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손톤 와일더의 소설『산 루이스의 레이의 다리』 중에서
오늘날 돈, 명예, 건강, 행복 모두 중요하지만 서로 간에 사랑과 화목이 으뜸이다. 그 어떤 인생도 실패라고 할 수 없다. 누구나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고귀한 존재로 각자의 별에서 빛이 난다. 삶이란 마음대로 상상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열정의 복합체다. 삶의 흐름은 한 치 앞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죽고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생즉필멸(生卽必滅)과 일치한다. 하지만 인간은 욕망에 젖어 물불 안 가리고 탐한다. 대상이 자신이든, 가족이든, 이웃 등 누구든 지금 사랑해야 하는 것을 잊고 산다. 장자에게 있어 죽음은 자연에서 받은 옷을 벗는 일로 자연의 흐름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 랠프 월도 에머슨은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다”라고 했다. 내게 이 순간이 있어 기뻐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의 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시대정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괴테는 불안감을 기대감으로 바꾸면 삶의 방향성이 달라진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세계의 본질이기에 의지를 극복하라고 주창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현실 속에서 개별적으로 실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성이나 진리의 보편성을 경계했다. 고 이어령 선생은 생전 고전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 “창조와 파괴는 동전의 양면이다. 창조하려면 먼저 파괴하라. 오래된 정원에서 새로운 생각이 꽃핀다.”
현실 도피 철학자 장자는 우화를 통해 권력, 부귀, 명예 등을 얻기 위해 애쓰는 욕망을 쓸모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세상의 가치를 위해 개인의 삶이 희생되는 것을 거부했다. 자유로운 삶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한다.
‘장자’ 잡편에 한 어부는 자신의 그림자가 계속 따라오는 것이 두렵고 떨려 벗어나려고 도망친다.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그림자가 따라오는 불안감에 절망한다. 그림자를 피하려고 도망가기보단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면 그림자가 없어졌을 것을 모른 것이다. 불안을 경험할 때 도망가는 것보다 도리어 불안에 들어가면 불안이 삶을 망가뜨리는 힘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우화의 교훈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삶이 아니라 자기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혼돈(混沌)은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장자에 혼돈의 미학 이야기가 있다. 남해의 임금은 숙이고 북해의 임금은 홀이고 중앙의 임금은 혼돈(渾沌)이다. 숙과 홀이 때로 혼돈의 땅에서 함께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하자 숙과 홀이 혼돈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이 혼돈만은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주자” 하고는 하루에 구멍 한 개씩을 뚫었더니 칠 일 만에 혼돈이 죽었다.
숙과 홀은 시간의 신으로 유위, 작위,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며 혼돈은 시간의 흐름에 적용받지 않는 원시의 도, 무위, 자연을 상징한다. 혼돈은 흑백이 나눠지지 않고, 선악과 피아가 구분되지 않으며, 시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혼돈에게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줬다는 것은 감각기관을 부여했다는 말이다.
『장자』에 등장하는 혼돈의 죽음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행복이란 고통이나 불편함이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느 정도의 고통과 혼돈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혼돈의 와중에도 기회가 있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드러난다.
순종보다 잡종이 훨씬 경쟁력 있다. 혼돈을 인정하고 변화하자. 혼돈(역경)은 위대함의 시작이며 변화의 촉매제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동트기 직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