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가난과의 싸움이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도록 하는 것이다.” - 에스테르 뒤플로(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교수, 노벨경제학상)
기업을 운영하거나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가장 먼저 찾는다. 금리와 물가, 성장률과 환율, 재정과 투자 등 경제학(經濟學, Economics)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고 활용하여, 최선의 선택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으로서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언어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경제학자들만이 기업을 운영하고 국가를 통치한다면 세상은 더 좋아질까?”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경제학은 경제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중요한 학문이지만,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출신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경제적 유인책이 항상 원하는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 대로의 “전쟁은 군인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했던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녀가 던진 이 한마디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경제는 특정 전문가 집단만의 영역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집값과 물가, 일자리와 노후, 교육과 복지는 경제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뒤플로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화려한 경제이론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지난 20여 년 동안 빈곤 국가를 직접 찾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했고,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무작위 대조실험(RCT)을 경제학에 도입하여 실제로 어떤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했다. 책상 위의 이론보다 현장의 삶을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경제는 숫자를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숫자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경제학의 큰 장점은 효율성이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지를 분석한다.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며, 국가는 성장과 고용, 물가 안정을 위한 경제학적 원리를 활용한다. 경제학은 ‘어떻게’에는 강하지만 ‘왜’에는 답하기 어렵다.
얼마나 성장해야 하는지는 계산할 수 있지만, 왜 성장해야 하는지 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비용과 편익은 분석할 수 있지만, 인간의 존엄과 행복, 정의와 공동체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이익만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맺고 의미를 추구하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현실의 인간은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합리적 경제인’이 아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의리를 지키고, 보상이 없어도 봉사하며, 때로는 이익보다 정의와 사랑을 선택한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는 단순히 이윤을 만드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이다. 만약 경제적 효율만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직원은 동료가 아니라 인건비가 되고, 교육은 비용이 되며, 조직문화는 불필요한 지출로 취급될 수도 있다.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역시 기업과는 다르다. 국민은 주주가 아니라 시민이다. 경제성만 따진다면 복지는 줄이고 문화예술은 낭비로 여길 수 있다. 지방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가장 약한 사람까지 품어야 하는 공동체이다.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란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도 공정한 사회로 효율성이 정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임마누엘 칸트 역시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라.”고 강조했다. 이 원칙은 기업에도,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은 생산 수단이 아니며 국민은 통계 수치가 아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숫자에 쫓긴다. 실적, KPI, 성과평가, 승진점수 그러나 숫자만 바라보다 보면 정작 왜 일하는지를 잊기 쉽다. 더 높은 연봉을 위해 건강을 잃고, 더 좋은 성과를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성공일까?
최근 심리학에서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사람들은 실제로 바쁜 것보다 ‘바쁘다고 느끼는 감각’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식이 우리를 조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일이다.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집중력이 높은 시간에 먼저 처리하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보다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또한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작은 성공 경험은 다음 날의 의욕을 높여준다.
시간 관리도 경제학과 닮아있다. 한정된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의 기준이 단순한 효율이 아닌 삶의 가치여야 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들이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은 방법을 알려주지만, 방향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경제학은 효율을 계산하지만 삶의 목적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경제학은 자동차의 강력한 엔진과 같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운전대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엔진만 있고 운전대가 없다면 사고가 난다. 운전대만 있고 엔진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기업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숫자와 사람, 효율과 정의, 성장과 행복이 함께 갈 때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성과를 내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시간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을 잃어서는 안 된다. 경제와 기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일 역시 결국 더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숫자는 경영을 움직일 수 있지만, 사람은 세상을 움직인다. 좋은 기업과 좋은 국가는 경제학과 인문학이 함께 걸어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