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人의 향기] “철(鐵)다리를 만듭시다”
[鐵人의 향기] “철(鐵)다리를 만듭시다”
  • 김종대 페로타임즈 대표
  • 승인 2019.09.1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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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삶의 의미를 뒤집어 보게 하고, 꿈과 현실 등 거창한 것들을 떠올린다. <다리>의 작가 하트크레인은 무엇에 홀렸는지 33세의 젊은 나이에 다리 위에서 카리브해로 투신자살 했다.

다리 중에서 철강인이 알아둬야 할 다리가 있다. 세계 최초의 철로 만든 다리, ‘아이언 브리지’이다. ‘아이언 브리지’에는 연간 6만 명의 학생들과 6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 다리는 1779년 영국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의 세번강(River Severn)에 세워졌다. 주철이 주재료이며, 총 길이 42.7m(철제 부분 30.6m)에 불과한 아치형 브리지이다.

설계는 ‘프리처드’가 했다. 모든 철강재는 ‘다비’ 3세의 철공소에서 제공했다. 시공은 철의 명장 ‘존 윌킨슨’(영국 스태퍼드셔)이 맡았다. ‘아이언 브리지’를 건설하자는 구상은 1773년 ‘프리처드’가 ‘존 윌킨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등장한다.

“다비 1세가 코크스 용선법을 개발(1709년)했으니 그곳에서 생산되는 주철로 철교를 건설하자”는 요지였다. 다비 1세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그는 ‘콜브룩데일제철소’에서 철광석을 코크스로 용련(鎔鍊)하는데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비’ 1세부터 추진 됐던 철교 건설은 실패했다. 다비 2세 역시 선철제조를 가능케 했지만 아이언브리지는 완성되지 못하고 3세로 넘어갔다.

다비 3세
다비 3세

다비 3세(사진)는 철교를 세우는데 필요한 재원과 철골구조물의 자재 공급을 맡아 3000파운드라는 당대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지만 그것도 역부족이었다.

목재와 석재로만 가능했던 다리를 금값보다 비싼 철로 만든다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 넣자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다비 3세는 멈추지 않았다.

위기는 한꺼번에 온다더니 착공 두 달 만에 설계를 맡았던 ‘프리처드’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언브리지의 건설계획은 대폭 수정됐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이후에 끝을 보게 된다. 착공 2년(1777년 11월~1779년 5월)만에 완성된 아이언브리지에 쓰인 철강재는 378톤이었다. 그런데 관전평은 “최악의 철강재로 만든 다리”라는 혹평이었다. 주철로 만들었기 때문에 외양이나 설계 자체가 조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 브리지의 탄생에서 읽을 수 있는 철인의 향기는 바로 프런티어 정신이다. ‘다비’家의 헌신적인 지원과 뚝심, 그리고 대를 이어 완성품을 기어코 만들어낸 의지는 영국이 자랑하는 철강문화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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