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승강기 원조는 화성 거중기, 정약용이 기중가도설 완성시켜
우물 길어 올리던 도르래 발전...사람과 화물을 수직으로 운반
티센 수평 이동하는 장치 개발, ‘리니어 모터’로 승강기 작동
세계 대도시는 고층 건물의 경연장이다. 디자인도 다양하고, 건물 소재도 가지가지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초고층 빌딩을 가능하게한 기술은 무엇일까? 건축가들은 두 가지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강철과 철근 콘크리트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엘리베이터이다. 도시 사람들은 자동차보다 엘리베이터를 더 많이 이용한다. 적어도 하루에 10억 명 이상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72시간마다 전 세계 인구를 실어 나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19세기에 등장한 엘리베이터는 누가 봐도 철의 산물이다. 온통 철강소재 로 만들어지는 엘리베이터가 탄생하 기까지의 역사를 뒤져본다. <편집자 주>
거중기로 화성성벽 쌓다
국내 승강기 원조는 도르래와 유사한 거중기이다. 조선시대 수원 화성을 지을 때 다산 정약용이 발명한 장치이다. 40근의 힘을 가하면 2만5000근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부친 상중에 정조대왕의 분부를 받았다. “수원 화성을 쌓는 규제(規制)를 지어 올리라”는 하명이었다. 다산은 중국 윤경의 ‘보약’(堡約)과 서애 유성용의 ‘성설’(城設)을 토대로 규제를 만들어 올렸다. 정조는 재차 분부를 내렸다. “궁중에 보관하고 있던 중국책 ‘도서집성’과 ‘기기도설’을 내려 보내니, 무거운 물건을 이끄는 방법과 위로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라”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것이 ‘기중가도설’(起重架圖設)이다. 정약용은 노동자들에게 성과급제를 적용해 최대한 공기를 단축시켜 2년 10개월 뒤인 1796년에 성벽을 완성한다. ‘화성성역의 궤’에는 방대한 공사 보고서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지금도 남아있다.
엘리베이터는 고대부터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기원은 B.C. 236년경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개발한 도르래로 알려져 있다. 도르래는 애초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데 사용되다가 점차 사람이나 화물을 수직으로 운반하는 엘리베이터로 발전했다. 그러나 증기 엘리베이터는 줄이 끊어지면 추락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이 난제를 해결한 것이 미국 버몬트 출신의 엘리샤 오티스(1811~1861)이다.
세계박람회에서 추락방지 시연
오티스는 1854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직접 시연을 했다. 박람회장 한가운데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자신이 직접 엘리베이터를 탄 뒤 관람객들 앞에서 줄을 끊어도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지 않고 그대로 정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람객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이 한 번의 시연으로 오티스의 엘리베이터는 단박에 유명세를 탔다. 오티스는 1857년 뉴욕 브로드웨이의 도자기상점인 ‘하우워트’ 5층 건물에 세계 최초의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세계 최대의 엘리베이터 전문업체 오티스의 기업 히스토리 프롤로그이다.
1931년 뉴욕 맨해튼에 102층짜리 초대형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 기술도 67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고층의 엘리베이터는 뉴욕 인구가 1천만이 넘는 초거대 도시로 만든 단초를 제공했다.
철강재가 고층 건물의 건축을 가능케 했다면 엘리베이터는 고층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펜트하우스의 환상을 갖게 해준 혁신적이 발명품이다. 세계 초고층 빌딩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에는 57개의 엘리베이터가 초속 10미터로 운행되고 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타이틀을 보유했던 쿠알라 룸푸르소재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복잡하게 설계된 ‘오티스’ 엘리베이터에 의해 기능한다. 그 중 다수가 홀수와 짝수층에 동시에 정차하는 2층 높이의 ‘더블 데커방식' 엘리베이터이다.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의 탄생
런던 최초의 엘리베이터(1864년)를 갖춘 ‘그로브너’(Grosvenor)호텔이 등장한 이후로 최고층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이 등장했다. 조망이 좋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엘리베이터 기술은 점점 발달하여 1880년에는 베르너 존 지멘스가 개발한 최초의 전기 엘리베이터를 탄생시켰다. 기어 박스에 부착된 도르래(Driver Sheave)에 강철 로프를 걸쳐서 구동되는 전기 모터 형식의 엘리베이터는 분당 150미터까지 작동 시킬 수 있다. 철강기술의 발전이 엘리베이터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심지어 기어가 없는 견인식 엘리베이터가 나오면서 엘리베이터의 분당 속도는 600미터에 달할 정도로 민첩해졌다.
