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준법경영
방치된 준법경영
  • 장대현 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 승인 2019.08.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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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상법 회사 편 개정안이 2011년 국회를 통과하여, 2012년 4월 15일부터 시행됐다. 2011년 개정회사법은 건국 이래 최대규모로 개정이 이뤄졌다. 약 250개 조문이 개정됐다.

개정 취지는 국제 기준에 맞게 회사 제도를 선진화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개정회사법 주요 내용 중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하여 새로 도입된 제도가 ‘준법지원인제도’이다.

준법지원인제도가 도입된 지는 벌써 7년이 지났다. 하지만 의무선임 대상 회사 중 준법지원인을 선임하지 않은 회사가 여전히 많다.

2018년 4월 분석에 따르면 의무선임 대상 회사(자산총액 5,000억 이상 상장회사) 341개사의 41.3%인 141개사가 준법지원인을 선임하지 않았다. 대상 회사 10곳 중 4곳이 준법지원인 없이 경영하는 셈이다.

명백한 상법 위반이다. 하지만 법 위반에 따른 처벌 규정이 없다 보니 기업 실무에서 준법지원인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시된 반기보고서를 살펴보면 S그룹의 경우 준법지원인을 선임해야 할 계열사들이 많음에도 여전히 준법지원인을 두지 않고 있다. 이미 법무실이나 CSR 관련 조직이 있어 별도의 준법지원인은 필요없다는 것이 이유다.

2011년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일부 기업들은 준법지원인을 두는 것이 부담된다며 반대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의무선임 대상 회사 중에서 여전히 선임하지 않고 있는 회사들이 제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과도한 비용 부담’이다.

하지만 2014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설문조사에서 당시 준법지원인을 두고 있던 108개사가 준법지원인 선임과 관련하여 지출한 총비용을 살펴보면 42.7%가 1,000만 원 이하였다. 1억 원을 초과한 경우는 30.3%에 불과했다. 상당수 회사에서는 사내 변호사나 관련 업무 직원 중에서 준법지원인을 선임하여 사실상 비용지출이 많지 않았다. 준법지원인 선임에 지출한 총비용을 1년 매출액에 비교하면 대부분 회사에서 불과 0.1% 미만이었다.

결국 ‘과도한 비용 부담’이라는 이유는 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변명처럼 여겨진다. 지난 6년간 준법지원인을 지낸 필자의 경험으로도 준법지원인을 선임한다고 해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준법 통제를 소홀히 하여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지급해야 할 막대한 법률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비용이다.

미국에서는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사의 뇌물 사건을 계기로 1977년 해외부패방지법(FCPA)이 제정됐다. 이 법은 기업들이 준법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을 도입하여 운영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준법지원인 선임을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준법 프로그램을 잘 갖춘 회사에 대해서는 형사적 제재를 감경해 주고 있다. 미국의 선진기업 중에서 우리나라 준법지원인에 해당하는 Compliance officer를 두고 있지 않은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1991년 제정된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Federal Sentencing Guideline)은 위법행위를 한 기업에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면서도 회사가 실행하고 있는 준법프로그램을 벌금액의 감경 사유로 고려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DOJ)와 증권거래위원회(SEC) 같은 집행기관들은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을 동시에 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준법지원인을 선임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기업들을 유인할 만한 제대로 된 당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최근 기업경영환경을 보면 위법경영에 대한 국내외적 제재가 크게 강화되고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준법경영이 필수적인 과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기업 총수의 횡령배임사건과 임직원 채용 비리 등 각종 경영비리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중대한 위법행위를 하여 회사나 그 임직원이 행정제재나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제 7년 전처럼 준법지원인제도를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비판할 때는 아닌 것 같다. 기업이 변호사를 준법지원인으로 신규 채용한다고 해도 최근 청년변호사들의 연봉 수준을 고려하면 절대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반드시 변호사만 선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법률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실무가도 준법지원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준법지원인제도는 많은 장점이 있다. 내부 위험을 관리하고, 법률비용을 경감시키며, 기업 이미지를 높인다. 심지어 매출액도 증가시킨다. 2018년 한국을 방문한 드라고 코스 OECD 뇌물방지 워킹그룹 의장은 “세계적으로 가장 윤리적인 기업들의 이익이 S&P 500 기업들보다 2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윤리〮준법경영에 대한 투자가 헛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준법경영이 기업에 실질적인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입증되었다. 우리는 준법경영을 방치했다가 큰 대가를 치른 기업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준법지원인제도를 잘 활용하면 기업에 득(得)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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