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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부터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시행됐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은 원청이라도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그 범위에서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근로계약의 형식보다 실제 현장에서 누가 근로조건을 결정하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사내하도급과 협력업체 활용 비중이 높은 철강업계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철강산업은 원료 투입, 제선, 제강, 압연, 운송, 설비정비 등 여러 공정이 연속적으로 연결돼 있고, 하나의 공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체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원청이 생산계획과 조업시간, 설비 가동, 작업순서, 작업장 출입, 안전수칙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형식상 협력업체가 근로자를 채용하고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실제 작업시간이나 작업환경을 원청이 좌우한다면, 해당 사항에 대해서는 원청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원청이 협력업체의 작업물량과 납기를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근무시간, 작업인원, 작업방식까지 사실상 결정하고 있다면 사용자성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만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모든 근로조건에 대해 일률적으로 사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정법은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할 수 있는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 임금 수준과 승진은 협력업체가 정하지만, 교대조 편성이나 휴게시간, 안전장비, 작업환경은 원청의 생산계획과 기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원청의 사용자성은 임금 전반이 아니라 근로시간이나 산업안전 등 특정 교섭 의제에 한정해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회사 전체를 기준으로 원청이 사용자인지 아닌지를 단순하게 판단하기보다,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교섭사항별로 원청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살펴봐야 한다. 동일한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도 산업안전 문제에서는 원청이 교섭 상대방이 될 수 있지만, 임금 인상이나 승진 문제에서는 협력업체가 교섭 상대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가장 위험한 대응은 하청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를 접수하자마자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교섭 요구사항 가운데 원청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위원회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경우 교섭 거부에 따른 시정명령이나 형사책임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초기 대응부터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청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원청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청이 결정할 권한이 없는 임금이나 인사 문제는 협력업체가 교섭할 사항임을 명확히 하고, 안전, 작업환경, 공정운영 등 원청의 결정권이 미치는 사항은 교섭 가능성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핵심은 교섭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사항별 권한과 책임을 구분하는 데 있다.
철강기업은 우선 협력업체와의 도급 운영 실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원청 관리자가 하청 근로자의 출퇴근과 휴가를 직접 승인하고 있는지, 작업방법과 인원배치를 구체적으로 지시하는지,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누가 결정하는지, 안전조치와 설비 개선에 관한 최종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원청의 지시가 불가피한 안전관리와 생산조정인지, 아니면 협력업체의 인사노무관리 영역까지 넘어선 것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도급계약서의 문구만 수정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계약서에는 협력업체가 독립적으로 인력을 운영한다고 적혀 있으면서 실제로는 원청 관리자가 근태, 휴가, 평가, 배치까지 직접 통제한다면 계약서 내용보다 현장 운영 실태가 더 중요한 요소로 판단될 수 있다. 작업지시는 원청과 협력업체 사이의 공식적인 업무연락 체계를 통해 전달하고, 협력업체 관리자가 소속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도록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노란봉투법 시행을 단순히 원청의 부담 증가로만 볼 필요는 없다. 원청과 하청 노동조합 사이에 대화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면 산업안전, 휴게시간, 공정운영과 같이 기존의 도급구조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사전에 조정할 수도 있다.
특히 고온, 중량물, 유해물질, 대형 설비가 상존하는 철강현장에서는 원청과 협력업체 근로자 간에 안전기준이 분리될 수 없다. 현장의 위험요인을 교섭과 협의를 통해 조기에 파악하고 개선한다면 노사갈등뿐 아니라 산업재해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제 철강기업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거리두기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 원청은 산업안전과 생산관리 책임을 유지하되 협력업체의 인사노무관리 영역을 존중해야 하고, 협력업체도 명목상 사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소속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철강기업의 경쟁력은 생산설비와 원가관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복잡한 원하청 구조 속에서 노동관계를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안정적인 대화 구조로 연결하느냐도 중요한 경영 역량이 될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원하청 관계의 경계를 없애는 법이라기보다, 실제로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화의 책임을 요구하는 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최재도 공인노무사 약력 ]
공인노무사, 공학박사(안전), 건설안전기사, 공인행정사
노사발전재단 컨설턴트, 갈등관리사 1급
동작여성인력개발센터 노동법 강사, 서울시설공단 외부 인사위원, 서울경제진흥원 외부 인사위원
산업안전체계구축 컨설팅 수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