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人의 향기] “가서 직접 확인해라”-美고철 첫 하역한 ‘사토’
[鐵人의 향기] “가서 직접 확인해라”-美고철 첫 하역한 ‘사토’
  • 김종대
  • 승인 2019.08.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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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의 가장 큰 고철 수출국은 미국이었다. 당시 국내 전기로 메이커들은 전후 복구 사업이 한창인지라 고철이 태부족이었다. 고철을 구하지 못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많았다. 동국제강과 인천제철, 극동철강(현YK스틸) 등은 못과 철선 그리고 철근을 생산했다.

미국 고철을 처음으로 한국에 수출한 사토<사진=김종대>

미국 하주(荷主, Shipper)들은 주로 일본(카르텔)과 유럽에 판매하고 있었다. 한국은 아예 고철을 공급 국가에서 제외됐었다. 이런 한국에 미국 고철을 처음 하역시킨 이는 일본인 사토(사진)씨이다. 그는 슈니처 일본연락사무소 책임자였다. 사토씨는 일본 미쓰비시 출신이었다. 그는 슈니처 회사의 철스크랩을 일본 선박에 싣고 와서 부산 부두에 1차 하역을 했다.

그러나 사토씨는 하역을 하면서도 과연 한국에서 고철을 팔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한국의 철강 산업을 한 수 아래로 깔보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로가 있겠나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국제강을 비롯한 몇몇 기업이 전기로를 가동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사토씨와 동국제강의 첫 거래는 선적, 하역, 지불 등 문제없이 마쳤다. 두 번째 거래에서는 선금을 받을 수 없었다. 신용장도 없이 거래할 수는 없었다. 슈니처측에서도 지시를 내렸다. 미국고철을 싣고 온 배를 보세 창고에 보관하고, 선금을 받기 전에는 물건을 넘기지 말라고 했다. 사토씨는 당시 동국제강 장상태 사장에게 LC를 개설하든지 대금 일부라도 송금하라는 양자택일을 통보했다. 그리고 동국제강 오너 사장과 불 튀기는 대화가 오고갔다.

“이보시오. 사토상! 지금 뭐 하는 거요?”<장사장>

“무슨 말씀인지?“<사토>

“저기, 저 트럭들이 안보여요? 저 차들이 우리 공장에서 철근을 받아가려고 줄을 서 있는 게 안보이냐 말입니다. 당신이 몰고 온 배에서 고철을 내리지 않고 돌아간다면 어쩌란 말입니까?”<장사장>

“저 차들이 당신네 제품을 실어간다고요?”<사토>

“그렇다니까요. 저 사람들이 제품을 실으면 바로 제품 값을 줄 것이고, 우린 그걸로 당신에게 고철값을 줄 것인데 돌아간다면 어쩌란 말입니까”<장사장>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사토씨는 한국과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고철을 하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매일 필요한 만큼의 고철 물량을 주고, 연리 30%(당시 금리 35~40%. 미국 금리는 6%)의 금리로 미국에서 선적일로부터 실제의 달러 지불 일까지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국내 최초의 미국산 고철 수입은 이렇게 신용장도 없이 이뤄졌다. 이후로 미국 슈니처는 동국제강과 근 60년 가까이 동반상생을 추구하고 있다. 회사 창립 100주년이 되던 해에 동국제강의 오너들은 슈니처에 직접 방문하여 축하했다. 고철 공급자와 구매자는 철스크랩 이외의 사업분야에서도 서로 격이 없이 토론한다. 정보도 교환하고 마땅한 의견도 제시한다.

철인들이 계약서도 쓰지 않고 거래했던 믿음은 이렇게 훌륭한 미래를 만들었다. 다만, 생산 현장을 직접 관찰하고 비즈니스 파트너로 진정성이 있는 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만약 사토씨와 같은 담당자가 동국제강이라는 철강기업의 생산현장까지 ‘Go and See’하지 않았다면 고철 수출은 어려웠을 것이다.  “가서 직접 봐라” 철인의 향기가 던지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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