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제 국경을 넘어 사람과 문화, 지식이 자유롭게 연결되는 초국경(Transnational)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학 역시 더이상 특정 국가의 학문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국제적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가 바로 지난 6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제14회 중앙아시아 한국학 국제학술대회였다.
지난 6월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타슈켄트 기묘국제대학교에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중앙아시아 한국학교수협의회(중앙아 한교협)가 주최하고 기묘국제대학교가 주관했으며,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후원했다. 학술대회의 주제는 ‘초국경 시대의 중앙아시아 한국학 : 상호이해와 지식의 공유’였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는 규모와 참여 국가 면에서 한국학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을 비롯해 러시아, 튀르키예,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요르단, 인도, 한국 등 총 12개국 43개 대학에서 약 180명의 연구자와 교육자가 참여했다. 이제 중앙아시아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는 단순한 지역 학술행사를 넘어 중앙유라시아를 대표하는 한국학 학술 네트워크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개회식에서는 알라쿨리예프 아크말 발타에비치 기묘국제대학교 총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현미주 주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 총영사, 콩그라트바이 아베짐베토비치 샤리포브 고등교육·과학·혁신부 장관, 베르디예바 롤라 알리세로브나 아동청소년교육부국장, 이소명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사무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또한 셰리쿨로바 미나라 중앙아 한교협 회장(중앙아시아한국대학교 총장)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학이 국가 간 우호와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현미주 총영사는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어와 한국학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연구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전했으며, 중앙아 한교협 창립 초기부터 꾸준히 지원해 온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이소명 모스크바사무소장은 앞으로도 대학과 연구기관 간 지식 공유와 공동 연구 네트워크를 더욱 확대해 나갈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조강연 역시 초국경 시대의 한국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허용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기묘국제대학교)는 「언어의 유형론과 보편성-초국경 시대의 외국어교육을 위한 제언」을 통해 언어교육이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설명했다. 이어 장호종 교수(아블라이한대학교)와 고호윤 교수(나자르바예프대학교)는 「중앙아시아 대학 한국학 현황 분석-KF 통계센터 데이터를 중심으로」라는 발표를 통해 중앙아시아 한국학 교육의 성장과 발전 가능성을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했다.
오후 발표에서는 한국어 교육과 번역, 문학, 역사, AI 활용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가 소개되었다. 특히 문화특수어인 ‘눈치’의 번역 전략을 다룬 연구는 언어 속 문화의 특수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으며, ChatGPT를 활용한 아랍어-한국어 번역교육 연구는 AI 시대 한국어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어-조지아어 온라인 학습사전 편찬 연구는 디지털 시대 국제 공동연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러시아 디아스포라 한인문학의 역사와 정체성 연구, 중앙아시아와 고구려 교류를 통한 국제성 연구, 인도 담론 속 한국전쟁 연구, 투르크메니스탄 한국어교육 현황 분석 등 다양한 발표는 한국학이 특정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언어, 역사, 문학, 문화, 국제관계까지 아우르는 융합학문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연구 주제의 다양성보다도 연구자들의 열정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학자들이 한국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중심으로 만나 연구 성과를 나누고 토론하는 모습은 학문의 진정한 가치가 경쟁이 아니라 공유와 협력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K-콘텐츠와 K-문화의 세계적 확산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한류는 문화 소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 기반에는 한국어 교육과 한국 역사, 문학, 철학, 사회를 깊이 이해하려는 한국학 연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아시아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는 단순한 연구 발표의 장을 넘어 미래 한류의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국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초국경 시대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시대이며, 지식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시대이다. 이번 제14회 중앙아시아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는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행사였다. 한국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학문을 통해 협력하며,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연구자들의 모습은 한국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게 했다.
국경은 지도를 나누지만 학문은 사람을 연결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이 작은 지식의 연대가 앞으로 세계 한국학 발전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