. 격분한 순간, 회의 도중 상사에게 쏘아붙인 한마디는 그동안의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바로 이때 침묵은 그 감정의 온도를 식히는 냉각수 역할을 한다. 대화 도중에 누군가 공격적인 말을 했을 때, 즉각 반응하지 않고 3초간 침묵하면 상대의 공격성도 약화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디퓨징(emotional defusing)’이라고 한다. 즉, 침묵이 폭발 직전의 감정을 흡수해버린다. 침묵은 상황의 균형을 잡는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늘 적절한 시점에 침묵을 선택한다.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은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명언은 《구약성서》 잠언 17장 28절의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고 그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에서 유래된 것이다. 입술을 멋대로 열어두는 것은 보물이 가득 찬 금고를 열어두는 것보다 못하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보다 침묵하는 쪽이 차라리 그 관계를 해치지 않는다. 인간은 그가 말하는 것에 의해서보다는 침묵하는 것에 의해서 더욱 인간답게 느낀다.
아인슈타인의 유머 가운데 “A가 인생이라면 A=X+Y+Z다. X는 일, Y는 놀이, Z는 침묵이다.” 톨스토이는 “말을 제대로 못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 침묵을 지키지 못했던 것에는 백번이라도 후회를 해야 합니다.”
말하는 자가 씨를 뿌리면 침묵하는 자는 거둔다.
“사람이 잘 말할 수 있는 재능을 갖지 못하면 침묵을 지킬 줄 아는 지각이라도 있어야 한다. 만약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라 브뤼에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