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해외 뇌물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해외 뇌물
  • 장대현
  • 승인 2019.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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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장대현 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H사가 인도네시아에서 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현지 군수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H사는 2019년 국내 건설사 도급순위 2위에 랭크된 업체다. 현지 수사당국은 우리 검찰에 공조수사도 요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지 군수는 뇌물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H사로부터 여러 차례 5억5천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H사는 “현지 군수가 민원을 해결하겠다고 비용을 요구해 전달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건넨 돈이 현지 군수의 개인계좌를 통해 들어가고, 관청이 아닌 개인 저택에서 전달된 점 등은 회사의 해명을 궁색하게 만든다.

현지 시민단체들이 한국 국제뇌물방지법과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으로 각국에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질 분위기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국내 K사를 상대로 속칭 ‘상품권 깡(할인 판매)’과 관련하여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K사는 국내 유무선 통신 서비스 매출액 1위의 선두업체다.

표면적으로는 K사가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어 미국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다. K사는 상품권 깡을 통해 비자금을 만든 뒤 이 중 일부를 국회의원 등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보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치후원금은 합법적인 활동에 속하지만, 뇌물을 위한 속임수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정치자금법상 기업이 정치인을 후원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개인이 정치후원금을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정치후원금센터를 이용하면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미국 SEC가 국내 기업을 상대로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아직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적용받은 사례가 없다. K사는 국내 한 대형로펌과 SEC의 요구에 대응 중이다. K사는 “상품권 구매는 국내 기업들의 관행(慣行)”이라고 해명했다. K사의 해명도 왠지 궁색해 보인다. 기업에서 접대비 등의 명목으로 상품권을 구매하지만, ‘깡’까지 하며 현금화하지는 않는다.

SEC 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모른다. 만약 조사에서 부당행위가 밝혀진다면 K사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적용받을 수 있다. 두 사례에서 보듯이 이젠 한 번의 뇌물 스캔들로 여러 국가의 부패방지법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

국내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국내 기업이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처벌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작년에는 말레이시아 공기업 임원들에게 7억 원대 뇌물을 건넨 국내 사업가 최 모 씨가 구속되었다. 최 씨는 말레이시아 공기업 부사장에게 여러 차례 6억 3,000만 원 현금과 2,400만 원짜리 롤렉스 시계를 건넸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평택 주한미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수십억 원대 뇌물을 미군 측에 전달한 S사 이 모 전무가 구속됐다. 검찰은 국내 대형 건설사인 S사가 미 육군 공병단 계약 담당자에게 약 32억 원의 뇌물을 건넨 정황을 포착해 S사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이 모 전무를 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S 사는 미 육군 공병단이 발주한 공사를 4,600억 원에 수주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렴 국가들도 1950~1960년대까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뇌물이 만연했다. 21세기 들어 세계는 20세기보다는 획기적으로 깨끗해졌다. 여기에는 미국이 제정한 FCPA와 OECD 뇌물방지협약 같은 뇌물에 대한 국제공조가 큰 역할을 했다.

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OECD 뇌물방지협약에 서명하고, 협약 이행을 위해 이듬해 12월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국제뇌물방지법)’을 제정했다. 작년 말 OECD 뇌물작업방지반은 한국을 방문했다.

OECD 뇌물방지협약 이행에 대한 4단계 평가를 하기 위해서다. OECD는 평가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신속히 법안을 개정하여 해외뇌물 범죄를 저지른 법인에 부과할 수 있는 제재 수준을 높일 것”을 권고했다.

세계 경제 글로벌화가 시작되면서 뇌물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뇌물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법권 내에서 개인이 뇌물수수(bribery)에 가담하는 것은 범죄다. 뇌물에 대한 책임도 개인뿐 아니라 조직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우리 현행 형법상 뇌물죄에는 양벌규정이 없다. 아직 기업은 뇌물공여로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제뇌물방지법에는 양벌규정이 있다. 뇌물을 제공한 임직원과 별도로 기업에 대해서도 처벌한다. 10억 원 이하 벌금 또는 뇌물제공으로 얻은 이익의 2배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제뇌물방지법에는 단서조항에 기업의 면책을 규정하고 있다. 기업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한 경우에는 기업의 형사책임을 면제한다. 기업은 면책을 받기 위해 적절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갖추고, 반부패 교육을 하는 등 평소 뇌물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무심코 뇌물을 건넸다가는 탈탈 털리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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