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건네는 흔한 인사말 중 “밥 먹었어?”, “시간 될 때 같이 식사하시죠?”는 의식적인 멘트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상대의 건강과 삶의 안녕을 묻는 안부는 물론, 너의 생각을 지지한다는 격려이기도 하다. 너의 마음 안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고백이라면 너무 나간 건가?
2006년도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대화가 필요해’에서 유행했던 “밥 묵자”는 할 말이 없거나 이견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어려운 국면을 넘어가는 지혜로 알려졌다. 요즘 1인 문화에 접해있는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매일 먹는 식사 그것도 가족과 함께하는 밥 문화가 생경하고 불편한 진풍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름의 다른 말 ‘식구(食口)’의 뜻은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친해지고 싶을 때 같이 밥을 먹는 게 으뜸이다. 영업을 성사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조선 역사 발전에 해를 끼친 사건 중 하나가 붕당정치이다. 본래 붕당정치(朋黨政治)는 학문적 유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공존을 으뜸으로 하는 정치 운영 형태이다. 공론에 입각한 상호 비판과 견제이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투쟁으로 변질되어 국론 분열, 당쟁의 부작용이 생겼다.
붕당의 폐해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 국민을 좌우로 나눠 분열과 대립 갈등이 살벌하다. 거의 저주의 수준으로 친한 사람이 모여도 어느 쪽인지 눈치부터 살피는 중병에 걸려 있다. 정약용처럼 뛰어난 인물조차 모함하고 죄를 씌워서 희생시키는 국가의 큰 손실이다.
이런 파벌정치의 기원은 어이없게도 김효원과 심의겸이라는 두 인물 사이의 편견에서 시작된 악감정 때문이라는 것이 놀랍다. 1575년(선조 8년)으로 이조전랑(자천제, 이랑통청권)직 임명 문제로 인한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심의겸을 추종하는 기성 사림인 서인과 김효원을 영수로 하는 신진 사림인 동인의 오해와 아집에서 비롯되었다.
심의겸이 서울 서쪽에, 김효원이 동쪽에 살았기에 동인서인 이름이 붙었다. 김효원은 벼슬에 오르기 전부터 청렴하고 학문이 뛰어난 선비였다. 그런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당시 최고 권력가이던 윤원형의 집에 종종 들락날락했다. 어느 날 그 집에 들렀던 심의겸이 김효원과 마주쳤다. 김효원은 심의겸에게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인사를 건냈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청렴하다고 소문나신 선비를 이 집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휙 돌아서서 가버린 것이다.
사실 윤원형은 명종의 어머니였던 문정왕후의 동생으로 권력을 남용했던 인물이었다. 후일 김효원이 과거 급제해서 이조전랑이라는 요직에 추천받았을 때 심의겸은 극구 반대했다. 김효원이 임기를 마치고 후임자를 정할 때 공교롭게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추천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김효원이 강하게 반대한다. 이런 일로 인해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의 입장을 지지하던 사람들까지 덩달아 두파로 나눠져 동인과 서인이 되었다.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만일 심의겸이 김효원에게 보인 편견 대신에 함께 식사를 했더라면, 훗날 붕당정치의 폐해가 시작되지 않았을 텐테? 아쉬운 마음뿐. 물론 편견이 인류의 생존에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나면 당장 공격하지 않아도 무서운 동물이라는 편견이 있기에 재빨리 도망쳐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소통의 중요성을 알린 역사적 사례는 영조가 마흔이 넘어서 겨우 얻은 늦둥이 사도세자를 뒤주 안에 죽인 비극적이고 파멸적인 사건이다. 영조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세자가 3살이 되자 직접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날로 커지는 영조의 기대에 부담을 느낀 사도세자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 지나친 기대와 꾸지람에 반항과 무서워서 병을 핑계로 몇 달간 얼굴조차 보러 가지 않았다. 대화가 단절된 의심과 미움이 교체되는 시기에, 나경원이란 자가 영조에게 세자가 정신병으로 궁녀를 죽이고, 세자가 역모를 꾸몄다는 말까지 하자 영조는 화가 폭발하여 스스로 죽도록 명령을 내린 임오화변이 저질러졌다. 부자가 식구처럼 밥을 먹었다면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우화가 있다. 사자와 소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 소는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를 사냥해서 주었다. 소도 사자를 너무 사랑하여 좋은 풀을 매일 뜯어다 사자에게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정작 둘은 괴로움에 봉착하여 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일방적 생각이 오히려 상대방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한 후 베드로를 찾아왔다. 자신이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기에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때 예수의 첫말은 “베드로야, 밥 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