이후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상하이은행에서는 엘리베이터로 도착한 다음 에스컬레이터로 내부 이동을 돕는 2층 높이의 수직마을(Vertical Village) 개념이 적용되었다. 안팎에서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의 익명성을 극복하려는 색다른 시도까지 이루어졌다. 승객 칸을 엘리베이터 수직 통로에서 빼내 유리로 만드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베스닌’ 형제(VersninBrothers)가 1924년 프라우다 타워 계획 안에서 처음으로 제안됐다. 최초의 유리 엘리베이터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아고에 있는 ‘엘 코르테즈 호텔’ 내부에 설치되었다. 건물의 붕괴를 우려한 조치였다. 이후 건물 외벽을 오르내리는 유리 엘리베이터가 나오고 백화점과 같은 건물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런던 로이드 빌딩의 유리엘리베이터는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1967년 존 포드만이 설계한 ‘애틀란타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는 회전식 옥상 레스토랑까지 올라가는 유리 캡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새로운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인구 100명당 1대
한국의 승강기 역사는 100년을 넘었다. 국내 최초의 승강기는 1910년 조선은행(현 화폐금융박물관)에 설치된 화폐 운반용 엘리베이터이다.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1914년 철도호텔(현 웨스턴 조선호텔)에서 처음으로 운행됐다. 1937년에는 화신백화점에 국내 첫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됐고 1945년에는 서울 승강기공업사(현 한국승강기주식회사)란 국내 첫 승강기회사도 설립됐다.
1984년 당시 국내 최고층이었던 63빌 딩에는 국내 최초로 분속 540m의 초고속 승강기가 설치되기도 했다. 승강기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계기는 1987년에 발표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승강기업계는 성장기를 맞았다.
국내 승강기는 1995년 10만대, 2008년 40만대를 돌파했다. 2014년 2월 25일 고양시 명지병원에는 국내 50만번 째 승강기가 설치됐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승강기는 현재 50~60만 여대를 넘나든다. 인구 100명당 1대꼴이며, 승강기 보유대수로는 세계 8위다. 연간 새 승강기 설치 증가폭은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에 이어 3위다.
엘리베이터의 가장 중요한 장치는 안전이다. 3만여 개 부품이 한 치의 오차도 없 이 작동해야 안전할 수 있다. 그만큼 엘리베이터의 안전장치 기술개발은 기업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된다. 현재 세계의 도시화율은 약 50%, 2050년이면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고 한다. ‘갈수록 도시로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엘리베이터 업계의 관심사이다.
유럽 최대 철강그룹 독일의 티센크루프(ThyssenKrupp)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의 엘리베이터로 건물의 효율성을 크게 높인다는 대안을 내놨다. 멀티(MULTI)라는 이름이 붙은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에는 로프가 없다. 자기부상 열차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리니어 모터'로 승강기를 움직인다. 로프의 굴레에서 벗어난 승강기는 상하 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하므로 건물 내 이동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인다. 엘리베이터의 활동공간이 2차원으로 격상 된 셈이다.
승강기에서 보내는 시간 6년
“매년 뉴욕시 직장인들이 엘리베이터 탑승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합치면 무려 16.6년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합치면 5.9년이나 된다. 이 수치는 도시에서 엘리베이터의 효율성 제고가 얼마나 시급한지를 잘 보여준다.” 티센크루프의 PR문구이다. 티센크루프는 좌우로도 이동이 가능한 엘리베이터를 높이가 300미터 이상인 빌딩에 적용할 것을 권한다. 티센크루프가 2016년 독일 로트바일의 240m 높이 빌딩에 좌우로 이동 가능한 멀티 시스템을 처음 적용했다고 한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등장하는 윌리 웡카의 엘리베이터는 로프 없이 설탕을 동력으로 삼아 초콜릿 공장과 하늘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닌다. 독일의 모 언론 매체는 멀티 시스템을 적용한 엘리베이터를 ‘찰리와 초코렛 공장’과 닮았다고 평했다. 이 멀티 시스템은 어쩌면 오티스의 발명을 넘는 획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멀티' 엘리베이터 시스템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건물 디자인에 대한 도전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한 통로에 한 대만 움직이는 기존의 수직 엘리베이터가 주는 공간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전제는 건축가들에게 공간 활용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새 엘리 베이터 시스템이 어떤 건축 미학을 선보일까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